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 에이치 Dec 28. 2021

관광도시 씨엠립이 맞은 코로나19라는 고요한 폭풍

사람들로부터 두 번 버림받게 된 고대 문명 도시의 황량한 연말

조용히 가라앉은 연말


한국에서의 연말은 늘 몸은 분주하고 마음은 복잡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저런 모임, 회식, 파티에서 오고 가는 한해에 대한 소회들, 내년을 기약하는 말들 속에서 여러 감정들이 교차한다. 어김없이 빨리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 한해 간 해낸 것들에 대한 자부심,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설렘. 연말이면 만감까지는 느끼지 못했어도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울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올해는 참 조용히도 이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간다. 아마 타지 출장 생활 중이라 친구들이나 가족과 부대낄 수 없어서 더 고요히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위세를 떨치고 있는 코로나19가 가장 큰 고요의 발원지일 것이다. 한국은 오미크론 변이나 계속 늘어나는 일일 확진자 수 때문에 시끄러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기, 캄보디아는 매우 조용하기만 한데, 그도 그럴 것이 캄보디아의 일일 확진자 수는 12월 한 달 내내 30명을 넘어가지 않았다. 공식적인 발표에 의하면 그렇다. 


주 캄보디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제공하는 코로나19 관련 정보

이 정보를 믿고 안심해야 할지, 오히려 두려워해야 할지 판단이 어렵지만, 이 판단은 유보해두기로 한다. 어쨌거나 최선을 다해 조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이 고요 태평함이 좋았다. 좋아서, 이대로 작은 소리로 연말을 몽땅 보내고 싶었지만 사람 일은 내가 좋아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주말을 이용해서 씨엠립을 다녀오게 되었다. 물론 사람 마음 또한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씨엠립에서 보내는 주말 또한 좋았다.



사람들이 두 번 떠나간 후의 고요, 앙코르 

인적이 끊어진 타프롬 사원

씨엠립 앙코르는 앙코르 왕조의 수도였다. 앙코르 왕국은 9세기에서 14세기까지 번영하였고, 15세기에 쇠퇴를 겪으며 수도를 프놈펜으로 옮기고 머지않아 멸망했다고 한다. 15세기에 거주민들이 한 번 떠나고, 지금은 코로나19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얼마나 뚝 끊겼냐면, 2020년 이후로 관광객 수는 연일 바닥을 치고 있다.

(좌) International Tourist Arrivals to Cambodia (우) 텅 빈 유적지 티켓 발권 부스

12월은 캄보디아의 건기로, 관광 성수기인데도 불구하고 2019년 12월 70만 명이 넘던 외국인 관광객 수가 2020년에는 2만 명에 그쳤다. 전년 대비 관광객의 수는 -97.2%가 줄었다. 2021년 12월의 오늘도 관광객 수는 크게 늘지 않았을 것이다. 씨엠립은 여전히 한산했다. 한산을 넘어서 황량하였다.


앙코르 와트의 목소리

앙코르 와트의 아침. 사원과 나와 풀벌레 소리.

실제로 해돋이를 보려고 찾아가 다섯 시간 넘도록 머물렀던 앙코르 와트는 관람객보다 관리직원의 수가 더 많은 듯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둠 속 해를 기다리며 연못 주위를 서성였다.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하면서는 연못에 사원이 그대로 비치기 시작했는데, 소금쟁이나 작은 물고기들이 가끔씩 수면을 건드려 만들어지는 물의 파동에 사원이 흔들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꿈속인가 싶었다. 내 귀에는 알아들을 수 없게 뒤섞인 만국 언어의 잡담 소리, 카메라 셔터 소리가 아니라 풀벌레 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이 순간, 이곳에서는 인간들 사이를 휘젓고 있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재앙인지 축복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코로나19는 과연 언제 종식이 될까? 흐린 하늘 속에서 태양이 빼꼼이라도 고개를 들어주기를 바랐지만 찬란한 희망의 얼굴을 한 햇살은 이 날 볼 수 없었다.

코로나19 전에는 줄이 늘어섰을 곳엔 직원만 덩그렁

다행히도 9시쯤이 되자 내국인들의 발걸음이 사원을 간지럽혔다. 가족 나들이객이 참 많았다. 노란 복장을 하고 사원에 온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간소한 전통 복장으로 보였다. 그리고 전통복장을 하고 사진기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커플들도 간간히 보였다. 아마도 혼례복인 것 같았다. 아마 한 달 70만 명의 관광객이 왔다 가는 시절이었다면 스냅사진은 어려웠을 텐데 그새 또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의 적응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관광객이 사라진 앙코르 와트 사원에서 세속적 즐거움을 한참 누렸다. 어딜 가서 사진을 찍어도 쭈뼛쭈뼛 차례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독사진이었다. 어딜 가도 줄을 설 필요는 없었고, 뜨엄 뜨엄 만나게 되는 유적 관리인들과는 반갑게 인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마냥 신나 할 수만은 없었다. 이렇게 텅 빈 유적지를 2년이나 지켜보는 마음은 어떨까.


