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러브레터
빼빼로데이를 탄생시킨 L제과는 그야말로 잭팟을 터뜨린 셈이다. 해가 가도 사그라들기는커녕 이제 해마다 연례행사로 굳어질뿐더러 더 변형, 확장된 모양의 행사로 발전되고 있으니 말이다. 뭐, 나야 아이들, 젊은이들의 행사쯤으로 멀찌기서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런 나도 비켜가기 힘들 정도로 우리 사회의 문화가 되어 버린 건 사실이다.
기업의 상술에 휘둘리는 경향 운운하며 부정적인 면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건조한 일상에 뭐라도 만들어 기념하고 싶은 젊은 사람들의 욕구를 제대로 알아차린 영리한 기획이었음에 틀림없다.
마을공동체로 살아갈 때는 명절을 중심으로 마을이 함께 축제를 벌이지만 핵가족, 1인 가족이 되면서 점점 공동체의 놀이가 소멸되어 가는 현대인들은 문명의 발전과는 반대로 더 소외감에 시달리고 있다. 마을이 함께 즐기던 놀이를 갈구하는 현대인은 그 욕구를 대체할 놀이가 필요하다. 그 놀이는 sns 마당으로 옮겨가고 무리끼리 공유할 수 있는 행사 등으로 표출이 된다. 아마도 빼빼로데이의 장수長壽는 이런 욕구와 맞물린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해서 빼빼로를 하나 사서 누군가에게 건네주는 것이 꼭 상술에 휘둘리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쯤이면 팍팍한 일상에 잠시 마음의 표현의 도구 정도로 생각해도 좋겠다.
나야 그렇다고 하지만 십 대들은 어떤 마음일까?
‘선생님! 빼빼로 어떤 거 좋아하세요?
'왜? 난 다 좋던데'
'한 개만 골라주세요. 빼빼로데이 때 선물로 드리려고요. 중간에 오셔서 적응하실 때 엄청 힘드셨잖아요’
‘어머... 네가 내 맘을 알아주는구나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워.'
슬쩍 민망한 순간을 넘기려는 내게 아이는 집요하다.
‘오리지널, 누드, 아몬드 초코가 있어요. ’
종류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
그럼, 난 아몬드 초코가 좋겠네’
‘네 빼빼로 데이 때 그릴게요'
요즘 아이들은 정말 이런 것도 대범하게 물어본다. 요즘 아이들의 단면을 보게 된다.
빼빼로데이 아침의 풍경은 대단했다. 복도마다 아이들은 너도 나도 빼빼로를 들고 이웃반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고받고, 통 큰 아이들은 아예 학급 전체에 하나씩 선물하는 경우도 있고 젊은 선생님 중에는 학급 학생들에게 다 선물하는 경우도 보았다.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낯선 풍경이었다. 빼빼로데이가 뭐라고 이리 다들 난리일까? 다른 반 친구들이 다 받는데 우리 반 친구들이 못 받으면 서운할까 싶어 부랴부랴 그 전날 새벽 배송이 되는 사이트에 주문을 할까 싶어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헉 품절이라고 뜬다. 이게 뭐지?
내게 빼빼로 종류를 물어보던 아이를 필두로 나도 허전하지 않을 정도로 몇 개의 빼빼로를 받았다.
'선생님!' 하고 삐죽 내미는 빼빼로가 책상에 몇 개씩 쌓였다. 물론 나는 새 발의 피. 여기서 인기도가 갈리는 지점. 평소에 가진 관심이 빼빼로로 표현되는 날이라 살짝 위화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도 면목을 세울 만큼 내 책상에 쌓인 빼빼로는 내 존재감을 너덜거리지 않게 했다
놀라운 것은 평소에 별 이야기하지 않던 조용한 아이들이 몇몇 수줍게 다가와서 빼빼로를 건네는 것이었다. ‘선생님 이거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심지어는 직접 만들어서 건네는 아이도 있고, 전혀 수업시간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아이가 수업 끝나고 슬쩍 와서 아무 말 없이 빼빼로를 건네는 경우도 있다. 더 이상 나는 아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아닐 것 같은데 신기한 장면이었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재미있는 수업도 아니고 공감대도 떨어지는 나인데 아이들이 빼빼로를 건내다니...
아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빼빼로를 바라보니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다.
‘선생님, 힘드시죠? 기운 내세요! ’
‘선생님, 제가 말썽을 부려 죄송해요!’
‘선생님, 감사해요!’
젊고 매력적인 교사들에게 느끼는 마음과는 다른 마음일 듯하다. 빼빼로 덕분에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전해받았다. 물론 마음만 있고 빼빼로로 표현하지 못한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내게 별다른 마음이 없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빼빼로 그 자체보다 빼빼로가 지금 이곳에서 마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읽으며 미소가 지어졌다.
교사는 극한 직업이다. 옛말에 '교사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은 그냥 생긴 말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그 말은 적용되는 것 같다. 천사와 악마 사이를 오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영혼이 너덜너덜해질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어느 순간 아이들의 진짜 마음을 만날 때 극한 직업은 그 어떤 일보다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이 된다. 그 힘으로 버티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자리를 빌려 모든 교단에 선 교사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잠시, 빼빼로 앞에 머문 날이었다. 격무에 시달려 제대로 장보기도 힘든 요즘이지만, 퇴근길에 차를 돌려 대형마트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주려고 두둑하게 초콜릿을 사서 자동차 트렁크에 넣었다.
아이들아, 내 마음을 받아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