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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Sep 08. 2021

오늘은 너의 침대가 되어줄게


몸이 찌뿌둥하다. 좀 더 젊은 날에는 무쇠 같은 줄 알고 일 년 열두 달 쉼 없이 사용하던 몸인데 하나둘 삐걱거리더니 이제는 아예 운행 모드가 저속으로 바뀐 상태에서 오래 머문다. 무슨 일이든 무리가 된다 싶은 일을 하고 난 이후에는 - 이전에는 전혀 무리라고 여기지 않았던 일인데도 이제는 무리의 기준이 달라졌다. - 쉬지 않으면 더 큰 AS가 필요하게 됨을 경험하게 되니 알아서 조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조심조심 하루하루 그렇게 살얼음처럼 보내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피곤 메시지를 온몸이 보낸다. 커피를 마셔보아도 정신이 들까 싶어 주전부리를 씹어보아도 소용이 없다. 결국 거실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창으로 하늘과 숲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내 옆에서 어슬렁거리던 양이가 풀쩍 내 배위로 올라 동그랗게 몸을 말고 주무실 준비를 한다. 나의 들숨날숨 시소를 기분 좋게 타며 어느새 새록새록 잠이 든다. 집사는 주인님 깰까 봐 일어나지도 못하고 침대로서의 역할을 빌미 삼아 오후의 낮잠을 더 청해 본다.



 

     

이제는 몸과 마음이 나보다 커버린 아이들이지만 갓 태어났을 때 내 품에 안겨 모유를 먹을 때의 순간이 떠오른다. 그 아이들이 어떻게 모유를 먹는 법을 알았을까?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가슴을 비비며 생명의 공급처를 찾아내고 열심히 엄마의 젖을 빤다. 배가 차오르면 새근새근 잠든다. 그때 그 순간은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해본 몇 안 되는 지락(至樂)의 순간이었다. 근원과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순간. 나도 아이도 하나가 되는 순간.


     

그러다 아이는 개체로서 분리되며 독립체로서 살아가게 된다.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기도 하고 같이 있어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기도 한다. 새로운 연결을 시도하기도 한다. 건강한 연결을 경험한 아이들은 건강하게 독립되어 가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자꾸 아프기 마련이다.   


   

말하지 못하는 양이는 어떨까? 내 다리춤에 기대어 자던 양이를 몇 달 멀리해야 했다. 몸상태가 좋지 않았고 면역이 약한 내게 고양이를 가까이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판단이 들어 가급적 멀리해야 했다. 녀석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는 평소에 하지 않던 일탈행동을 보였다. 베개에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그러던 녀석이 오늘 내 배 위에서 쌔근쌔근 잠자는 걸 보니 어린 시절 나의 아가들이 젖 먹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고향에서 느끼는 그 안온함을 아주 모처럼 만끽하는 양이한테 많이 미안하다. 그래서 더더욱 침대는 가만히 침대로 있어야 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고향(근원)에의 갈망이 있다. 그것은 다양한 모습으로 경험될 것이다. 나의 양이는 어느새 내 몸이 그의 고향이 되었나 보다.



오늘은 너의 침대가 되어줄게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의 말을 빌어본다면 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너의 침대가 되어줄게. 이것으로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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