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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Oct 19. 2022

직장불만족8_이제는 퇴사를 말해야 할 때

그게... 갑자기.... 그렇게 되었습니다.

직장불만족 시리즈를 이렇게 길게 쓰게 될 줄 몰랐다. 한 다섯 편 쓰고 끝날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합격했다.


적막한 내 방에서 혼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작은 문제가 있었다. 합격 문자에는 이번 주 중 연봉 협의를 위해 방문이 가능한 시간을 알려달란 요청이 있었다. 나는 이번 주는커녕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갈 수가 없었다. 프놈펜에 있어야 했으니까.

그거야 전화나 화상으로 한다고 치자...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조금 더 큰 문제. 입사 예정일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나는 이번 달 말에 귀국할 예정이라 다음 달 초 입사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프놈펜에서 귀국하고 최소한 1-2주는 인수인계를 해야 할 테니, 빨라야 다음 달 중순에나 가능할 것 같았다. 우선 연봉 협의를 위한 방문은 어렵다며 출장 일정과 내가 생각하는 대안 등을 답해두었다. 한국 업무 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역시 답은 오지 않았다.


직접 이야기를 해보기 전까지 나 혼자 하는 고민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먹고 잠이나 자자. 생각이 많아지니 만사가 귀찮아진다. 저녁식사는 마트에서 사 가지고 온 두부와 누룽지에 물을 끓여 부어 먹었다. 생각을 끊고 잠에 드려고 해도 마음처럼 스위치가 꺼지지 않았다. 입사 못하는 건 아닌가. 입사하더라도 책임감 없이 일 던져 놓고 도망가듯 퇴사하고 싶지는 않은데.


여러 작은 문제들

다음날 아침, 한국 9시가 지나자 바로 문자 답신이 왔다. 내가 궁금했던 모든 답이 간결하게 들어있었다. 연봉 협의는 귀국해서 하면 되었고, 입사 예정일은 한 달 뒤인, 다음 달 중순이었다. 나로서는 참 다행인 일이었다. 계속 문자로 답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사무실을 슬쩍 빠져나와 한적한 곳을 찾아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통화로 방문 일정을 확정 지었고, 입사 예정일도 맞춰보도록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나 말고도 입사 인원이 여럿인 데다가 입사 후에 3개월 교육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로지 내 사정 때문에 입사 예정일을 조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연봉이 어느 정도 될지는 묻지 않았다. 물론 궁금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더 낮아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나는 업무 경력이 벌써 6년이 넘었는데, 내가 지원한 포지션은 경력 2년 이상의 주니어급 자리였다. 하지만 당장 급여가 낮아진 대도 나는 그곳에 꼭 들어가야 했다. 그것만이 내가 이 자리를 버리고 새 영역에 침투해 배움을 시작할 수 있는 길이었다. 내 결심을 흔들고 싶지 않았다.


가장 중대한 문제


이제 가장 어렵고 중대한 일이 남았다. 사의 표명. 퇴사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여러 가지가 고민되었다.


누구에게 먼저 말할 것인가


내게는 가장 쉬운 문제였다. 내 마음이 가장 크게 쓰이는 사람에게 먼저 말해야지. 그건 두 번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팀장님이었다. 사수에게는 미안하지만. 안타깝게도 더 가까운 곳에서 일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사수가 아니라 팀장님이었다.


언제 말할 것인가


이건 좀 어려웠다. 한 달 뒤엔 다른 회사에 입사를 해야 하니, 빨리 말할수록 좋았다. 그런데 고려해야 할 점이 있었다. 팀장님은 지금 한국에 계셨고, 일주일 뒤에나 뵐 수 있었다. 그마저도 팀장님의 프놈펜 출장이 미뤄지면 더 늦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내 결론은 이랬다. 지금 말하자.


어떻게 말할 것인가


방법이 전화밖에 없었다. 전화로 할 이야기가 아니란 걸 알지만 직접 말씀 드리려면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럼 퇴사 3주 전 통보인데 대체 인력 채용을 진행하기 너무 짧은 시간으로 느껴졌다. 지금 해야 할 말이고, 지금 하려면 방법은 전화뿐이었다. 전화로 하자.


뭐라고 말할 것인가


한 번 해봐서 그런가. (이번이 두 번째 직장) 아니면 내가 직선적인 성격이라 그런가. 사실대로 숨김 없이 말하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을 모르겠더라. 다른 곳으로 가겠단 말, 그 이외에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있나?이거 지난번에 실수했던 바로 지점인데. 너무 솔직하게 말하기. 지난 직장을 그만둘 때 나는 너무나 숨김 없었고, 그 또한 상대방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기 말고 다른 말을 찾지 못하겠다. 뭘 어떻게 다르게 말 할 수 있단 말이냐...




누구에게(팀장님) 언제(지금) 어떻게(전화로) 뭐라고(사실 그대로) 말 해야 할지 생각이 정리 되고 나니 오히려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복도를 서성이다가 계단을 오르고 올라서 아무도 오지 않을 끝 층게에 다 다라 팀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얘가 갑자기 웬 전화야? 팀장님이 의아하게 물었다.


그게.. 우물쭈물 하면서 명확하게 말 꺼내지 못하는 내 자신이 참 싫은 순간이었다. 해야 할 말을 해. 그냥.


"제가 다른 회사에 지원하였는데, 어제 저녁에 결과를 듣게 되었습니다. 퇴사를 해야 할 것 같... 퇴사를 하고 싶습니다."


잠시간의 침묵 이후에  허, 하고 기침 같은 웃음 소리가 들렸다. 웃음 같은 기침 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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