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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Feb 06. 2022

내 안의 지킬과 하이드

뮤지컬 <지킬과 하이드> 공연을 보고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


여러 가수에 의해 불리어진 시인과 촌장의 노래 <가시나무 새>의 첫 구절이다. 내 안에 내가 많다니! 그런데 살다 보면 경험하며, 굉장히 괴롭다. 누가 진짜 나인지 궁금하고 해결이 안 된다. 현대판 가시나무 새의 고민을 이미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Robert Louis Stevenson)이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으로 구현해 내었다. 이 원작을 각색한 뮤지컬 지킬과 하이드를 통해 인간의 양면성을 고찰하고 뮤지컬 장르에 대한 소회를 기록해 보겠다.


          

1. 인간 내면의 지킬과 하이드

      

    

“만약 각각의 본성을 별개의 개체에 담을 수 있다면, 참을 수 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일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부조리한 존재는 그의 고결한 쌍둥이의 열망과 자책으로부터 해방되어 그만의 길을 가고, 정의로운 존재는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높은 곳을 향한 그의 길을 가면 될 것이다.” -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 중    

  

지킬박사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사람의 정신에서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는 치료제 연구를 한다. 악을 분리해 내고 선만 선택하여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학자로서의 사명감에서였다. 이는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라 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반대를 받고 결국 스스로가 임상실험의 대상이 된다. 치료제를 자신에게 투입하자 나타나는 하이드라는 제2의 인물과 원래 지킬 그 둘의 갈등이 작품 전체를 흐른다. 지킬과 하이드는 개인 안에 있는 선과 악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작품이 발간되자 큰 파장을 일으킨 이유 중의 하나는 인간이 품은 선과 악의 갈등과 대결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흔하게 접하는 주제이지만 당시로서 파격적이었던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작품이 발간된 당시의 시대상황을 좀 들여다보겠다.    

  

작품이 발표된 1886년의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에 속한다. 영국 역사에서 빅토리아 시대는 1837년 6월 20일부터 1901년 1월 22일까지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를 일컫는다. 이 시대에는 감리교회 같은 비성공회 교회와 복음주의적 성공회가 이끈 열렬한 종교적인 운동이 있었고, 식민지를 둘러싼 열강과의 적대감에 따른 크림전쟁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이다. 제국주의적 팽창에 나선 영국이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 중의 하나인 대영제국을 형성하던 시기였다. 사상적으로는 이성주의에 저항하는 낭만주의가 최고조에 달하고, 종교 사회적 가치와 예술에서 신비주의가 목격되는 시기였다.   





대영제국에 걸맞은 시기였고 변화와 개혁이 일어나던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기성 집단의 위선과 기존 규범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이 있었다. 가부장적 사회의 편견과 억압에도 에밀리 브론테, 샬롯 브론테, 제인 오스틴 같은 여성 작가들이 소설가로 활동한 시기였던 것을 보면, 움츠러들어있는 힘이 외부로 드러나기 시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규정된 선과 악이라는 틀 안에서, 분출되지 못한 내면의 욕구들이 있었고 그것이 작품화되는 것이 허용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그 일환으로서의 이 작품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고, 파장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파장이라 함은, 기존에 다루지 못한 금기시되던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었기 때문이고, 인기를 얻었다 함은 어떤 면에서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기 때문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우수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지킬의 내면에 사실은 사람을 죽이고, 쾌락을 탐닉하는 악마적인 속성이 있었음을 드러낸다. 작품 중에 특히, 종교지도자의 이중성에 대한 고발, 사회 전체가 쓰고 있는 가면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 계속된다. 무엇이 진짜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200여년 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인간의 고민이 다르지 않다는 것에 놀라웠다.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재였지만, 많은 버전의 영화, 변형 작품들이 계속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고민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인간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습대로 길들여져가고 있고, 자기 안의 다른 얼굴들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감추려 한다.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2. 뮤지컬 지킬과 하이드    


  

2021.10 - 2022.5 샤롯데 씨어터 에서 공연중인 뮤지컬 <지킬과 하이드>


뮤지컬 지킬과 하이드는 1990년에 휴스턴 Alley Theatre에서 초연되었고 한국에서는 2004년 논레플리카로 첫 공연을 한 이후로 17년간 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생명이 긴 공연이다. 레플리카는 원작을 변형 없이 그대로 공연하는 것과 달리 논레플리카는 시기와 상황에 따른 변주가 가능한 형태다. 2021년 10월에 시작해 22년 5월까지 진행되는 이번 공연의 프로듀스는 신춘수, 작곡은 프랭크 와일드혼, 연출은 데이빗 스완, 그리고 음악감독/지휘는 원미솔이 맡았다.    

