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직장의 첫인상에 대하여
태고적의 직장에서부터 회고해 보자면, 이 회사는 네 번째 직장이다. 첫 직장은 한 기관의 해외 사무소였는데, 그때 상사가 내려주었던 가르침 중 가장 귀한 것이라면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말이다.
三人行必有我師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살펴 스스로 고쳐야 한다[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공교롭게도 이 말을 해주었던 상사는 내 첫 사회생활에서 인생 최대의 또라이를 만났다는 확신을 주셨던 분이었다. 그 또라이님으로부터 듣는 공자의 말씀이라니... 더 울림이 컸다. 공자도 사람 셋이 모이면 그중 하나는 스승을 삼는다는데, 나는 내가 뭐라고 직장경력 수십 년의 소장님을 또라이로 치부해왔단 말인가. 나는 반성했고, 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사력을 다해서 그를 이해해보고자 노력하고, 배울 점을 찾기 시작했다. 때로는 따라하고, 때로는 '떼잉...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하면서 반면교사 삼기도 했다. 실로, 다른 사람을 바꿀 수는 없어도 나 자신은 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을 바꾸기보다 나를 바꾸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이고, 즐거웠다. 소장님이 전해준 공자의 말은 내 인생의 인간관계를 영원히 바꾼 한마디가 되었다.
네 번째 직장으로의 첫 출근, 새로운 사람들을 대거 만나기 직전의 나는 그 말을 외우고 또 외웠다. 또라이도 스승 삼을 수 있다. 또라이도 스승... 또라이도.. 또라이를..
첫날, 회사 출입문을 거쳐 교육장으로 향하던 때 품었던 설렘과 흥분을 잊지 못한다. 중년(혹은 흰머리 성성한 신사..)의 상사들과 일해온 7년. 이직의 이직 끝에 드디어 입사 동기를 가져보는구나. 이 회사의 강렬한 면접 경험 때문인지, 어떤 사람들을 동료로 맞게 될지 기대가 컸다. 그리고 마음이 기대로 한껏 흥분한 만큼 나의 만트라로 잘 달래주었다. 또라이도.. 스승 삼을 수 있다... 할 수 있다... 또라이가 나타나더라도 상심하지 말자. 배울 점은 내가 찾으면 된다.
3개월 간의 교육일정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회의실로 안내받아 들어가니, 이미 나머지 입사 동기들은 도착해 어색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여는 소리에 순식간에 대화가 얼어붙으며 정적이 흘렀다. 재빠르게 사람들 얼굴을 훑으며 빈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알던 대로 얼굴은 네 개. 나까지 다섯 명. 다양한 생김새, 차림새, 그리고 표정들. 얼른 알고 지내고 싶은 마음,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자기소개를 청해 한 바퀴를 돌았다.
어색한 자기소개로부터 벌써 49일이 흘렀다. 입사해서 교육을 받기 시작한 지도 벌써 두 달에 이르러간다니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참 다행인 것은, 또라이는 없었다. 다들 남다른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 남다름에는 특출남과 긍정성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안심해서는 안 된다. 또라이가 없다는 점에 조금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라이가 없다는 것이 내포하고 있는 바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세상의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 어쩌면 내가 유력 또라이일 수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겠다.
그 어느 때보다도 동료들로부터 어떤 점을 배울 수 있는지 생각해보기 좋은 때가 아닌가 싶다. 이제 막 2023년이 시작되었으니까, 어떤 점들을 나의 스승 삼을지에 대해서 정리해 본다. 곰곰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배우고 싶은 점들을 너무들 확연하게 하나둘씩 가지고 계셔서.
얼굴 하나, 직선적인 집중력과 바른 자세
얼굴 둘,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선함과 미소
얼굴 셋, 사람들이 주저 없이 다가오게 하는 장벽 없는 모습
얼굴 넷, 디테일과 깊이를 추구하기 위한 성실함
물론 가장 배울 점이 많고 귀감이 되는 분은 따로 있지만. 사람은 어디서든, 누구에게서든 배울 수 있는 것이니까.
1. 삼인행필유아사, 두산백과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17287)
2. Pexels에서 Charl Durand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6486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