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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Jan 24. 2022

엄마의 가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1. 이렇게는 안 되겠어


     

 더 이상 못 견디겠어



살다 보면 이럴 때가 있다. 각자의 탈출구가 있겠지만, 이번에 나는 가출을 했다. 삶이 꽁꽁 묶인 코로나 상황이 2년이 지속되며, 어느새 방콕 생활이 익숙해지긴 했다. 그런대로 집안에서의 생활을 즐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다 할 때가 불쑥불쑥 생긴다. 탈출할 구멍이 있으면 삶의 위기도 모면하며 지나가기가 수월한데 구멍이 없으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모든 게 짜증이 난다. 더 이상 못 견디겠어.


토요일 저녁에 불쑥 옷을 챙겨 입고 아무 계획 없이 밖으로 나왔다. 저녁 산책을 즐기는 나로서는 별다를 일도 아니었다. 왜였을까? 사람 없는 한적한 길이 지겨워졌다. 대신 내가 향한 곳은 고속터미널. 주말이어서인지 여행 차림의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설레는 그들을 보니 나도 여행객이 된 듯하다. 살아있는 것 같다. 얼마만인가 이 기분..


오래 여행을 하지 못했다. 코로나 때문에, 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 건강 때문에. 그러다 보니 칩거생활이 너무 오래되었다. 고속터미널은 이전의 터미널이 아니다. 완전히 새로 지어져 현대식 시스템으로 변했다. 여하튼 활기를 느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왜 이리 마음이 흔들리는지... 그런데 당장 어딜 가려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언제나 그러하듯 내 마음은 부산에 머문다. 내 고향 부산! 고향을 떠난 지 40년이 다되어간다. 타향살이가 고향살이의 두배가 되어간다.

     

생각해보면, 이 병은 명절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오늘에야 알았다. 이게 향수병鄕愁病이라는 걸. 고향이 그리워 생기는 병. 이미 고향 같은 타향살이 익숙해졌는데 웬 말인가? 결혼을 하고 나서 친정이 먼 나는 고향방문은 언감생심이었다. 시댁행사가 당연한 일이었고, 너무 멀어 방문하지 못하는 친정에 대한 그리움은 늘 마음속에만 묻어두었다. 그러나 그마저 두 분 다 돌아가시고 더 이상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바삐 돌아가던 그 격동의 시간들이 다 지나갔는데, 왜 명절이 되는데 내 마음은 고향으로 향하는 것일까?      



2. 작전 개시      



지금 당장 떠날까? 아무 예정 없이 급작스럽게? 이제는 오프라인 창구보다 온라인 창구가 대세다. 매표소도 거의 온라인으로 처리하게 되어 있다. 부산행 매표를 시도해본다. 심야운행도 있고 가능한 좌석도 있다. 클릭만 하면 발권이 가능하다. 잠깐 망설여진다. 그런데, 지금 출발해서 도착하면 한밤중. 한밤중에 도착해 어디서 자나? 동생을 그 시간에 나오라고 하기엔 그렇고..... 한창 청춘이면 뭐 대합실이든, 찜질방이든 방법이 있겠지만, 몸이 이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좀 더 현실적인 접근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아니야. 지금 출발해도 시간이 애매하니, 아예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게 낫겠어.


결국 다시 집에 돌아와서 작전 준비를 한다. 야심한 시간에 온갖 음식을 부지런히 만든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지만, 왠지... 걱정할 가족의 마음을 달래느라, 맛난 거라도 해 놓고 가야겠다 싶어 전복죽에 전복구이까지 아예 보양식으로 그득 해놓았다. 다행히 동생은 다음날 시간이 된다고 한다. 안된다 해도 혼자 고향 바람 쐬러 갈 참이었는데,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니 한결 안심이다. 가족의 먹을거리만 준비되면 다른 건 문제도 안된다. 집에서 가까운 수서역 SRT가 시간이 2시간 반밖에 안 걸린다. 체력을 위해 소요시간 짧은 고속열차로 가기로 결정. 빈자리 많으니 현장 구매하기로 함. 모든 준비 완결. 잠이 안 온다. 설레어서일까?      



3. 출격      



일요일 아침. 사방이 조용한 시간에 일찍 일어난다. 커피를 내려놓고 조용히 옷을 입고 살며시 아무도 몰래 나온다. 성공.... 야호! 집에서 수서역까지 거리는 멀지 않은데 전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일요일 이른 시간이라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 꼭두새벽에 중년 여성이 어딜 가는 거지? 그러거나 말거나. 딴에는 일찍 나섰는데, 출발 가능한 제일 이른 시간은 8시이다.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미리 예매를 하지 않았던 것은 예매를 하면 그 시간에 매이는 게 싫어서였다.     

 

드디어 출발. 출발하면서 문자를 남긴다. 그래도 걱정할까 봐. 행선지 알리지 않고 볼일 있어 잠시 다녀온다고.. 잠시가 얼마나 될지 모르면서....     

 

승차권을 따로 확인하는 절차도 없이 기차에 오르는 것은 뭐 그리 싱겁고 간단한지. 내가 탄 객차에는 한 5명 정도 있나 그야말로 텅텅 빈 채로 열차는 출발한다. 그래서 더 한적하고 좋았다.      



