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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니 Sep 01. 2022

All I Ask Of You

         오동나무



늙고 쇠약해진 오동나무 한 그루가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꽃을 피웠다. 

뿌리의 힘은 약해질대로 약해져 

얼마 달리지도 않은 꽃에 미처 생기를 전하지 못하고, 

삭정이가 된 채 매달려 있는 가지는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곧 부러져 내릴 것만 같다. 



주위는 점점 신록으로 우거져 가는데 

오동나무는 간신히 피운 꽃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이다. 

드문드문 매달린 이파리들은 따사로운 햇살을 부등켜안기에 바쁘다. 

땅속으로 어지럽게 뻗어있는 뿌리는 단 한방울의 물이라도 더 빨아들이기 위해  분주하다.  



보랏빛의 탐스런 내 몸을 그토록 탐내던 나비는 어딜 갔나. 

아카시의 꿀보다 더 달콤하다며 나를 추켜세우던 벌들은 다 어딜 갔나. 

더이상의 어둠도, 더이상의 공포도 없다며 언제까지고 지켜주겠다던 그 약속은 헛된 바람이었나. 



사랑해다오. 네게 바라는 것은 단지 이것뿐... 





홍송과 오동나무로 만든 삼층책장 (820*1800*500)



  오동나무는 소나무와 더불어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나무이다. 가볍고 뒤틀림이 적은 데다 습에 강하고 벌레마저 꼬이지 않으니 가구재로 이만한 나무도 없다. 옛 자료를 살펴보면 농은 물론 궤, 문갑, 고비 등 오동나무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거문고와 가야금 또한 오동나무로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팔방미인인 셈이다. 딸을 낳으면 마당가에 오동나무를 심는다는 말이 괜히 전해져 오는 게 아니다. 


  여기까지 써놓고 생각해 보니 이게 다 지나간 얘기다. 이제는 오동나무로 만든 가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어느 틈엔가 우리네 마당가에서 오동나무가 사라진 것처럼 오동나무로 만든 것 또한 흔적없이 사라진 것이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그건 알 수 없지만... 


  오동나무는 이제 기껏해야 선물상자나 서랍 같은 것에서나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물론 전통가구를 주로 만드는 분들께는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다). 그마저도 우리 땅에서 자란 오동나무가 아니라 바다를 건너온 것이 태반이다. 그것도 단가 때문에 질 좋은 오동나무는 엄감생신,
 저급품만 들여오고 있으니... 오동나무가 싸구려 취급을 받는 것은 순전히 이 때문이다.  


  집집마다 한두 그루씩은 서 있던, 그 많았던 오동나무는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안방이며 사랑방에서 시원시원한 나뭇결을 자랑하던 오동나무를 이제 다시는 만나볼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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