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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Sep 09. 2021

저녁에 먹는 브런치

무엇이 중헌디?



몸과 맘이 지쳐있을 때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약이 된다는 세월과 함께 안보이던 것이 조금씩 보인다
그동안 쓰던 안경을 벗고 다른 차원의 안경을 쓰고 보니 앞으로 앞으로 무한 질주하는 일직선상의 달리기 코스가 아닌 빙글빙글 돌아 제자리로 환원하는 원의 궤도를 만난다. 달라진 차원은 언어로 변주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이 중헌디?



직접 보지는 않았으나 영화 <곡성> 속의  널리 회자되던 어린 소녀의 대사를 되뇌게 된다. 무엇이 중헌디? 무엇이 중헌디?


언젠가  어떤 모임에서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
한국사람 특유의 분위기답게 대답을 꺼리는 침묵이 꽤 지속되었다. 무슨 용기였을까 선뜻 내가 먼저 대답을 했다. 왜냐면 내게는 전혀 고민할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 자신입니다. " 당돌할 수도 있는 대답일 수도 있었고 주변을 의식했다면 대답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으나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제가 없다면 그 많은 사람들도 다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보니 변하는 내가 있지만 반면 변하지 않는 내가 있어요. 그 변하지 않는 진짜 나로 살고 싶어요."

인도자는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참석자 대부분 중년 여성들이라 남편. 아이. 부모님. 지도자 등의 대답이 나올 거라 예상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 역시 그런 생각 속에 살았으나 벼랑 끝에 서는 순간들은 고정된 사고에 균열을 일으켰다. 내가 없다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인가? 자칫 극단의 이기주의로 들릴 수 있는 이 절규는 가장 솔직한 내 목소리였다. 진정한 자기 사랑이 뒷받침되고 나서야 타인에의 사랑도 가능해진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교훈도 네 몸 사랑 즉 자기 사랑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은가? 자기 사랑도 타인 사랑도 아닌  껍데기만의 흉내는 마치 바람 빠지면 쪼그라드는 풍선인형 같다. 

이 지점에 이르니  내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오랫동안 낫지 않고 방치해둔 무좀으로 고생하는 발 치료를 받으러 갔다. 네일숍에서 하는 문제성 발 관리를 병원 치료와 병행하면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데 늘 제는 돈이다. 이 돈이면 가족 외식을 할 수 있고 KTX 타고 금방 지방에라도 다녀올 수 있고.... 망설여지는 이유가 따라붙는다. "아니야! 한 번이라도 내 발이 깨끗해졌으면 좋겠어. 여름철에 발가락을 드러내는 샌들을 신어보았으면 좋겠어. 올해도 더운 여름에 운동화만 신고 다녔잖아. 무엇이 중헌디? " 평생  이 몸 지탱하며 애쓴 내 발을 위해 거금을 투자하기로 했다.

치료를 받고 깨끗해진 발에 새 양말을 신고 아끼는 새 신발을 신고 길을 나섰다. 더 이상 식사 준비에 매이지 않아도 되는 나이는 불편한 점과 함께 혜택도 있다. 저녁식사시간이 되었지만 부리나케 밥하러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근처 공원 브런치카페에 갔다. 요 며칠  한적한 시간에 와서 사 먹고 싶었던 브런치 메뉴가 있어 가격 따지지 않고  카드를 내밀었다. 카페라테까지 곁들여 남김없이 먹었다. 나를 위해서 돈을 썼다. 발과 함께 마음이 깨끗해졌고 배와 함께 마음이 충만해졌다.


무엇이 중헌디?


저녁에 브런치를 먹으며 브런치를 쓰며 내 몸과 맘에 주는 자유를 경험하는 순간에 나는 위의 질문에 의기소침해지지 않는다. 진짜 내가 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혼자 하는 산책.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나비처럼 몸이 가볍다. 시원한 저녁 공기에 나비처럼 가벼운 걸음에 취해 어느새 밤이 깊은지도 몰랐다.  순간만큼은 세상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공원에서 보는 밤하늘 - 사진 나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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