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모다 Mar 19. 2023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삶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후기

           

영화 속 주인공 찬실이는 작은 영화 피디이다. 나이 40에 미혼이고 벌어놓은 돈도 없다. 영화의 시작은 고사를 지내고 막 제작준비를 시작한 영화감독이 급사하면서 찬실이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 즉 영화사로부터 해고통보를 받고 용달차도 올라가지 못하는 달동네 단칸방으로 직접 짐을 들고 이사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야말로 폭망인 셈이다. 집도 절도 자식도 남편도 일도 돈도 없는 그야말로 가장 처량한 신세. 그런 찬실이가 복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는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아는 거예요       


영화의 흐름에 중요한 인물은 장국영처럼 생긴 귀신이다. 희색 러닝셔츠와 짧은 바지 차림이거나 검은색 긴팔 셔츠와 바치 차림으로 등장하는 그를 영화에서는 귀신으로 설정하지만 (전혀 귀신같지 않은) 나는 수호천사라 부르고 싶다. 여하튼, 작품 내내 찬실과 장국영의 대화가 영화의 중심을 이끌어간다.   

   

뭐라도 해서 생존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찬실은 친한 후배배우의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된다. 처량해진 찬실이에게 “연애라도 해봐”라는 후배배우의 말처럼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후배배우의 불어 선생 ‘영’과의 로맨스가 성공해서 찬실이의 삶에 꽃이 피게 되길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뭐, 그게 일반적으로 전개되는 뻔한 스토리다. 하늘도 무심하지 않지. 그래 사람이 다 안되라는 법 있나? 로맨스라도 있어서 찬실이 살 힘이 되면 얼마나 좋아.   

   

문제는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거예요. ” 장국영천사의 조언에 찬실은 자신의 심장을 믿고 직진하기로 한다.  외모도 뭐 사람들이 보고 예쁘다고 할 정도 아니고 사투리를 사용하고 가진 것 없는 그에게 상대는 5살 연하이다. 그 현실의 장벽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나이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야” 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찬실의 독백이 뭔가 시원하게 반전을 가져올 것 같다. 용기를 내서 먼저 만남을 요청하고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찾아가서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로맨틱한 분위기를 즐기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게 된다. 그래 뭔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기적 같은 일 말이야. 아.. 흐르던 음악소리가 끈을 자르는 가위질에 뚝 끊어지듯 (이 장면 참 절묘하게 효과적이었다.) 익숙한 기대를 과감하게 잘라버린다. 싹. 둑. 친구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상대의 반응. 급실망한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버스 안에서 여전히 그 촌스런 보자기에 싸인 도시락을 무릎에 안고 서글프게 흐느낀다.      


남자를 만나 연애에 성공해서 결혼을 한다. 이 첫째 시나리오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럼 다른 강력한 한방이 기다릴까? 나는 그 한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별 볼 일 없는 찬실의 삶을 닮은 듯 영화 자체도 작은 규모와 예산의 독립영화 같은 느낌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세련되지도 않다. 윤여정, 최화정 같은 배우가 감초역할을 하긴 하지만 나로서는 처음 보는 강말금이라는, 배우치고는 이름도 세련되지 않은 무명에 가까운 배우가 주연인 영화. 조금씩 빨려 들어간다. 그래서 찬실이 왜 복이 많은 거야?      


그냥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해. 애써서 해      


영화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는 찬실이 사는 주인집 할머니다. 연기파 윤여정의 연기라 더 개운하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를 잃고 홀로 남은 생을 산다. 글을 몰라 불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주민센터에서 한글을 배운다. “난 하고 싶은 게 없어. 나이가 드니 좋은 점도 있네. 그냥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해. 애써서 해.” 그야말로 누구 하나 기댈 데 없는데 슬퍼 보이지 않는다. 비록 달동네에 살지만 그는 단정하고 차분하게 잘 지낸다.    

