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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Jul 25. 2023

바퀴에 치인 달팽이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1997. 민음사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 『데미안』을 통해 ‘알을 깨고 신으로 날아가는 새의 형상’이 강하게 각인되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로 시작하는 첫 구절은 헤세의 삶의 화두로 보인다. 헤르만 헤세 그의 작품세계가 궁금해졌다.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가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의 개인적인 상황과 함께 그의 생애에 영향을 끼친 많은 사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뽑으라면 바로 1차 세계대전 (1914-1918)인 것 같다. 일상과 함께 삶의 근간을 흔드는 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작품과 이후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변화가 있다.    

  

세계대전 이전의 작품으로는 그의 20,30대의 저서에 해당하는 『게르트루트』 (1900) , 『페터카먼친트』 (1904) , 『수레바퀴아래서』 (1906) ,『 크눌프』(1915) 등을 들 수 있고, 이후의 작품으로는 40,50대의 저서 『데미안』 (1919) , 『싯다르타』 (1922) , 『황야의 이리』 (1927) ,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1930) , 그리고 60대에 쓴 『유리알 유희』 (1943) 등이 해당된다. 그는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세계를 인정받았다. 1960년대에 이르러 휴머니즘 입장에서 나온 반전사상, 서양문명 물락에 대한 묵시록적 경고, 위선적 생활방식에 대한 저항등을 반영한 그의 작품은 68학생혁명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성경처럼 읽히기도 했다. 그중에서 초기 작품에 해당하는 『수레바퀴아래서』는 바로 작가 자신의 자서전에 해당하는 작품이므로 헤세를 이해하는데 빠져서는 안 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헤세는 열세 살 부모 곁을 떠나 괴팅엔의 라틴어 학교에 들어가고 그다음 해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입학한다. 규칙과 인습에 얽매인 신학교의 기숙사 생활을 이겨내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걸려 결국 학교에서 쫓겨난다. 고향에 돌아와 시계 공장의 견습공, 서점상의 견습원으로 일하면서 노력을 기울여보지만, 결국 우울증에 걸려 고통의 나날을 보내다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그의 이런 10대의 방황은 『수레바퀴아래서』의 주인공 한스의 삶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수레바퀴아래서』의 주인공 한스는 주위사람들의 촉망을 받으며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입학한다. 어려운 히브리어 과목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며 매사에 모범적인 한스이지만, 늘 마음의 공허감을 피할 수가 없다. 두통으로 표현되는 그의 내면의 갈등은 결국 신경쇠약으로 이어지고 그는 학교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마을의 자랑이었던 그의 위상을 뒤로하며 공장의 견습공으로도 일해 보지만 삶의 의욕을 찾지 못하고 어느 날 강물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수레바퀴 아래의 삶     

 


선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청년의 발효가 시작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기에 조숙한 소년의 기질에서 나타나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다... 예로부터 천재와 선생들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있게 마련이다. 학교에서 보이는 그런 학생들의 몸가짐은 처음부터 선생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다. 천재들은 선생들에게 전혀 존경심을 보이지 않는 불량한 학생들에 다름 아니다. 진정한 천재들의 상처가 아물고, 학교 선생들에게 보란 듯이 오히려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모습에서 우리는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또한 훗날 이들은 죽은 뒤에 저 멀리서 비쳐오는 유쾌한 후광에 둘러싸인다. 그래서 마침내 학교에서 다른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걸작품 내지 고귀한 모범으로 소개되는 것이다.  
이렇듯이 학교마다 법규와 정신의 싸움판이 자꾸 되풀이되고 있다. 국가나 학교가 새롭게 자라나는 보다 귀중하고 심오한 젊은이들을 뿌리째 뽑아버리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더욱이 선생들에게 미움이나 벌을 받은 학생들, 학교에서 도망치거나 내쫓긴 학생들, 바로 이들이 후세에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재산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남과는 다른 두 젊은 소년들의 행위를 위험하다고 여긴 학교 선생들은 이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대신에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학교 규칙에 따라 곱절이나 엄하게 다스렸다.

 p.141   


수레바퀴로 비유되는 작품 속의 학교는 자유로운 영혼들을 내리누르는 힘이다. 내면의 소리가 아닌 외압에 의해 강요되는 생활의 비극. 법규와 정신의 충돌 속에서 남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이 발을 디딜 곳이 없다. 결국 전형적인 부적응자였던 하일러도, 그리고 점점 부적응의 상태에서 고뇌하던 한스도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한스는 권력자가 내민 오른손에 자신의 손을 얹어놓았다. 교장 선생은 그를 엄숙하면서도 부드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럼 그래야지.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p. 146  


