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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Jun 16. 2024

성수생활 1_바라던 바는 아니었지만

2호선 싫어잉 낯선 사람 싫어잉

빙글빙글 2호선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에, 첫 면접을 선릉에서 보고 나서 하게 된 결심이 있다.


2호선 직장은 절대 안 다닐래.

2호선 열차의 끔찍한 승객 밀도가 나를 진 빠지게 했다. 게다가 너무 멀어... 돌이켜 생각해 보면 뭘 잘 모르니까 할 수 있었던 결심이기도 하다. 강남에 좋은 회사가 얼마나 많은데.


지난 프로젝트 이후 본사로 돌아와서 길고 긴 벤치 생활을 했다. 다음 프로젝트를 기다리면서 어디든 좋으니까 얼른 나갔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한편, 프로젝트 소식이 들릴 때마다 은근슬쩍 근무지 위치를 찾아보며 여전히 같은 생각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2호선은 좀...


돌려돌려 투입인력


본사에서 인력 배정을 기다리면서 새로 꾸려질 프로젝트 팀들 소식을 귀기울여 들었다. 탐나는 프로젝트들도 있었고 제안 단계에서부터 몸서리 쳐지게 가고 싶지 않은, 영혼에 팔자주름을 드리우게 하는 프로젝트들도 있었다.


지난 경험들로 속단하건대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팀'이고, 두 번째로 중요한 건 '팀장', 세 번째로 중요한 건 '팀원'이다. 인간관계라는 게 인생의 가장 큰 난제인 나에게는 적어도 이 셋이 프로젝트의 전부다. 물론, 도메인도 중요하고, 사업 내용도 중요하고, 고객도 중요하고, 2호선 여부도 중요지만, 이런 것들은 다 인내하고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을 살게 하기도 하고 죽고 싶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사람들이 몰려 나갈 것 같은 프로젝트라면 한층 더 열렬히 기도하였다. 저도 좀 껴주세요, 하고. 프로젝트 회오리가 양 떼들을 쓸어 담아 가는데 나는 함께 날아가지 못하기를 몇 차례. 애석하게도 내 기도에는 영험한 힘 따위 없었다.



러다 맞이한 여름의 초엽. 뜬금 없게도 성수에서 일하게 됐다. 성수. 성수는 2호선이고. 기도 한 줄 올린 일 없었건만. 일은 그렇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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