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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Nov 03. 2022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

황홀한 콩나물국밥 앞에서

  


일상의 회복과 더불어 모처럼 저녁 산책을 했다. 아직은 쌀쌀한 기온과 불편한 다리와 발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산책길 끝에 있는 콩나물국밥의 추억에 끌려 먼길을 감행했다. 이전에는 나의 단골 산책길이었고 왕복 1만 보가 넘는 길을 습관처럼 걸었는데 습관처럼 이어진 그 시간들이 얼마나 기적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역시 모처럼의 산책이라 쉽지 않았고 발바닥의 굳은살에 느껴지는 통증과 이전의 부상으로 인한 발의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디며 가을날의 정취를 맛보았다.    

  

언제 은행나무의 잎들이 이렇게 무성하게 노랗게 물들었는지... 언제 그 들이 바닥에 다 떨어져 은행알과 함께 뒹굴고 있는지.... 이전에는 매일매일 그 변화를 관찰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모든 장면들이 어느 날 내 앞에 갑작스레 도래하니 시간의 흐름을 갑자기 느끼게 된다.   

   

여하튼 나랑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따라잡느라 정신이 없다. 캘린더는 어느새 두 달만 남겨두고 2022년을 노래하고 있다. 힘든 걸음걸음이지만 산책길 끝에 있는 콩나물국밥의 추억을 떠올리며 나는 행복하기 그지없다. 가격은 착하고 맛은 비싼 곳. 거기서 친구를 만나 함께 콩나물국밥을 먹는다. 콩나물국밥 앞에서 함께 밥을 먹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함께 밥 먹는 사람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인 식구食口의 의미는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북적북적이며 정신이 없어 밥을 차려주는 엄마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느낄새 없이 가족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명절이라도 되면 대가족이었던 시댁에서 밥을 먹으려면 상을 여러 개 놓아야 가능할 정도로 여럿이 북적이며 식사를 했다. 그랬던 시절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부모님들이 돌아가시니 함께 모이는 것도 뜸해지고, 코로나 상황에 모이는 것을 기피하다 보니 여러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경험이 점점 줄어들었다. 


지인이 한 말이 기억난다.  “ 부부란 같이 밥 먹는 사람이야 ” 같이 밥 먹을 사람이면 된다는 그 단순한 말이 더 이상 단순하게 들리지 않는다. 같은 음식을 놓고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 낯설고 모르는 사람과는 결코 하지 않는 그 행위의 준엄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부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매일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아닐까 싶다.  왜 가족을 식구라고 하는지 알겠다. 그것은 그냥 음식을 나누는다는 행위만으로 그치지 않는 무엇이 있다. 


불행히도 함께 밥 먹는 것이 점점 힘들어질 것 같다. 거리두기는 식당에서 칸막이를 만들어놓았고, 학교의 급식 현장에서도 아이들은 칸막이 식당에서 침묵 속에 밥을 먹는다. 교사들도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며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며 하는 식사 풍경이 그립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소중한 경험이 그래서 더더욱 그립다. 

    

1인 가구의 증가     

 

핵가족이라는 말이 신조어로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개체화의 극점에서 이제는 1인 가구가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고 1인 가구를 위한 다양한 상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 혼밥족을 위한 식당들도 많다. 세상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함께 있어 불편한 사람들은 굳이 불편함을 거두고 편안한 혼자의 시간과 공간을 선택한다.     

 

마을에서 인생의 대소사를 함께 나누던 풍토는 사라지고 있다. 아직 시골에서는 남아있겠지만 도시는 전혀 다르다. 품앗이로 일의 부담을 나누어지던 풍토가 있었고 집안의 대소사를 마을이 함께 떠안는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개체화되었다. 잦은 이사로 이웃이 없다. 아파트 생활은 폐쇄된 공간이라 이웃을 사귀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이들 연결망으로 학부모 연대라도 있었는데 아이들이 다 크고 나서 이사라도 덜컥해버리면 이웃을 사귀기가 정말 힘들다. 게다 코로나가 부른 거리두기는 더 이상 이웃과의 교류를 쉽지 않게 만들어놓았다. 함께 음식을 나누기도 이웃을 집에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조심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잃어버린 마을을 찾고 싶다. 

  

잃어버린 마을을 찾고 싶다. 

   

다행히 거리 두리가 완화되고 이전의 일상의 모습이 많이 복구되고 있다. 공원에 콘서트는 재개되어 주말마다 인파로 넘쳐난다. 경조사에 손님을 초대하는 것도 가능해졌고 많은 사람의 무리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다행이다.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 보인다. 그럼에도 1인 가구는 더 늘어날 것이고 이웃과의 연대는 점점 어려워질 것 같다. 물론 sns나 가상공간에서의 교류방식은 더 발전하겠지만,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기 벅찬 나는 직접 얼굴을 보는 오프라인의 만남을 온라인 만남과 같은 선상에 두기 힘들다. 그래서 같은 땅을 밟는 마을 사람이 그립다. 이사를 하고서도 이웃과 얼굴을 부딪힌 것이 손을 꼽을 지경이다. 선뜻 자주 인사합네 하며 문을 두드리는 것도 실례일 것 같다. 이미 다른 경로로 알고 있던 지인 외에는 새롭게 이웃을 만나기가 좀처럼 힘든 도시문화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외로움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쓸쓸하게 인생의 뒤안길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좀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을을 되찾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볼 것이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다. 마을이 없어지고 있어 도시문화의 어두운 부분을 체감하는 요즘 잃어버린 마을을 찾을 길을 모색하고 있다. 같이 밥 먹을 사람, 같이 차 마실 사람, 같이 놀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필요하다.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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