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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Oct 04. 2021

눈물의 美學

눈물은 아름다운 물

 

흐르지 않는 눈물     

 


흐르는 눈물은 괴로우나 그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흐르지 않는 눈물이다.  - 아일랜드 속담 -      



인간답지 못한 경우를 빗대어 피도 눈물도 없다고 한다. 당연한 감정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물리적으로 뇌에 손상이 갔을 때가 있고 둘째, 정서적 충격이나 학습에 의해 감정을 억압당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골든타임을 놓치는 바람에 바로 수술을 하지 못하여 그 사이 뇌세포의 일정 부분이 손상되었다. 수술 후 회복을 하셨어도 인지장애뿐 아니라 감정의 장애를 나타내셨다. 특이한 것이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때 알게 되었다. 감정은 뇌의 작용이라는 것을.       


아이들에 비해 어른들이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도 뇌의 작용과 관계있을까? 아이들은 감정에 상대적으로 솔직하여 기쁨이나 슬픔에 바로 반응한다. 그것도 격하게 소리를 질러 표출한다. 반면에 나이가 들수록 감정의 표현에 인색해진다. 처한 문화, 환경에 따라 특정한 감정 표현이 권장되기도 하고 억압되기도 한다. 그것이 누적되면 아예 감정을 느끼는 것에도 장애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은 남성들로 하여금 슬픔이라는 감정을 억제하게 한다. 인식이 감정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흐르지 않는 눈물은 그런 이유와 관계가 있다.      




모든 감정의 끝은 눈물     


모든 감정의 끝은 눈물이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조선의 비좁은 땅을 벗어나 광막한 중국의 대평원을 바라본 순간의 충격적 감상을 말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났으니 실컷 울어봐야겠다고 했다. 그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칠정(七情)의 감정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된다고 설명했다.   

   

나는 박지원의 이 통찰에 깊이 동감한다. 우리는 슬프거나, 화나거나, 억울할 때만 아니라 기쁘거나, 극도의 환희의 순간이거나, 감격의 순간, 경이로운 순간에 조차 눈물을 흘리지 않던가? 가히 모든 감정의 끝에는 눈물을 흘리게 된다. 




고마운 눈물      



문학작품이나 공연 등의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이 되어 그 감정을 함께 표출하는 것을 카타르시스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 나온 이 카타르시스(katharsis)라는 그리스어는 정화(淨化)라는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는 한편, 몸 안의 불순물을 배설(排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부분 극한 감동의 경우 눈물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때의 경험은 후련함, 시원함을 가져온다. 눈물을 통해 속에 응어리져있던 감정이 밖으로 빠져나가 정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감정의 끝이 눈물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카타르시스가 배설, 정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눈물은 매우 고마운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영화 <자산어보>를 보고 나서 이와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눈물과 함께 먹먹한 가슴이 참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등장인물 창대의 설움에, 분노에, 기쁨에, 후회에, 깨달음에 내가 녹아들었다. 그래서 그와 함께 피눈물이 났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 감정을 많이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아이들을 먼저 집으로 보내고 혼자서 주변을 걸으면서 그 먹먹해진 가슴을 느꼈다. 눈물이 밖으로만 흐르는 게 아니라 내 존재를 흘러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답답하게 나를 덮고 있던 찌꺼기가 눈물과 함께 흘러나가고 다시 원형의 심장, 원형의 꿈, 원형의 나의 정신을 만나는 것 같았다. 잃어버린 것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다시 흐르는 눈물이 고마웠다.      


감정의 끝인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막는 어떤 작용이 있는 것이다. 눈물은 흘러야 한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내 속의 응어리가 밖으로 터져 나와 정화되는 과정이다. 나를 다시 윈시로 고향으로 돌려놓는 마법과 같은 존재이다. 나를 덮고 있던 껍질이 깨어지고 진짜 내 얼굴을 대면하게 되는 순간이다. 비겁한 내 얼굴 앞에, 위축된 내 얼굴 앞에, 때로는 화난 내 얼굴 앞에 선다. 그래서 슬픔으로, 위로로, 격려로 그 얼굴을 대한다. 진짜 내 심장을 느낀다. 다시 내가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내가 가야 할 길을 가고자 힘을 얻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눈물이 흐른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살아있다는 뜻이다. 눈물은 아름다운 물이다.      


눈물아, 마르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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