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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Feb 17. 2023

방울소리를 내지 못하는 방울새

양귀자 <원미동 사람들>  중 방울새 단상斷想

방울 소리를 내지 못하는 방울새  


여자는 꿈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감옥에 갇힌 남편과는

헛손질만 한다.  


잿빛 깃털에 음울한 눈매의 방울새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다.

입 모양으로만 우는 새는

푸른 하늘 대신 시멘트 천장을 이고

죽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다.


저쪽 문으로 다시 빠져나간 남편은

이쪽 세상으로 빠져나온 그녀는

동굴 속에 살고 있는 방울새   


한 번만 입을 열어 모음과 자음을 발음해 보렴

한 번만 부리를 벌려 방울 소리를 내보렴     




그들의 헛손질


p.201

네모 반듯한 공간 안에서 그들은 확실히 둘로 갈라져서 모습을 내보이고 있다. 그는 저쪽에, 그녀는 이쪽에. 한 겹 쇠망을 거두어버릴 수도 있는 두 손을 깍지 끼워 잠재우고서 그녀는 맥없이 남편의 등 위, 약간의 얼룩과 손자국이 묻어 있는 잿빛의 벽을 쳐다보았다. 그 또한 아무 이유 없이 바닥에다 후후 입김을 불어대고 그 입김을 발길질로 닦아내고 있다는 몸짓을 해 보였다.

장식 없이 숫자판만 커다란 벽시계는 소리도 날카롭게 면회실을 울리고 그녀는 마침내 흰 벽의 얼룩 보기를 끝내고 남편을 본다. 우리 속에 갇힌 짐승의, 그러나 이제는 번뜩이지 않는 눈빛으로 그 또한 그녀를 본다. 지난번 경주의 감기는 다 나았는가,라는 질문이 오면 한참 뒤에 그녀는 이제 여름이 다 지났나 보다는 대답을 보낸다.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지내라는 말이 쇠망을 건너간다. 



입이 열리지 않아  


p.211

딱히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사는가. 공기 중에 확산되어 있으리라고 믿어지던 선명한 기억이 하루 후에는 일부가 뭉개지고 또 며칠 후에는 다른 쪽이, 또 몇 달 후엔 아주 작은 부분만 남긴 채 와해되어가던 것을 그녀는 익히 알고 있었다. 이제 심장의 한 켠에 비수처럼 꽂혀 있는 몇 개의 과거를 빼고 나면 다시 얼마를 더 가슴에까지 깊이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밤사이의 길고 충격적이었던 꿈들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둠의 저쪽으로 함몰되어 사라지는 것을 붙잡으려 애쓰던 안타까움.

꿈이라니. 일생을 통해 심장에 박혀버린 단 하나의 꿈이 있었다. 꿈에서 깨어나 한밤중에 오도카니 앉아 있던 그 밤에 남편은 지쳐빠진 얼굴로 잔득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아침이 오면 말해주리라 했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내일쯤 말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그 내일이 오기 전 남편은 떠나버렸다. 그래서 꿈은 오로지 그녀 혼자만의 몫으로 남아 있었다. 때문에 더욱 온전하게 전혀 훼손되지 않고 언제라도 선명히 되살릴 수 있었다.  


노래하지 않는 방울새

    

p. 219

그처럼 많은 새가 있었지만 어느 곳에서도 새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박제되어 있는 듯한 동공과 차가운 발부리만이 일렬횡대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을 뿐이다. 죽은 나뭇가지 위에 동그마니 얹혀져서 참새, 콩새, 종달새들이 유리벽 바깥의 인간들을 노려보고 있다. 전깃줄에서, 때로는 미풍의 보리밭 이랑에서 정답게 울어주던 바깥 세상의 새들과는 전혀 닮지 않은 것처럼 보임은 무거운 침묵 때문인가. 고목의 둥치를 잘라 시멘트로 붙박아 놓은 가지마다엔 이파리 하나 매달리지 않았다....

조류원의 중간쯤에서 그녀는 방울새를 만났다. 부리나 깃털의 색깔로 방울새를 알아낸 것은 물론 아니었다. 팻말을 통해 잿빛 깃털의 음울한 눈매를 한 그것과 맞부딪히고 나서 그녀는 적잖이 실망을 한다. 방울새야 방울새야, 쪼로롱 방울새야, 노래를 부를 적마다 떠오르곤 했던 그 이슬 같은 느낌의 청명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감춰지거나 은유되지 않고 곧이곧대로 드러나 있는 사실 속의 새 앞에서 그녀는 잠시 의아해한다. 그리고 이내 깨닫는다. 노래, 아마도 노래가 사라진 탓이었다. 방울 같은 목소리로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만 그것은 방울새로 불려진다. 노래하지 않고 있는 방울새는 단지 잿빛 깃털을 가진 한 마리의 날 것에 불과하였다.


“ 아 방울새는 동굴에서 살고 있구나.”

경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갑자기 퍼뜩 놀라 아이를 쳐다본다. 그 말이 꼭 아빠는 동굴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말로 들린 까닭이었다. 한때는 함께 산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아빠가 아아, 여기 동굴 속에서 살고 있구나,라고 아이가 소리친 줄로만 알았다.



방울 소리를 내렴


p.224     

그녀는 떨리는 눈두덩을 지그시 누르면서 내일모레쯤에는 남편을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번에야말로 헛손질과 얼룩진 벽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방울새가 저어기에 살고 있더라는 이야기를 해도 좋다. 배고파하는 동물들의 벌려진 입을 전해주고도 싶다. 경주의 방울새 노래가 듣고 싶지 않으냐고도 물어볼 것이다.

이야기가 술술 풀려만 간다면 아니 그러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구더기의 강에 대해서도 소상히 들려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머리칼 깊숙이 수십 수백 마리의 구더기가 털구멍에 처박혀 몸을 오그라뜨리고 있는 느낌이라고 제법 세밀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말하지만 이 꿈을 홀로 간직하는 일이 정말 두려웠다고도 말해보자. 말이란 한 번만 눈 딱 감고 시작하면 실타래에서 풀려나오는 명주실처럼 길고도 질기게 계속될 것이었다. 한 번만 입을 열어 모음과 자음을 발음한다면, 한 번만 부리를 벌려 방울 소리를 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히 견디어낼 것 같았다.      


      

 



방울새야 방울새야 

쪼로롱 방울새야 

간밤에 고 방울 어디서 따왔니 

쪼로롱 방울새야 

어디서 따왔니


어린이 공원 조류원에서 마주친 방울새의 모습은

귀에 익은 가사의 그 방울새가 아니다

명랑하고 청량한 목소리의 방울새는커녕

잿빛의 음울한 눈빛의 새를 팻말로나 알아볼 수 있다.

방울소리를 내지 못하는 새는

 

곧 그녀이자 남편이다.

      

그녀는

심장에 박힌 단 하나의 꿈 이야기조차

남편에게 말하지 못한다.

감옥에 갇힌 남편을 만나는 면회소에서 

그들의 대화는 서로를 만나지 못한다. 

   

방울새는 동굴 속에 살고 있구나

남편은 동굴 속에 살고 있구나

그녀는 동굴 속에 살고 있구나


휘휘 하늘을 날아오르지 못하고

퀴퀴한 동굴 속 방울새는 마치, 


말을 잃어버린

꿈을 잃어버린

서로를 만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인가....


방울새야 방울새야

쪼로롱 방울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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