님은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사랑의 키스를 남기고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불현듯 생각나는 시
결국 받아들여야 하는 이별의 아픔 속에
다시 만날 것을 믿는 님에 대한 강한 신념의 노래
4월 30일에서 6월 10일 정확하게 42일간의 동거가 끝난 날
나는 이 시가 생각이 났다.
언제나 곁에 머물것같았는데
아무 일도 없는 듯
매일매일 재재거렸는데
당신 때문에 내 삶에 제약이 많다고 투덜거렸는데
양이의 모래 통도 반대쪽으로 옮기고
하루 종일 거실의 블라인드를 내려놓고
창문도 열지 못하고 꽁꽁 닫아두고
그렇게 숨죽이고 있었는데
어제만 해도 시끄럽게 재재거렸는데
금요일 저녁
휴일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님의 자취도 확인하려
꽁꽁 닫아두었던 창문을 살짝 열어본다.
밤이라 주무시나
언뜻 보아도 아무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
비어있는 둥지
비어있는 둥지
아... 어느새 날아가버렸다.
다행이다. 이제 해방이다.
새 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새 때문에 얼마나 입이 근질거렸는지
무사히 자라서 날아가 주어 고맙다.
위험이 도사리는 세상이지만
너의 방식으로 너의 비행을 하렴.
그런데 이상하다.
너무 이상하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님은 내게 침묵을 남겼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어느 날 불현듯 내 삶에 찾아와
기쁨과, 두려움과, 불편함과, 설렘을 주던 새들과의 동거가 끝이 났습니다.
자연의 세계를 아주 곁에서 살짝 엿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낭만적이지도 않고
그저 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저들은 40여 일의 둥지 생활을 청산하고 하늘로 비상했습니다.
여전히 그곳은 포식자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겠지요.
그래도 그들은 살아낼 겁니다.
우리도 살아낼 겁니다.
장마철입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 낸 당신을
새와 함께 응원합니다.
* 그때그때 관찰을 기록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글 그대로 <생명과 함께> 매거진에 10편을 발행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이 경험에 대한 생각이 다듬어질 때 다른 방식으로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만 지금은 새들을 무사히 떠나보낸 것처럼 이 조각 글들도 내 손에서 떠나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