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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Dec 02. 2022

직장불만족11_귀국 & 극한직업 미용사편_고민 상담

선생님 이직이 너무 무서워요..

귀국, 맞이해야 할 일들


나를 태운 비행기가 인천 공항에 떨어진 시간은, 토요일 오전 일찍이었다. 여동생이 공항 마중을 나와주어 편안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름의 기운이 따끈따끈 남아있을 때 떠났던 집의 뜰에 이제는 가을의 기운이 많이 맺혀있었다. 엄마가 손수 말리고 있는 대추, 누런 빛이 비치기 시작한 잔디를 만져보았다. 


엄마의 대추 꾸러미와 우리집 마스코트 붕이


짐을 꾸리고, 풀고를 반복하다 보면 짐 정리가 쉬워질 줄 알았는데, 귀찮음은 절대 작아지지 않는다. 짐을 제대로 풀지 않고 펼쳐 놓은 캐리어에서 필요한 물건만 조금씩 꺼내 쓰는 짓을 자주 한다. 그런데 이 날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전쟁 같은 한 주가 시작될 터였다. 앞으로 할 일이 너무 많아! 정말 많아! 정갈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짐부터 정리했다. 짐 정리를 하면서 다음 주 일정도 머릿속에 정리를 찬찬히 해보았다. 일단, 월요일엔 연봉협상을 하러 이직할 회사에 방문해야 했다. 그 뒤로 일일이 해야 할 일들을 나열해보자면 끝도 없고... 요약하자면 연봉협상 잘하고, 인수인계 잘하고, 사표 잘 내면 됐다. 간단해, 걱정하지 말자.


연봉협상 준비는 헤어커트에서부터


새벽 미용실의 마스코트 공복


외모와 연봉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내가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헤어커트와 자신감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지. 나는 내 짧은 머리를 좋아한다. 단순히 짧아서만 좋은 것은 아니고, 좋은 사람이 잘라줘서 좋다. 나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을 불러온다고 생각해서 좋은 일을 해내야 할 때는 좋은 사람을 찾게 된다.


이 미용실(상수 새벽 미용실)은 어느 날 아침, 평소와 같이 출근 준비를 하다가 나의 긴 생머리가 내 삶의 질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으며, 오히려 내 귀중한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 육중하고 값비싼 장신구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찾게 된 곳이었다. 싹 다 잘라버리겠다는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숏컷에 진지한 미용사를 찾기 위한 나의 검색 능력과 느낌, 결단력의 환상적 조화로 인연이 닿아 육중한 머리를 영영 벗고 살게 된 지도 벌써 6년이 되었다. 이제 이 미용실은 내게 좋은 기운이 필요할 때마다 찾는 좋은 사람이 있는 곳이 되었다.


D: 잘 지냈어요? 

H: 선생님 저 이직해요. 내일 연봉협상인데요. 아 걱정도 돼요.


6년의 시간만큼 선생님과의 대화의 폭과 깊이가 많이 늘었다고... 생각한다. (전지적 손놈 시점) 그래서 샴푸를 마치고 앉자마자 대뜸 선생님께 말사탕을 꺼내 늘어놓기 시작했다. 곧 이직할 것이며, 내일은 연봉협상을 하러 가야 하는데, 급여도 급여지만 입사 후의 일들이 걱정된다고 주절주절 풀어놨다. 무슨 생각으로 선생님한테 미주알고주알 모든 말들을 했는지 모르겠다. 선생님이 나와 약속한 일, 의무는 머리를 예쁘게 잘라주는 것뿐인데, 은근슬쩍 고민상담 끼워 넣기...


선생님은 아주 진지하게 답해주셨다. 걱정하지 말라고. 다른 직장에 간다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지금까지 선생님이 보아온 나의 모습은 열심히, 멋지게 사는 사람이라는 말에 눈물이 살짝 날뻔했다. 그 모습은 어딜 가서도 변하지 않을 거고, 어디에서도 지금처럼 '잘' 하고, 지금처럼 '잘' 살 거라고도 해주셨다. 거기에 더해서 이번에 영국 사순에서 함께 교육받았던 선배 미용사 분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공유해주셨다. 선생님이 자신만의 시그니처 커트 스타일은 언제 만들 수 있을지를 선배님들께 여쭈었더니, 선배가 이렇게 답하셨다고 한다.


"그게 어떻게 벌써 나오니? 그건 지금처럼 계속하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거야."


정말 큰 위안과 용기가 되는 말이었다. 더도 덜도 할 필요 없다. 조급해할 필요도 없다. 지금처럼만 계속 해라. 오로지 더 나다운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하루하루를 쌓아 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좋은 내가 되어있을 것이다. 


새 직장에서도 내가 되기. 더 나다운 내가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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