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동방 박사의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오 헨리. 1917. 민음사
기울어가던 가세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형편에 있던 짐과 델 부부는 각각 상대를 위한 가장 요긴한 선물을 구하기 위해 자신에게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팔게 된다. 아내는 남편의 시계를 매달 수 있는 시계줄을 사기 위해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팔고, 남편은 아내의 머리에 꽂으면 어울릴 장식용 머리빗을 사기 위해 자신의 시계를 판다. 결국 각자 상대에게서 받은 선물은 당장 무용지물이 되었다.
아기예수의 탄생을 위해 동방에서 찾아온 세 동방박사는 세 가지 선물 즉 황금, 몰약, 유향을 바친다. 작가는 짐과 벨의 지극히 어리석어보이는 행동을 다루며 그들이야말로 현명한 동방박사라고 강조한다.
세 동방 박사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현명한 사람들이었다. 경이로울 만큼 현명한 사람들이어서 말구유 누운 아기 예수께 선물을 가져갔다. 그들이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는 풍습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현명한 사람들이었으니 그들의 선물 또한 의심의 여지없이 현명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현명한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한마디는, 선물을 건넨 모든 사람들 가운데 이 두 사람이 가장 현명했다는 것이다. 또 선물을 주고받은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들이 가장 현명하다. 그 어디에서라도 그들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다. 그들이야말로 동방 박사이다.
크리스마스 선물. 오 헨리
선물이란 받는 사람에게 주는 사람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많은 선물을 주고받는다. 그다지 어렵지 않다. 돈이면 해결되니까. 클릭 한 번으로 주문하여 상대에게 도착하기도 한다. 자주, 물건의 가격으로 마음이 평가받는다. 달마다 선물을 사야 할 일이 있다. 생일, 기념일, 절기에 따른 선물. 깊은 마음을 담아야 하는 선물 외에도 의례적으로 해야 하는 선물도 많다. 넘치는 선물행위 속에 어느새 선물은 화폐가치로 평가되고, 선물보다 현금이 가장 좋은 선물이 되었다. 상대를 위해 무엇을 살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 없어지게 되었다. 나 자신도 현금을 더 좋아하고, 가장 좋은 선물은 물건보다 현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확실히 돈은 많은 것을 해결해 주니까.
그런데 돌아보니 기억나는 선물은 결코 돈이 아니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받아도, 그것은 그때뿐이었다고 할까. 그런데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전달되는 선물들은 기억에 남는다. 정말 그랬다. 왜냐면 선물을 통해 나는 그들의 사랑을 알 수 있었으니까.
A는 오징어를 좋아하지 않는데 직접 시장에 가서 오징어를 사와 손질하여 최근에 배운 레시피로 오징어구이를 해 주었다. 요즘 기력이 떨어져 힘들어한다고 국물의 왕 백합조개로 조개탕을 끓여주었다. 포도당은 몸에 바로 흡수되는 에너지원이라며 샤인 머스켓 포도를 사 왔다. 한잔의 포도주를 곁들여 준다. 돈으로 치면 큰 액수 아닌데, 한 끼 차려주는 식사는 잊을 수가 없다. 왜냐면 나를 생각한 그의 정성이기 때문이다.
B는 편지지가 없어서인지 작은 노트를 뜯어낸 한 장의 종이에 연필로 정성스레 글을 적어 내려갔다. 한 해를 끝내는 종업식날이었다. 그동안의 시간에 대한 감사를 전했고, 앞으로의 내 길을 응원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칡즙, 센베, 뻥튀기. 그야말로 노인용 음식을 이것저것 사서 넣은 비닐봉지와 함께. 참으로 촌스러운 선물이다. 그럼에도 따뜻했다.
C는 내가 좋아하는 식당의 음식을 사서 문 앞에 걸어두고 갔다. 코로나 격리상태였기에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음식을 해 줄 사람도 없는 걸 알고 직접 사가지고 왔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그는 알고 있었고 내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 지쳐있던 나는 힘을 얻었다.
D는 내 생일날 직접 반찬을 만들어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그가 코로나 감염으로 격리상태였기에 나가서 식사를 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내가 자는 새벽에 일어나 서투른 솜씨로 미역국을 끓이고 내가 좋아하는 새우로 전을 부쳐 식탁에 올려놓고 방에 들어갔다. 내 생일이 쓸쓸하지 않기 위한 그의 위로를 나는 마음으로 먹었다.
E는 직장일로 바쁘다. 그래서 아주 가끔씩 만나지만 만날 때마다 내게 따뜻한 감동을 준다. 나를 만나기 전에 나를 오래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작은 선물들을 준다. 내게 꼭 필요할 것 같은 책을 직접 책방에 가서 한참을 고민하며 골라온다. 그리고 빈말 아닌 한 자 한 자 눌러쓴 엽서와 함께. 요즘 들어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도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할 것 같은 책을 고르는 것은 조심스럽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떻게 내 마음을 이리도 잘 알아줄까 싶을 정도로 과녁을 제대로 맞히는 선택들!
생각해 보니 짐과 벨 같은 어리석어보이는 행동까지는 아닐지라도, 위대한 선물들을 많이 받았다. 반면 나는 위대한 선물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다. 딸아이의 생일인데 습관처럼 뭘 먹을까 뭘 사줄까 하는 자동반사적인 생각을 하다가 잠시 멈추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현명한 선물은 무엇일까? 나도 잠시 그의 동방박사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