   

까르르 웃고 떠드는 길거리의 할머니들을 보며 찬실과 영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할머니들은 가슴이 너무 아파 안 까먹고는 못 사는 세월이 다 있는 것 같아요. 할머니들은 사는 게 뭔지 다 아는 것 같아요.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지도 몰라요....”  어떻게 안 까먹고는 못 사는 그 아픈 세월에도 불구하고 웃을 수 있을까? 금쪽같은 자식을 잃고 단정하게 하루하루 살 수 있을까? 마음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의 체념일까? 억지로 웃는 척하는 것일까? 억지로 단정한 듯하는 것일까? 주변의 현실에서 흔히 보아온 체념 섞인 그 한숨을 영화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다.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있는 곳마다 참되다. 隨處作主 立處皆眞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후배배우 집의 서재에 펼쳐져 줄 그어져 있는 구절에 문득 찬실이의 눈과 마음이 머문다. 나는 이 장면이 잠시 pause상태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찬실도 멈추고 나도 멈추고 세상도 멈추는 듯한 순간. 기대했던 사랑이 무너진 찬실. 천사의 말에 용기를 내어 직진했다 무참히 한방맞고 쓰러진 찬실에게 천사가 하는 말 “ 외로운 건 외로운 거예요. 사랑이 아니에요.” “몽땅 가지겠다는 마음을 버리면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원하는 걸 알아야 행복해져요. 당신은 멋있는 사람. 좀 더 힘을 내 봐요”     

 

그 어느 것에도 기댈 곳이 없던 외로운 찬실에게 필요한 것은 그 외로운 마음을 안아줄 친구였을지도 모른다. 흔히 이와 같은 지점에서 흔히 빠지게 되는 함정 중의 하나가 바로 낭만적인 연애와 그리고 이어지는 결혼이 아닐까. 물론 상대도 자신과 같은 마음의 연정을 느끼고 둘이 사랑으로 이어지면 이 또한 좋으련만 현실은 아니었다. 욕심을 버리면 얼마든지 좋은 우정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뭐 인생 어떻게 되는 거 아니다. 외롭다는 거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친구로서 충분히 잘 지낼 수 있다. 중요한 건 원하는 것이 뭔지를 아는 것이다.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목말라 꾸는 꿈이 행복이 아니에요. 사는 게 궁금해졌어요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뭐지? 곰곰이 고민하던 찬실은 버리려던 영화작업물들을 다시 방으로 들여놓고 조용히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다. 차분해진 찬실에게 마지막으로 찾아온 장국영천사에게 찬실은 자신의 고마움을 전한다.      

“늘 목말랐어요. 좋아하는 일이 나를 채워주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 좋아하는 일로는 채워지지 않더라고요. 목말라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더군요. 사는 게 뭔지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포함돼요”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은 자신의 삶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로소 내 삶의 주인으로 서 내 삶을 살아보고자 한다는 고백을 듣고야 응원을 보내며 천사는 떠난다.      


우리가 믿고 싶고 하고 싶고 보고 싶은 거      


찬실은 계속 시나리오를 쓰며 기약 없이 외로운 그 길을 간다. 든든한 남자 친구도 없고 보장된 결혼도 없고 여전히 달동네 단칸방이다. 후배들이 위로 차 찾아온다. 마침 방에 전구가 나가고 주인집 할머니는 달을 보며 기도를 한다. 근처에 상점도 없고 해서 전구 사러 여럿이 손전등에 의지하여 밤길을 걷는다. "먼저 가 내가 비춰줄게. " 손전등을 앞의 일행의 길에 비춰주며 멈춰 선 찬실이 관객을 응시하며 내뱉는 마지막 대사는 “우리가 믿고 싶고 하고 싶고 보고 싶은 거”   

   

곧 화면은 터널을 지나 무한히 펼쳐진 눈 덮인 철로를 달리는 영화장면. (찬실이 결국 쓴 시나리오로 제작한 영화라고 추정되는) 그 영화를 보며 박수를 치는 천사의 뒷모습으로 끝이 난다.    

 

그 누구의 바람이 아닌 

나 자신이 믿고 싶고 하고 싶고 보고 싶은 

그 길을 가는 찬실

그래서 복이 많은 찬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