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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Apr 24. 2023

여행은 인생이 시작되는 곳

여행의 이유. 김영하 


틈틈이 시간이 날 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다락방 구석진 자리에 가는 심정으로 읽는 책들이 있다. 친구가 선물로 보내온 책인 소설가 김영하 씨가 쓴 <여행의 이유>가 그중의 하나이다. 내 또래의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그다지 여행의 경험이 많지 않은 내게 어떤 인사이트를 주려나 혹은 일상으로부터 달아나고픈 내 맘에 강한 공기부여를 하려나 하는 심정으로 책 속으로 잠시 피신을 한다. 조각조각 읽어도 좋을 정도로 에피소드별로 전개되니 부담이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굳이 여행을 하지 않아도 내 삶이 여행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였고, 역설적으로 일상을 벗어나 제대로 색다른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 여행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며 나는 언제가 좋을까?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갈까? 어디가 좋을까? 행복한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되었다.      



일상이라는 여행      


여행기는 모험 소설과는 다른 측면에서 나를 안심시켰다.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것이 불안과 고통만은 아니라는 것. 거기에는 ‘지금 여기’에 없는 놀라운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그것들은 끝이 없다는 것. 여행기의 저자 역시 모험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작은 사건과 사고들을 겪고 그것을 극복해 낸다. 그리고 그들은 안전하게 돌아와 그것을 글로 기록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삶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의 구조, 핵심 플롯이 있다. 어린 날의 나에게 그것은 모험 소설이었고 여행기였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책에서 저자는 어린 시절 잦은 이사, 전학등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보낼 수도 있었지만 예기치 않은 도전을 만나고 극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있는 모험소설이나 여행기가 그의 중심을 잡아주었다고 고백한다. 나도 언젠가 브런치에서 <나는 여행 중입니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굳이 먼 곳에 가지 않아도 삶 자체가 여행임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나이가 들고 나서이지만 역시 어린 시절부터 책을 가까이 한 저자는 이미 이 진리를 어린 시절에 터득했나 보다. 



아침에 차를 몰고 일터에 왔다 다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갈 때 마치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는 느낌이 든다. 톨게이트를 지나 일터가 보이자마자 그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조금 과장한다면 다른 행성이다. 그곳에서는 다른 종족이 살고 있고 다른 질서가 작동한다. 나는 그곳에서의 질서에 따라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톨게이트를 지나 내 행성으로 귀환하고 다른 질서에 곧 익숙해진다. 이런 삶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가 이 머릿발 서는 긴장감이 얼마나 스릴이 넘치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 짜릿한 감사가 넘친다. 맞다. 인생은 지독한 여행이다. 매일매일 예측불허의. 그래서 굳이 여행을 갈 필요가 없다.    



여행이 필요해      


매일매일 새로운 도전이 있는 여행 같은 일상이지만, 또 다른 여행에의 갈증이 없지 않다. 좀 더 나를 색다른 곳에 던져놓고 싶은 갈망이 차오른다. 김영하 씨의 책을 읽다 보니, 더더욱 자극을 받게 된다. 그는 아예 한 곳에 붙박이로 살지 않고 아내와 함께 여기저기 국내 국외를 막론하고 옮겨 다니는 생활을 하고 있다. 돌아가야 할 구심점을 따로 두지 않는다.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할 것이다.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돈도 안 들고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돌아올 지점이 어딘지를 분명히 알고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돌아올 곳,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 내 집과 내 물건이 있는 곳은 여정이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여행의 원점. 여행이 실패하거나 큰 곤란을 겪을 때 돌아갈 수 있는 베이스캠프. 그곳에서 우리는 피해를 복구하고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마사이족의 청년은 달랐다. 여행의 목적지는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고, 오히려 고향이 유동적이었다. 육중한 돌로 지어진 캠브리지대학교는 수백 년 동안 거기 그대로 서 있었다. 아마 청년의 손자가 죽을 때까지도 어디론가 옮겨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가 떠나온 곳, 그의 부족은 늘 이동 중이었다.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삶인 이들에게 여행이란 과연 무엇일까?   

 여행의 이유. 김영하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다 보면 변화를 두려워하고, 변화를 거부하고 안정되어 보이는 그것에 길들여진다. 물론 좋은 면도 있지만 생동감이 사라지고 활력을 잃기 쉽다. 나의 경우 거의 학교라는 환경을 떠나보지 못했고, 살고 있는 지역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하고, 만나는 사람도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삶을 살다 보니 사고 자체도 진취적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살며시 불안감이 생긴다. 이러다 영영 고착화되지 않을까?    



마사이족으로 산다는 것은 삶이 항구적인 여행 상태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유목생활을 하는 마사이족에게는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고정된 집, 고향이라는 개념이 없다. 집을 떠나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온 사람이 다시 돌아왔을 때 이전의 그 집은 더 이상 없다. 소떼를 먹일 풀을 찾아 다른 곳으로 이주한 가족을 찾아 한참을 헤매게 된다. 그런 그들에게 삶이라는 것 자체가 항구적인 여행상태임을 이야기하며 저자 김영하 씨는 자신 역시 집에 있을 때 보다 여행할 때 더 살아있는 맛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 마사이족 청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처음엔 분명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이 떠나기 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에 조금 놀랐을 것이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이제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귀환의 원점은 겨우 찾았지만 그 자신이 이미 변화했기 때문에 원점은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족장의 말처럼 그는 어떤 능력을 상실했다. 마사이족으로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재능을. 그 대가로 그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부족은 언제나처럼 소떼를 몰고 유목을 계속하겠지만 청년은 다시 한번 자기만의 여행을 갈망하게 될 것이다. 그는 알게 된 것이다. 사는 곳을 옮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여행은 유목이나 이주가 아니라는 것을.      

아마도 그는 다시 떠났을 것이다.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는 개념. 익숙한 일상에서 닫혀있던 갇혀 있던 감각을 열 수 있는 곳. 익숙한 것을 탈피했을 때 온전히 볼 수 있는 시간. 자기 의지로 낯선 곳에서 날것 그대로의 생생함을 경험하는 시간. 그래서 여행은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여 진짜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자기만의 여행을 하는 시간. 관광객으로서가 아니라 순례자로 나서는 시간을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자, 떠나자! 





한동안 여행에 대한 별다른 동기가 생기지 않았기에, 이 책 역시 친구가 보낸 선물이라 읽기 시작하면서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결국 설득당하고 말았습니다. 역시 내공이 있는 작가의 글은 여행에 관한 이야기도 작가 자신답게 독특하게 풀어내는군요. 정보의 요란한 전시 그런 것과는 결이 다르게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여행에 관한 경험과 사유를 풀어내는군요.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어 졌고, 아직 시작해보지 않은 여행기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당찬 꿈도 꾸어봅니다. 여하튼, 마사이족의 예는 압권이었습니다. 다시 돌아갈 집이 사라진 상황에서 진짜 자신의 여행을 하리라는 작가의 통찰. 이상하게도 난 이 책을 읽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올라옵니다. 편하게 읽기에 좋은 책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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