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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Oct 17. 2022

직장불만족6_결과 들을 새도 없이 출장 가기

이력서 하나 냈을 뿐인데 일하기가 싫어진 건에 대하여...

복귀할 시간


면접을 보고 사무실로 바로 복귀해서 출장 준비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이미 캄보디아 출장을 위한 로지스틱은 다 준비되어 있었다. 마무리하지 못한 건 다른 프로젝트들의 업무였다. 출장 기간 동안 타 프로젝트들의 업무 지속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내가 캄보디아에 가 있는다고 해서 다른 프로젝트들이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므로... 출장으로 다른 나라에 가더라도 하던 일은 계속해야 한다. 사람들과 회의를 했다. 해야 할 일을 식별해서 팀원들과 언제까지 무엇을 진행하고 전달할 것인지를 정했다.


딴생각하는 시간


면접 결과에 대한 나의 자가 전망은 낙관적인 편이었다. 합격할 확률이 80%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다. 면접 때 여러 긍정적 시그널들이 있었다. 원래 계획은 준비가 어느 정도 된 사람들을 뽑으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지원자가 적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래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지원자도 뽑는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하셨다. 후자의 방향이라면, 나를 뽑고 싶다고도 해주셨다. 어쩌면 절박해 보이는 지원자를 앞에 두고 할 수밖에 없었던 선의의 빈말일 수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고심하고 계신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떤 결론을 내리실까.


정리해야 할 시간


회의가 끝났다. 출장 중에 마무리해야 할 일이 확실하게 정리되었다. 타 국가 사업 EA 교육에서 쓰일 자료 일부를 만들어야 한다. 잘 할 자신도 없고 다 할 자신도 없네. 그래도 해야지.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상 위 물건들을 모두 서랍 안에 넣어 두었고, 모니터에 출장 일정을 쓴 포스트잇을 붙여 두었다.


출장 중입니다.

출장지: 캄보디아
일정: 2022.00.00.~2022.00.00. (3주)

노트북을 챙겨 백팩에 넣고, 퇴근했다.


내가 붙을 수 있을까. 붙는 대도 문제다.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나는 엔지니어가 아닌데. 김칫국이기는 하지만 만약 이직하게 된다면 입사일 조정도 문제다. 이번 3주 출장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가야 할 시간



어찌나 움직이기가 싫은지, 출국일이 되어서야 꾸역꾸역 짐을 쌌다. 고맙게도 엄마와 동생이 공항 마중을 해주었다. 오늘따라 영종대교 건너는 길이 어둡고 컴컴마치 저승으로 가는 길 같았다. 막힘 없이 빠르구나.


공항. 이대로 떠나면 3주간 캄보디아에서 지내야 한다. 아득하다. 캄보디아에서 늘 겪게 되는 분주하고 소란한 생활을 떠올린다. 이리저리 날뛰듯이 일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경쾌하고 생동감 있는 생활을 활기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숨이 턱 막힌다. 내 영혼은 그런 종류의 소음에 괴로워 몸부림을 친다.



카운터에서 현지에서 살고 있는 분이 부탁한 짐을 부치며 생각했다. 내 영혼은 이 일을 할 만큼 따듯하지도 살갑지도 않다고. 그냥 일이라고 치부하고 불만을 눌러 두려고도 해봤지만, 왜 이런 일을 일이라고 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게다가 짐 나르기는 작은 징조들 중 하나 뿐. 캄보디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나에게 수많은 '왜'를 일으킨다. 그리고 단 하나의 답도 주지 못한다. 그럼 '왜'를 묻지 말라고 조언해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신경 쓰지 마. 그냥 하는 거야. 라면서. 그런 사람들에게 해명하고 싶다. 나에게 '왜'를 묻지 않으며 사는 것은 영혼을 굶기며 지내는 것 같았다고. 그렇게는 살 수가 없더라고 말이다.


지금까지는 그 '왜'에 대한 만병통치의 답변이 있었다. 나는 아직 이 직장을 그만 둘 마음이 없어. 닮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라는.


이제 그 마음은 죽고 새 마음이 생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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