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굳이 다짐하지 않은 이유

이미 시작되어 있었기 때문에

by 주호재

분주했던 지난해를 조용히 내려놓고

새해의 첫 아침을 맞는다.


해는 어제와 다르지 않게 떠오르고,

일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제자리에 정확히 놓여 있다.


'새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아침은 평소와 같은 얼굴이다.

알람은 늘 울리던 시간에 울리고,

창밖의 빛도 어제과 같은 각도로

거실 안으로 스며든다.


그래서 오히려 안심이 된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남아 있어도

시간은 스스로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는 것.

그 사실이

이 조용한 아침을 지탱하고 있다.


소금물로 입안을 헹군다.

입 안에 남아 있던 지난해의 말들,

끝내 삼키지 못한 감정들까지

뱉어내고 나면 비로소 맑은 숨이 들어온다

새해를 맞는다는 건

새로운 말을 준비하는 일보다

불필요한 말을 비워내는 일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를 내린다.

물의 온도와 떨어지는 속도를

굳이 서두르지 않는다.

머그잔 위로 퍼지는 향을 잠시 맡고,

책장을 넘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시간도 조금씩

자리를 옮기는 것처럼 느리게.


숨을 고르듯 자리에 앉아

명상에 들어간다.

생각을 지우기보다는

떠오로는 생각을 굳이 붙잡지 않는 쪽에 가깝다.


새해는 늘 이렇게 시작된다.

새로운 다짐보다

이미 몸이 알고 있는

몇 가지 반복으로,

손에 익은 동작들이

말보다 먼저 하루를 연다.


새벽의 육아를 담당한 아내가

잠든 사이,

집안의 아침은 내 몫이 된다.


큰아이와 작은 아이,

그리고 고양이들까지

각자의 하루를 차례로 연다.

기저귀를 갈고,

아침을 챙기고,

사료를 그릇에 담는다.

작은 소리들로 집이 채워지고,

아침은 그렇게

조용히 형태를 갖춘다.


보이차를 우리며

물의 온도와 시간을 기다린다.

서두르지 않는다는 감각이

새해의 첫 약속처럼 손에 남는다.


오늘은 그릭요거트를 만들고,

오래 미뤄두었던 안부들을 꺼낸다.

새해 인사는

이제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다.


"잘 지내?"

그 짧은 문장 하나로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하는 일.

그것만으로도

한 해의 문턱을 넘기엔 충분하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이 아침이

어쩐지 믿음직하다.

어제와 같은 해,

어제와 같은 루틴,

어제와 같은 사람들.


그 반복 위에

나는 또 하루를 얹는다.


새해는 소란스럽게 오지 않는다.

이미 이렇게,

조용히 시작되어 있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