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 에이치 Dec 04. 2022

직장불만족12_연봉협상_일단 퇴사는 질러놨는데..

내 연봉 지킬 수 있을까?

뭔가 이상한 연봉협상 준비


이직처 연봉도 모르는 채, 퇴사하기로 한 이유


이직 예정 회사는 합격 소식을 전한 이후로 바로 연봉협상을 위해 방문할 수 있는 날이 언젠지를 물어왔다. 원래 제안했던 연봉협상 일정 때 나는 프놈펜에 있었고, 그 뒤로 3주는 더 프놈펜에서 머물러야 했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봐야 했다. 3주 후에 방문해서 대면 연봉협상을 하느니 웬만해서는 화상이나 이메일로 진행되기를 바랐다. 얼마 주실 건지..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런데 어떤 연유에서였는지, 이직 예정이었던 회사가 연봉협상을 꼭 대면으로 진행하기를 바랐다. 이직에 대한 득과 실을 따져볼 때, 나의 성장이나 커리어 패스 전환 측면에서 이번 이직은 정말 놓쳐서는 안 될 좋은 기회였지만, 금전적인 측면도 검토해보아야 했다. 이직처의 연봉을 알아야 모든 결정이 더 쉬워질 터였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이직 예정 회사에서 제시한 입사 일정은 5주 뒤였, 앞서 말했듯이 그 5주 중 3주는 내가 프놈펜에서 출장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이미 출장 중이었음) 귀국 후로는 입사 예정일까지 2주밖에 없었다. 모든 게 다 촉박했다. 우선 연봉협상 일정은 귀국 직후로 날짜를 잡아 두었고, 어쩔 수 없이 퇴사 결정은 연봉을 알지 못하는 채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연봉에 대해서 직접 더 문의를 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여러 측면에서 무용한 일처럼 느껴졌다.


왜냐, 이러나 저러나 똑같았으니까. 경우의 수는 두 가지였다. 연봉이 내려가거나, 올라가거나. 그런데 나는 어떤 경우더라도 이 기회를 잡아야 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건 확실히 내가 가야 할 길이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연봉이 내려갈 거란 사실을 미리 아는 게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내 마음만 흐트릴 것이었다. 연봉이 올라갈 경우라면 조금 미리 기뻐할 수 있을 뿐, 마찬가지로 변할 것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연봉에 얼마가 될 지에 대해서는 더는 고민하지 않기로 하고 바로 퇴사를 질러 버리기로 했다.


퇴사는 질렀는데, 연봉은 어떻게 지키지?


앞서 말했듯이 퇴사에 대한 고민은 더 할 가치가 없었다. 연봉이 내려가더라도 난 갈 거야. 가야 해. 그럼 연봉협상 이전이더라도 사표를 내는 게 맞았다. 그래서 퇴사하겠다는 이야기를 즉시 했고, 바로 퇴사일을 조정했다. 그 이후로 내가 해야 할 고민이 있다면, 이직처와의 연봉협상을 어떻게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 나갈 것이냐였다. 퇴사와 이직에 대한 결심을 확고히 하기는 했지만, 이왕이면 한 푼이라도 더 받는 게 좋았다.


