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1997. 민음사
선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청년의 발효가 시작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기에 조숙한 소년의 기질에서 나타나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다... 예로부터 천재와 선생들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있게 마련이다. 학교에서 보이는 그런 학생들의 몸가짐은 처음부터 선생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다. 천재들은 선생들에게 전혀 존경심을 보이지 않는 불량한 학생들에 다름 아니다. 진정한 천재들의 상처가 아물고, 학교 선생들에게 보란 듯이 오히려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모습에서 우리는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또한 훗날 이들은 죽은 뒤에 저 멀리서 비쳐오는 유쾌한 후광에 둘러싸인다. 그래서 마침내 학교에서 다른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걸작품 내지 고귀한 모범으로 소개되는 것이다.
이렇듯이 학교마다 법규와 정신의 싸움판이 자꾸 되풀이되고 있다. 국가나 학교가 새롭게 자라나는 보다 귀중하고 심오한 젊은이들을 뿌리째 뽑아버리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더욱이 선생들에게 미움이나 벌을 받은 학생들, 학교에서 도망치거나 내쫓긴 학생들, 바로 이들이 후세에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재산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남과는 다른 두 젊은 소년들의 행위를 위험하다고 여긴 학교 선생들은 이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대신에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학교 규칙에 따라 곱절이나 엄하게 다스렸다.
p.141
한스는 권력자가 내민 오른손에 자신의 손을 얹어놓았다. 교장 선생은 그를 엄숙하면서도 부드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럼 그래야지.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p. 146
그래서 한스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당황한 나머지 수레바퀴에 치인 달팽이처럼 촉수를 움츠리고 껍질 속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짐짓 싫증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방금 누군가가 죽기라도 한 듯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p.207
우리도 저런 구름이 될 수만 있다면
그럼?
그럼 돛단배처럼 저 하늘 너머로 여행을 떠나겠지. 숲과 마을, 읍과 주를 넘어서 말야. 아름다운 배가 되어. 넌 아직 배를 본 적이 없지?
저길 봐! 이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도 날겠지? <파라다이스>를 지나며 하일러가 물었다. 회당과 아치형의 창문, 행랑과 식당들 말야. 이게 다 고딕과 로마네스크풍이잖니. 풍성하며 정교한 이 건축물들은 모두 예술가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거란다. 하지만 이런 마법의 성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
p.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