  

뭐든지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해졌다. 순간을 살지 못하고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를 찾다가 현재를 놓치는 것을 반성하다 보니, 모든 영역에 있어서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예술장르도 마찬가지로, 만들어진 것을 앵무새처럼 그대로 따르는 것보다 순간의 감정을 따라 즉흥적으로 흐르는 재즈음악이 좋고, 미술도 바로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을 행위로 보여주는 행위, 설치미술들에 관심이 생긴다. 같은 맥락에서 뮤지컬이라는 공연예술은 현장감의 극치미를 즐길 수 있는 장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브런치 작가 마마뮤님의 글 '예술이 글로 남겨져야 하는 이유'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공연예술에서 통했다. 스토리를 다 알고 가면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으나 뮤지컬의 경우는 스토리 외에 다양한 작업들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공연에 대한 사전 정보를 가지고 관람하니 좀 더 여유 있게 세밀하게 볼 수 있었다. 세 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졸 틈이 없었다.


현장예술인 연극과 뮤지컬의 차이점은 당연 음악에 있다. 대사의 대부분이 음악으로 전달되니 음악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장르이다. 뮤지컬의 음악을 넘버라고 하는데, 이번 뮤지컬에는 총 41개의 넘버가 소개된다. 우리가 익히 들어와서 익숙한 음악들 외에도 주옥같은 작품들로 가득하니 꼭 음악감상의 기회를 가져보기를 권한다.     


음악

      

그 중에서 내가 아주 인상적으로 보았던 넘버 4 facade는 단체 합창과 무용으로 이루어져 박진감 있고 몰입감 있게 보았다. 가짜가 판치는 당시 풍속도를 꼬집으며 인간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지금 이 순간>으로 유명한 넘버 16 <This is the moment>는 치료제 개발로 고민하던 지킬이 결국 자신을 임상 대상으로 하기로 결정하며 알 수 없는 미래 앞에 고뇌하던 선택의 순간을 노래한다.

     

넘버 18 < Alive>는 약을 투입 후 하이드로 변모하며 자기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의 노래이다.      


그 외 엠마와 루시와 같은 여인들과의 로맨스를 다루는 부분도 백미이다. 엠마가 지킬과의 사랑의 추억을 반추하며 부르는 넘버 27 < Once upon a dream>이나 루시가 지킬을 보고 설레는 순간을 노래하는 넘버 23 <Someone like you>, 그리고 루시가 새로운 인생을 기대하며 부르는 희망의 찬가 넘버 35 <A New Life>등 아름다운 곡들의 감동이 크다.

 

뮤지컬이 시작할 때 무대 하단 쪽에 머리 1/3 정도만 살짝 나와있는 무대감독이자 지휘자가 뒤돌아서 인사를 하며 공연이 시작한다. 무대 아래쪽에 오케스트라가 배치되어있고 지휘자는 배우와 호흡하며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부분이 소름이 끼쳤다. 모든 영역이 다 중요하지만 나는 지휘자가 뮤지컬의 꽃이라고 생각한다. 무대 아래의 오케스트라와 무대 위의 배우를 연결하는 접점이었다.      


조명, 무대, 의상      


무대예술이 진화하고 있다. 이전에는 막과 막이 바뀔 때 커튼 안에서는 무대의 장치들을 이동하느라 사람들이 분주했었는데 이제는 레이어드 같은 무대들이 자동으로 바뀌며 극의 호흡을 끊지 않고 이어준다. 이번 공연에서는 1층과 2층, 오른쪽과 왼쪽, 앞과 뒤로 대비를 이루는 다이아몬드형 무대를 기본 틀로 해서 조명 처리로 공간의 차이를 드러내었고, 5m 높이를 꽉 채우는 1800 여개의 메스실린더로 구성된 지킬의 실험실은 지킬의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극대화 시켜 보여주었다. 2005년 발표된 초기 뮤지컬의 무대와는 확연히 진보된 모습이었다. 게다 빅토리아 시대의 모습을 제대로 복원해준 의상도 볼거리였다.      