연봉협상에 대한 준비는 조사에서부터 시작했다. 이직처의 연봉 수준을 검색해보니, 통계적인 평균 연봉은 지금 회사보다 조금 더 높았다. 그렇지만 이 사실만으로 바로 낙관해서는 안 됐다. IT컨설턴트는 원래 경력과 전문성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기에 경력 연차가 길 수록 연봉이 높은 경향이 있다. 때문에 이직처의 급여 테이블은 현 직장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평균 연령대가 더 높을 확률도 있었다. 실제로 이직처는 신입 사원은 잘 뽑지 않는 고인 물 회사로 유명하기도 했다. 때문에 평균 급여가 높다는 사실이 내 연봉을 알려줄 수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조사를 더 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직처는 연차별 연봉이 정해져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연봉 테이블이 최근 상향 조정되었다고 했다. 특기할만한 일이었다. 중소 컨설팅 업체 대부분은 연봉 테이블이 없다. 그 사람의 분야, 전문성, 기술의 희소성, 업무 능력, 수요 등에 따라서 매우 유연하게 정해지기에 연봉 테이블이 있을 수 없기도 했다. (일례로 요즘엔 클라우드 전환/도입으로 인해서 TA의 단가가 엄청나게 올랐다.) 때문에 연봉 테이블의 존재는 매우 특별하고 신기한 것이었다. 연봉 테이블의 존재를 알고 나니 연봉협상의 방향을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연봉협상 전략, 나의 경력 연관성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연봉 테이블이 있다는 이야기는 경력 연차로 급여가 결정된다는 말과 같았다. 그렇다면 입사가 확정된 사람으로서 나의 어떤 점을 어필해야 할지가 매우 명확해졌다. 어떤 일을 얼마나 잘 해왔는지, 어떤 자격증(기술)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필할 필요가 별로 없었다. 이런 정성적 자기 자랑은 늘어놓아봤자, 듣지도 않을 것이었다. 연봉협상자가 내 연봉을 정하는 데에는 단 하나의 정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유사 분야 경력 연수. 나의 유사 경력 연수만 판정하면 연봉 테이블에 맞추어 연봉이 자동적으로 산출될 터였다. 그러니 내가 신경 써 증명해야 할 부분은 딱 두 가지였다. 경력 기간과 업무 연관성.


경력 기간과 업무 연관성을 증명하는 문제는 매우 쉬웠다. 소프트웨어 기술자 경력관리시스템(https://career.sw.or.kr/)의 SW기술자 경력확인서만 제출하면 되었다. 워낙 프로젝트 '경력'이 중요한 일터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첫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재직해온 회사와 프로젝트 정보(사업명, 투입기간, 수요기관) 및 담당 업무, 보유 자격증 등이 비교적 잘 정리 되어있었다. 업무 유사성에 대한 판정 기준에 따라서 내 경력은 최대 7년에서 최소 3년이 인정될 수 있었다.


인정 경력 연차 시나리오

  - 7년 (국제협력 인턴 1년 + 해외 프로젝트 사업관리 3년 + 해외 프로젝트 IT 컨설팅 3년)

  - 6년 (국제협력 인턴 1년 + 해외 프로젝트 사업관리 3년 + 해외 프로젝트 IT 컨설팅 3년)

  - 3년 (국제협력 인턴 1년 + 해외 프로젝트 사업관리 3년 + 해외 프로젝트 IT 컨설팅 3년)


내가 생각하기에 국제협력 분야의 인턴 경력은 인정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이건 내가 보기에도 그다지 경력으로 인정할 만큼의 연관성이 없었다. 무리하게 경력을 할인당하지 않는다면 6년의 근무 경력은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6년의 경력을 인정받아 입사하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이기도 했다. 프로젝트의 사업관리 경력이 3년이나 되어서 이 경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연봉이 현재보다 더 낮아질 확률도 있었다. 때문에 사업관리 경험이 새로 입사할 회사의 업무와 얼마나 유사하며,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미래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 경험들인지를 정리해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생각보다 싱거웠던 연봉협상


물처럼 흘러 정해진 연봉


연봉협상을 위해 이직처 본사를 찾았다. 여태까지 연봉 '협상'이랄만 한 걸 해본 적이 없어서 조금 긴장이 되었다. 이직처에서는 이전 직장의 급여 증빙만 준비해오면 된다고 안내해주었지만, 나는 'SW기술자 경력확인서'도 별도로 챙겨갔다. 든든한 나의 지원군.


연봉협상은 경영을 담당하는 임원과 하게 될 것이라며 한 회의실로 안내받았다. 앉아서 준비해온 서류와 오거나이저를 꺼내 두었다. 오거나이저는 사회 초년생 때 스스로에게 선물했던 업무 일정 기록용 링 바인더인데, 업무에 익숙해진 이후로 잘 쓰지 않던 것을 새 기분을 낼 겸 다시 꺼내왔다. 메모할 일이 분명 생길 텐데,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도 했고.


