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관계 앞에서 자주 뒷목을 잡는다.
큰 사건이 있어서라기보다, 아주 사소한 어긋남들이 쌓인 탓이다.
왜 시간의 감각은 이토록 제각각이며
왜 말은 늘 뒤늦게 도착할까.
왜 일은 매번 어긋나는 지점에서 멈출까.
왜 이렇게 다를까, 하고 묻게 되는 순간들이 잦아졌다.
나는 이미 다음 약속을 걱정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얼굴로 앉아 있다.
어떤 말은 미리 건네졌어야 했고,
어떤 결정은 함께 고민했어야 했을 텐데,
그 모든 것들이 늘 한 박자씩 어긋나 있다.
이해되지 않는다는 탄식은
사실 상대를 몰라서라기보다
너무 잘 안다고 믿기 때문에 나오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알 만하지 않나’라는 기대와,
‘이쯤이면 말해줄 거라 생각했는데’라는 추측.
실망은 늘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정확한 타이밍에 도착한다.
이 모든 질문들은
상대를 향해 시작되지만
번번이 내 안으로 돌아온다.
기대가 굳어 기준이 되고,
그 기준이 꺾일 때마다
나는 조용히 한숨을 삼킨다.
관계는 합리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수없이 겪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이해'라는 정답지를
상대의 손에서 받아내야 한다고 믿으며
그가 내주지 않는 이유를 혼자 곱씹는다.
어쩌면 이해란
상대에게서 얻어내는 답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정리해야 할 태도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에게 필요한 건
해답이 아니라
이 감정을 다루는 방법일 것이다.
상대를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기대가 굳기 전에
한 번 더 숨을 고르는 연습.
말로 꺼내기 전에
마음의 온도를 먼저 재보는 일.
어떤 사람은 끝내 이해되지 않은 채 남고,
어떤 상황은 설명 없이 흘러가겠지만
그럼에도 관계는 계속되고
나는 또 하루를 건너간다.
해결책은 없다.
다만 이렇게 적어두는 동안
오늘의 뻐근함이 조금 느슨해질 뿐.
어쩌면 오늘,
데스노트를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누구의 이름도 쓰지 않고
나의 기대부터 지워보는 용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