수레바퀴라는 표현은 한스를 걱정하는 교장 선생의 말에서 등장한다. 지치지 않고 다시 원래대로의 생활로 돌아와야 바퀴에 깔리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결국 한스는 신경쇠약이 심해져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학교를 떠나 고향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한스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당황한 나머지 수레바퀴에 치인 달팽이처럼 촉수를 움츠리고 껍질 속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짐짓 싫증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방금 누군가가 죽기라도 한 듯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p.207


소녀 엠마와의 대화에서도 수레바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새로운 세상에 속한 듯한, 낯선 대상과의 관계에서 한스가 보이는 태도를 수레바퀴에 치인 달팽이에 비유했다.



구름 같은 삶    

  

수레바퀴아래 치어 자신의 촉수를 감추고 숨어버리는 삶과 달리 부딪히고 저항하며 시를 쓰는 하일러에게 한스는 호기심을 갖게 되고 그를 좋아하게 된다.      

 

우리도 저런 구름이 될 수만 있다면
그럼?
그럼 돛단배처럼 저 하늘 너머로 여행을 떠나겠지. 숲과 마을, 읍과 주를 넘어서 말야. 아름다운 배가 되어. 넌 아직 배를 본 적이 없지?    
저길 봐! 이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도 날겠지? <파라다이스>를 지나며 하일러가 물었다. 회당과 아치형의 창문, 행랑과 식당들 말야. 이게 다 고딕과 로마네스크풍이잖니. 풍성하며 정교한 이 건축물들은 모두 예술가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거란다. 하지만 이런 마법의 성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

p.106


한스가 동경했던 하일러에게는 구름 같은 자유로움이 있었다. 수레바퀴아래서 그들의 동경은 무참히 짓밟혔고 그에게 자유와 해방감을 주었던 어린 시절의 풍경은 사라졌고 친밀감을 가졌던 사람들은 그를 떠나고 만다.  

      


한스의 구원자들    

  

고향 마을의 절름발이 소년 헤르만 레히텐하일, 수도원에서 만난 헤르만 하일러, 그리고 이성에 눈을 뜨게 한 하일브론의 소녀 엠마는 한스를 한스답게 해주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과의 관계는 이어지지 못한다. 소꿉친구 레히텐하딜은 열병으로 한스 곁을 떠났고, 신학교의 시인이자 몽상가였던 하일러는 강제퇴학을 당하여 한스 곁을 떠난다. 과즙 짜는 일터 플라이크 아저씨의 조카딸 엠마는 아무런 말도 없이 어느 날 홀연히 그의 곁을 떠난다. 자기 자신에 눈뜨기 시작하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그를 이끄는 구원의 손길들은 여지없이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난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더 이상 그의 곁에 머물지 않고 있다. 풀을 말리고, 첫 낚시질을 하고, 가재를 잡고, 불을 지펴 감자를 굽는 일들은 그리움으로 남게 된다. 고향의 풍경, 꿈과 모험은 더 이상 그의 곁에 없다. 두통과 함께 점점 알 수 없는 신경쇠약으로 결국 마을의 자랑이었던 그의 모습은 실패자로 전락하게 만다.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의 생활에서도 그는 빛을 발견하지 못하고 어느 날 강물 속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여전히 질문 속에 있었던 저자의 상태를 반영하듯 소설은 미해결로 끝이 난다. 그래서 이 책은 구름처럼 살고 싶은, 과거의 꿈과 모험의 삶을 동경하는 저자의 절규로 보인다. 20대에 쓰였고 인생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시작점에서 제기하는 소년의 질문이기에 답은 보이지 않는다. 답을 향해 무한하게 열린 세상에게 손짓하는 소년의 절규가 그의 성장과 함께 어떤 메아리로 돌아올지는 후기 작품 속의 좀 더 성숙해진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살펴보고 싶다. 60년대 헤세 붐의 선두 역할을 했던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를 다음 작품으로 떠올려보며 헤세의 정신세계탐구를 이어보고자 한다.




    



최근 서울 서초구의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이 회자되고 있다. 이 책은 교권 아래 짓눌린 학생의 관점에서 서술되었지만 이와 동시에 또 다른 권력아래 짓눌리는 교사 역시 짓눌린 달팽이이다. 더 나아가 어떤 권위 아래 짓눌리는 많은 달팽이들이 있다. 아주 슬픈 현실앞에 마음이 무겁다. 이 책을 읽으며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젊은 새내기 교사의 고뇌가 오버랩되었다. 수레바퀴에 짓눌린 달팽이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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