배우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커튼콜과 동시에 관객이 모두 기립해서 박수를 쳤다는 것으로 대신해도 충분하겠다. 앞에서 두 번째 줄,  음악감독의 머리가 보이는 자리에서 관람을 하게 된 나는 배우들의 미세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특히 군무, 합창 부문에서 눈에 띄지 않는 엑스트라들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쫓아가 보았는데, 어느 누구 하나 흐트러짐 없이 역에 몰입하는 진지함을 보고 감동했다. 예컨대, 결혼식 장면 같은 경우에 스포트 라이트가 가는 주연배우 외에도 하객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 대사는 없지만 자기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번 공연으로 지킬과 하이드에 처음 합류한 신성록 씨는 엄청난 파워를 보여주었다. 거의 세 시간에 달하는 긴 공연의 중심에 서서 극을 이끌어 내는 집중력이 대단했다. 아쉬운 점은 지킬보다는 하이드가 더 강하게 부각되다 보니 지킬의 고뇌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극의 압권인 넘버 37 confrontation(대결) 장면은 지킬과 하이드의 갈등을 1인이 소화하는 어려운 장면인데, 앞쪽에 앉았음에도 대사가 잘 전달이 안되어 몰입이 떨어져 아쉬웠다.      


엠마 역의 최수진 씨는 부드러움으로 무장되어 있지만, 애인 지킬의 생사를 오가는 갈등에 자신의 힘을 실어주기에 감정선이 부족해 보였다. 이전에 본 엠마역 박소현 씨의 약하지만 강한 의지의 절절함과 비교할 때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러한 약간의 아쉬움을 한방에 상쇄하는 강력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배우 아이비씨였다. <아이다>라는 뮤지컬에서 아이비씨가 연기하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있는데, 이 배우는 분명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노래 장면은 숨을 죽이게 만든다. 공연 중간중간에 아주 큰 사운드로 효과를 누리는 장면들이 있어 깜짝 놀라게 되는데, 그 놀랄 만큼 큰 소리보다 아이비 씨의 연기가 내게는 더 강한 울림이었다. 특히 넘버 35 <a new life>를 부르는 모습을 볼 때, 나는 극 중의  루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완전 아이비의 재발견이었다.      



3. 희미한 옛사랑의 소환      



내 안에도 있는 지킬과 하이드. 작품은 결국 비극으로 끝나지만, 이후의 스토리는 결국 관객의 몫이다. 악을 악이라 하며 숨겨놓기 바빴던 당시에 악이라고 하는 실체를 형상화 해서 드러낸 용기 있는 작가. 그가 던진 질문은 무엇일까? 억압하면 점점 괴물이 된다. 내 안에 다양한 내 모습을 인정하는 솔직함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관람료가 아깝지 않았던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함께 관람한 딸아이들과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흥분되었다. 생각해보니, 대학시절에 잠시 영어연극반 활동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도 닥터 파우스트 공연을 학교에서 지인들 초청해서 한 적이 있는데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로 된 불친절한 공연을 보러 멀리서 가족 친지들이 와서 격려했던 기억이 났다. 아.. 맞아.. 그랬었지. 중세 작품이었고, 나는 seven deadly sins 중에 pride 역으로 잠깐 등장했었는데 힘들었던 연습이 고생스러워서였는지 공연이 다 끝나고 많이 울었던 기억도 났다. 갑자기 희미한 옛사랑이 떠오르듯 내 속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예술이든 문학이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이들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요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을 통해 잠시 잊었던, 잃었던 나의 어떤 모습을 만나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뮤지컬, 그 바다에 빠지려 한다. 지킬과 하이드 앓이를 하며, 벌써부터 다음 작품을 물색하려고 손이 근질거린다.   


    



1. 공연예술기록에 관한 글



 

2. 2005년 공연한 조승우, 박소현, 최정원 라인업의 공연을 유튜브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혹시 관람을 원하시면 먼저 보시고 가시면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3. 작품속의 주옥 같은 작품이 많습니다. 감상 추천드립니다.

이번 작품에 수록된 41개 넘버의 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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