멀뚱멀뚱 파란 벽을 바라보며 앉아 기다렸다. 15분 정도를 혼자 앉아 기다렸던 것 같다. 훤칠한 모습의 임원이 등장해 회의 때문에 기다리게 만들었다 미안하다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해외 출장 때문에 원래 제안 주신 기간에 찾아뵙지 못했던 점에 대해 사과말을 올리고, 준비한 서류를 담은 봉투를 건네드렸다. 자연히 임원분이 서류를 꺼내 확인하면서 현 직장의 급여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올해 1월 1일 자로 승진하여 3월에 연봉 인상을 받았다고 답변했다. (관련 글: 입사 9개월 만에 승진할 수 있었던 이유 세 가지) 현 직장의 직급 체계도 물으셨는데, 아마 연차에 비해 높은 나의 직급(책임)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간단한 질의응답 이후로는 임원분이 조직 직급 체계와 연봉 체계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결론적으로 나는 6년의 경력을 인정받았다. 경력 산정에 대해서는 내가 예감했던 시나리오로 그대로 진행되어서 추가적인 질문이나 요청을 할 것이 없었다. 다만 직급체계가 현 직장과 달라, 직급이 오히려 내려가게 되었다. 직급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아쉽기는 했다. 책임 달고 1년이 다 되어가는데 다시 선임이라니. 첫 직장에서부터 얼레벌레 선임이라는 직책을 달고 일했던지라 만년 선임인듯한 기분. 하지만 막상 책임 직급을 주신다고 했어도 너무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낯선 분야에서는 책임질 수 없는 책임의 무게... 가장 중요한 연봉액에 대해서는, 내년부터 7년 차 연봉이 지급될 예정이며 이는 현 연봉 대비 10% 정도 인상된 금액이었다.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오히려 연봉이 인상되어 기분이 몹시 좋았다. 만족합니다!


그러나 이대로 보내드릴 수는 없습니다. 불맛 질문 던지기 


연봉은 물처럼 정해졌다지만 나는 물어볼 게 있었다. 이전 신규 입사자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여쭈었다. 잘 지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교육 이후에 대기업으로 환승 이직을 한 사람도 있다고 하셨다. 이로 인한 상실감이 엿보였다.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면 여기서 더 캐묻지 않고 주제를 환기했겠으나, 나는 예의 바르지 않지. 


"퇴사한 입사자들이 왜 그만두었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이 회사를 흠 잡기 위해서라거나 나쁜 점을 미리 알고자 했던 질문은 아니었다. 나는 사실 이 회사를 오래도록 다니면서 데이터 아키텍처 분야에서 전문성을 제대로 키워내고 싶었기에 조기 퇴사 선례를 듣고 나니 그 위험을 hedge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떤 점이 그들에게 악재였는지, 나는 피해갈 수 있을지 궁금해서 하게 된 질문이었다. 다행히도 임원분은 내 의도를 달리 해석하시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차근히 이전 사례들과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해 주셨고, 내 판단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위험이라 판단할 사항은 아니었고, 오히려 확신이 생겼다. 잘 다녀보자.


이제야 실감하게 되는 이직



마지막으로 신규 입사자가 준비해야 할 서류들을 알려주셨다. 의외의 서류들이 몇 가지 눈에 띄었다.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어 눈여겨보았다. 합격 문자나 연봉협상 안내 메일 보다도 확실히 이직을 실감 나게 했다.


임원분은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말로 신규 입사자가 나까지 총 다섯 명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런데 그중에서 내가 경력 연차가 가장 높단다. 으악. 고작 6년 경력이... 그래서 혼자서만 직급도 다르다고... 그런데 또 나이로는 중간쯤이라고 하셨다. 여러 생각이 머릿속으로 한 번에 들어왔다. 


아이고. 잘해야겠네. 그런데 뭘 어떻게 잘해야 하나. 일단 퇴사부터 잘해야지. 인수인계 준비를 하러 현직장으로 바로 복귀부터 해야 했다. 분주한 내 인생.




관련 글

https://brunch.co.kr/@hnote/47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불만족11_귀국 & 극한직업 미용사편_고민 상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