4. 동맹과의 접선   



"나 지금 출발했어. 고속열차라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아. 내려서 밥이라도 먹고 시간 보낼 테니 천천히 나와도 돼"


나의 동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빠보다 더 오빠 같은 동생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동생은 늘 내 주변을 맴돌며 나를 지켜주는 존재였다. 내가 오히려 동생 같았다. 그렇게 듬직한 동생이라,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상태에서 형제라고 오빠와 동생밖에 없지만 일 때문에 외국에 있는 오빠 외에 단 하나뿐인 형제인 동생이 내겐 큰 의지가 되었다. 내가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나 열일 제쳐놓고 와서 도와주던 동생이다. 오늘처럼 이렇게 마음이 힘들 때, 돌아갈 고향은 곧 듬직한 동생이 있는 곳이었다. 그 동생을 만나 이런저런 신세타령도 하고 싶은 날이었다. 뛰어야 벼룩이지. 내가 집을 나와본들 어디 갈 곳도 없다. 귀여운 반란이 출발하고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이 중요하니, 이런저런 핑계 대지 말고 마음이나 잘 다스리자며 꾸역꾸역 지내고 있던 터였는데, 왜 그런지 그게 힘든 순간이 있다. 중요한 모임도 땡땡이치고, 그야말로 일탈이다.

    

헬리콥터 맘이 아니라, 헬리콥터 동생처럼, 어디서나 짠 하고 나타나는 맥가이버 동생, 인간 내비게이션. 그만 옆에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는 동생. 오래 못 본 동생. 그 동생이 있는 곳으로 기차는 점점 다가가고 있다.  부산역에 다가가니 아니나 다를까 ‘누나! 누나가 탄 기차가 몇 호야? 내가 바로 앞에서 기다릴게’ 정확하게 전화가 온다. 내리니 바로 앞에서 떡 하고 기다리고 있다. '누나! 주차장에 차 세워놓았으니 그리로 가자.'   

   

그런데

아... 뭐가 이상하다.  걸음걸이가....  

    

동생의 허리는 이전부터 조금 좋지 않았다. 체중감량을 하면서 관리를 잘못한 때문인지 근육 손실이 왔고, 허리에 무리가 가면서 디스크 증상이 나타나 꽤 고생을 한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말은 담담하게 하지만, 하늘의 별도 떨어뜨릴 것 같았던 동생인데, 저런 걸음걸이는 뭔가 심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덜컹, 처음으로 동생의 꺾인 모습!  '아, 동생도 늙어가는구나!' 다리가 불편해서 자세가 약간 기우뚱한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빈속에 기차를 타고 와서인지 영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일단 속을 채우기로 했다. 콩나물국밥이 제일 먹고 싶었다. 부산에서 맛집으로 유명하다는 집에 가서 배를 채우고, 드라이브를 했다. 동생이 걷는 것이 불편하여 함께 걸을 수 없어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다. 옛날에 살던 동네, 그리고 오륙도가 보이는 바다, 동백섬과 해운대 엘시티 보이는 산까지 불편한 다리로 모처럼 방문한 누나를 위해 동생은 거침없이 차를 몰았다.

    

  

광안대교와 해운대 동백섬등 부산 전역이 내려다 보이는 높은 산에서



5. 말없는 대화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으로 향한다는 속담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살다 지치면 고향을 생각한다. 향수병이라는 게 뭘까 싶었는데 아마 내가 지금 앓고 있는 게 그것과 관련 있지 않을까 싶다. 시간으로 따지면 타양살이가 더 많은데 나는 마음이 울적할 때면 고향을 그리워한다. 엄마를 추억하며, 어린 시절의 향수를 떠올린다.. 그 마음을 알아차린 동생은 나를 우리가 살던 어린 시절의 동네로 데려다주었다. 이런저런 어린 시절의 이야기.... 아 맞아 그랬었지.. 그랬구나.... 마음은 다시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 고향을 떠났으니, 오랜 시간이 지났다. 마음은 여전히 그때의 우리인데 몸은 늙어가고 있다. 하나 둘 우리의 어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고, 하나 둘 떠나고 있고, 언젠가 우리도 떠날 날이 올 텐데...

    

"제일 힘든 건 고립감이야. 이 년 동안 너무 힘들더구나. 나이 드는 것과 더불어 코로나 상황이라는 게 사람을 참 고립시켜. 앞으로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고. 만나는 걸 경계하고 있잖아. 친구들 만난 지도 오래되어가고 그러다 하나둘 멀어지는 것 같아. " 차를 마시며 내가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은 동생도 허리 통증 때문에 하던 일을 못하게 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일일이 말할 수 없는 고충이 많은 것 같았다.    

     

말 대신 다른 언어로 우리는 서로 말하고 있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일까? 우리는 다른 말 없었지만,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 같다.


아프구나... 살아내자. 힘내자.

     

집에서 쉬었다 가라는 동생을 만류하고, 바로 서울로 향했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었고, 동생의 상황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마음은 아픈데, 내 안의 온갖 원망들은 잠잠해졌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히려 그동안의 피곤이 풀어지듯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6. 다시 일상으로      



고속터미널에서 내려서 지나는 길에 없는 게 없다는 다0소가 눈에 뜨인다. 마침 커피 필터를 사야 해서 들렀다. 덩달아 사려고 벼르던 노트며 문구류를 잔뜩 샀다.  1월이 한참 지나 늦은 감이 있지만 미루다 못 사고 있던 새해 다이어리도 챙겼다. 아무것도 못할 것처럼 가라앉았는데 이미 나는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그 시절은 참담했지만, 낙담하지 않고 그녀는 살아내었다. '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만난 브런치 작가 동네책방 할아버지 작가의 글 <쉬이 늙지 않기를 바라요>의 첫 구절이다. 그래도 살아내는, 오히려 손을 건네는 따스함. 그 따스함으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또 살게 하는 순환. 글에서 깊은 위로를 만났다. 

 


가출하고 하루도 넘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늦게 집에서 먹는 밥, 개운한 샤워, 그리고 어질러져 있는 나의 책상. 다시 지난한 나의 일상 앞에 앉았다.  폴 발레리의 고백이 떠오른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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