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스트롯 4'를 챙겨보고 있다.
조금은 뻔하고,
어딘가 유치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먼저 풀리는 순간들이 있다.
참가자들의 절실함 때문일까.
에둘러 말하지 않고
가슴으로 곧장 들어오는
트롯의 가사 때문일까.
트롯의 힘은
아마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마음이 기억하고 있던 곳을
먼저 건드리는 힘.
'모란'이라는 곡을 듣다가
문득 숨이 고였다.
아픈 엄마에게
다음 생애는
자신의 딸로 태어나 달라는 노래.
그 애절함 앞에서
가장 사랑했던
할머니의 얼굴이
불쑥 떠올랐다.
나는 할머니 손에 컸다.
현명하고 지혜로우셨고, 사랑이 많으셨던 할머니.
지금까지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다.
그냥 나라는 이유만으로
늘 편이 되어주던 사람.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등을 쓸어주고 안아주던 손.
돌아서 걸어가는 내 뒷모습을
끝까지 따라보다가
손을 흔들고,
다시 한번 웃어주던 사람.
혹시라도 사랑이 부족할까 봐
마지막까지 더 건네고 싶어 하던 눈빛.
할머니는 네 해 전에 돌아가셨다.
그 품이 늘 그립다.
잠들기 전이면
오늘은 꿈에 나와 달라고,
아무 말하지 않아도 좋으니
얼굴 한 번만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잠든다.
어쩌면 할머니는
이미 돌아온 게 아닐까.
우리 아들의 얼굴로.
아이를 키우는
하루하루 속에서
할머니 생각이 잦아진다.
이렇게 바라보고,
이렇게 웃고,
이렇게
아무 조건 없이
사랑했겠구나.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
그때의 내가 겹쳐 보인다.
말없이
할머니 품에 묻혀 있던
어린 나와,
그 시간이
오래 남기를 바라는 듯
한참을 바라보던
할머니의 얼굴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던
손자였던 내가
이제는
그 사랑을 건네는
아빠가 되었다.
사랑은 그렇게 사라지지 않고
역할만 바꾼 채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품에서 시작된 사랑이
세대를 건너
다른 하루를
조용히 떠받치고 있는 일.
세상에서 가장 오래 남는 건
아마도
이런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울음 대신 기억으로,
기억 대신 얼굴로
그렇게 돌아오는
사랑의 얼굴.
그래서 오늘도,
아이를
조금 더 오래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