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헨리 단편선. 마지막 잎새. 1917. 민음사
희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유명한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은 단연 그림을 그리고 죽어간 베어먼 영감이다. 그는 자신이 결핵을 앓고 있는 60세 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가는 존시에 대한 연민을 행동으로 옮긴다.
베어먼 노인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숨김없이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그런 멍청한 상상에 대한 경멸과 조롱의 말을 마구 퍼부었다.
“맙소사! 그 빌어먹을 담쟁이덩굴에서 이파리 좀 떨어진다고 죽겠다는 멍청한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그런 말은 처음 들어. 아니, 세상을 등졌다는 멍청이 역할의 모델 노릇은 안 할 테야. 어째서 존시가 머릿속으로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게 내버려 주는 거지? 가엾은 존시 양.”
“젠장! 여긴 존시 양처럼 좋은 사람이 앓아누워 있을 곳이 못 되는데. 언젠가 내가 걸작을 그리면 그땐 다 같이 여기를 떠나자고. 그럼! 꼭 그러자고.”
워싱턴스퀘어 서쪽의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 사는 ‘예술인 거리’에서 알게 된 수와 존시는 삼 층짜리 벽돌 건물 꼭대기에 공동작업실을 마련하고 지낸다.
그해 번지기 시작한 폐렴이 존시를 덮쳤고 의사는 회복 가능성을 열에 하나로 본다. 몸져누운 자리 옆 창밖에 보이는 휑한 담벼락에 힘없이 올라가 있는 담쟁이덩굴이 있다. 덩굴의 앙상한 가지에 매달린 잎들이 하나 둘 떨어져 가는 것을 세고 있던 존시는 남아있는 잎사귀와 자신의 생명을 일치시키며 낙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포도주는 이제 살 필요 없어. “ 여전히 창밖만 바라보며 존시가 말했다. ”또 하나 떨어지네. 됐어. 수프도 먹고 싶지 않아. 이제 딱 네 개 남았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걸 보고 싶어. 그러고 나면 나도 떠날 거야. “
존시를 위해 수는 1층에 사는 화가 베어먼영감에게 수의 사정 이야기를 하고 담쟁이넝쿨의 잎새를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마침 그날은 밤새 쉼 없이 세차게 비가 쏟아지고 사나운 돌풍이 불었다.
온밤 내내 쉼 없이 세찬 비가 쏟아지고 사나운 돌풍이 불었는데도 담쟁이덩굴 잎사귀 하나가 벽돌담을 배경 삼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덩굴에 붙어 있는 마지막 잎새였다. 줄기에 가까운 부분은 아직 진한 초록생이지만 톱니 모양의 가장자리는 소멸과 쇠퇴를 나타내는 누런색으로 시든 채 지상 6미터 정도의 높이의 가지에 용감하게 매달려 있었다.
여전히 건재한 잎새를 보고 존시는 비로소 희망을 갖는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내가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알려 주려고 저기에 저 마지막 잎새를 남겨 둔 거야. 죽기를 바라는 건 죄악이야. 이제 나한테 수프를 조금 가져다줘. 포도주를 약간 넣은 우유도. 그리고.. 아니다. 먼저 손거울부터 가져다줘. 그다음에 등에 베개를 몇 개 더 받쳐 주고. 일어나 앉아서 네가 요리하는 걸 보게... 수, 나 언젠가는 나폴리 만을 그려보고 싶어.”
수의 회생소식과 함께 들린 소식은 베어먼의 사망소식이었다. 자신도 폐렴을 앓고 있는 60세 노인이 수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담쟁이덩굴 잎새를 남긴 채.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이야기한다. 결국 존시는 죽게 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를 멈추고 수프와 포도주로 원기를 회복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나폴리 만을 그리겠다는 희망을 품는다. 그는 병세가 좋아져 큰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
수는 죽어가는 친구를 위해 큰 결심을 하고 1층 베어먼 영감에게 도움을 청한다. 물론 그녀가 직접 그릴 수도 있지만 3층건물 높이의 벽이었고, 자신은 아픈 친구를 옆에서 계속 간호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베어먼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도 아마 자세히 몰랐을 것 같다. 친구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현실 앞에 주저앉지 않고 방법을 찾아 나섰다.
베어먼은 자신의 몸 상태를 생각하고 도움요청을 거절할 수도 있었으나 존시에 대한 연민으로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위험을 감수한다. 그런데 하필 그날 날씨는 그를 돕지 않아 그는 결국 급성폐렴으로 건강이 악화디어 사망하게 된다.
아름다운 삼중창의 결과물이다. 비록 베어먼은 죽었지만, 그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무한 긍정이다. 그는 죽었지만 존시를 일으킴으로 영원히 살아 있다. 존시와 수의 마음속에 베어먼은 죽지 않을 것이고, 작품을 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베어먼에게서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살아 있는 한 사랑하며 산다면 죽어도 산다.
어떤 이유로 존시처럼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고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도 죽게 되리라는 절망감에 빠질 때, 살아야 할 이유를 마지막 잎새에서 찾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자연일 수도, 옆의 친구일 수도, 아니면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잎새를 보며 힘을 얻고, 누군가의 잎새가 되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의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덥고 긴 여름, 어젯밤 잠을 설쳤을 수도 있을 힘든 시간, 어쩔 수 없이 일터에서 텁텁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도 바로 근처에 마지막 잎새가 있다.
<작가소개>
본명이 윌리엄 시드니 포터인 오헨리 (1862-1910)는 미국 캐롤라이나 주 출생이다.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지인 소개로 은행에 취직하여 일하다 횡령 혐의로 고소당하고 5 년 간 교도소에 복역하는 중 ‘오 헨리’라는 필명으로 단편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모범수로 삼 년 삼 개월 만에 조기 출소 후 <뉴욕 선데이 월드>에 단편 113편 발표 전국적인 명성을 얻는다. 폭음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1910년 (48세)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