조명의 소리 없는 아우성, 펍 스트릿


씨엠립은 밤에도 조용했다. -97.2%라는 급격한 관광객 감소는 시가지에 나가니 훨씬 더 잘 체감할 수 있었다. 밤거리는 조명만 번뜩이고 있고, 인적은 드물었다. 가보려고 점찍어두었던 캄보디아 현지 음식 식당은 문을 닫았다. 몇 블록을 띄워두고 2개 지점을 운영했을 정도로 인기가 많던 곳이었는데 두 곳 모두 철문이 내려와 있었다. 철문을 내리는 쇳소리가 귀를 찢게 슬펐을 것이다.


입을 닫은 국립 앙코르 박물관

기약 없이 닫힌 국립 앙코르 박물관

관광객이 얼마나 줄었는지, 국립 박물관인 앙코르 박물관은 입을 닫고 동면에 들어갔다. 유적을 모두 둘러본 후였지만, 뒤늦게라도 배경 지식을 갖추고자 씨엠립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박물관을 찾았다. 사전에 운영시간도 확인하고, 박물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전시 정보도 찾아보는 등 사전 준비를 나름 했기 때문에 완전히 닫혀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툭툭을 타고 도착한 박물관은 굳게 닫혀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관리인을 지긋이 바라보자 다가와서 박물관이 닫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ㅡ Close.


일시적으로 닫은 건지, 언제 다시 개장할 예정인지를 듣고 싶었지만 내가 영어를 쏟아내자 그는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되도록 짧게 물어보기로 한다.


ㅡ Open tomorrow?

ㅡ No, close.

ㅡ Everyday close?

ㅡ Yes. Everyday. Everyday close.


박물관은 언제가 될지도 모르게, 영영 닫아버렸다. 아쉬움에 박물관 입구의 인공 연못에 피어난 수련을 보기도 하고 주변을 한동안 서성이다 나왔다. 


공사판의 흙먼지 얼굴을 한 희망

씨엠립의 인도 정비 공사

말 그대로 도시가 죽었다. 사원과 유적지에는 관리인과 상인만이 처진 어깨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도로엔 체증이 없다. 식사 시간이 한창인 식당들은 한 두 테이블의 손님만 겨우 받고 있다. 여러 개가 있던 한식당 대부분이 닫았다. 그럼에도, 씨엠립은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 


특히 이번 방문에서 눈여겨본 것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도로와 인도 정비 사업이었다.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씨엠립 공사판이 지겹다고 했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많이 달랐다. 캄보디아는 정말 필요한 작업을 최적기에 하고 있었다. 캄보디아의 인도는 내가 다녀본 도시 중 손꼽을 정도로 열악하다. 수도인 프놈펜, 최고 땅값을 자랑하는 부촌 벙깽꽁에서도 인도가 최악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이니, 다른 도시의 사정은 더 나쁠 것으로 생각한다. 청결이나 미관, 낡음을 떠나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제로로 보장하는 인도다. 인도의 턱이 한국의 인도에 두 세 배에 이를 정도로 매우 높고, 보도턱이 경사로 처리가 되어있지 않아, 애초에 휠체어가 인도에 접근을 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인도 중간중간 나무나 장애물들이 많고, 뚜껑 없는 하수구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보행자가 조금이라도 부주의하면 빠져 다칠 수 있는 곳이 많다. 좌우 높이가 다른 인도, 중간에 타일이 다 깨진 인도. 건강한 보행자가 걷기에도 어려움과 위험이 많은 환경이다.


그런데 씨엠립은 지금 한창 이러한 인도를 정비하고 있다. 사진에서 우측을 보면, 본래 인도의 높이를 알 수 있다. 인도를 깨고 깎아서 낮추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인도가 높은 것은 아마 이곳 우기의 위력적인 강수량과 열악한 하수시설 때문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인도를 낮춘다는 것은 인도 지면만 낮추어서 될 일이 아닌 대공사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경사로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도블록(점자블록/braille block/tactile paving)도 설치하고 있었다. (딴 말인데, 유도블록은 일본에서 처음 제도화되어 일본 산업 표준을 따라 국제규격이 제정되었다고 한다. 일자 선 모양은 '진행', 점 모양은 '주의'를 의미한다.) 위기의 시대에 대대적으로 도시를 정비하는 모습이 나는 참 야무지게 멋지게 보였다. 도시가 온통 공사판이라 요리조리 피해서 걸어야 하고 흙먼지 좀 마시면 어떤가. 내년쯤이면 휠체어를 탄 사람이나 맹인도 매끄러운 인도로 이 도시를 누빌 수 있게 될 텐데.

 


참고 문헌


1. UNESCO, Angkor description, https://whc.unesco.org/en/list/668/

2. Ministry of Tourism of the Kingdom of Cambodia, Toursism Statistics Report, December 2020.

3. Wikipedia: Tactile Paving, https://en.wikipedia.org/wiki/Tactile_paving

매거진의 이전글 출장자의 주말, 팀과 크리스마스 보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