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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Dec 21. 2021

피자 한 판 아끼면 받을 수 있었던 승마수업

인간과 말의 교감, 그 놀라움에 대하여...

우리 가족이 프랑스에 머물던 2014년에서 2016년의 기간 동안 금요일 저녁시간은 호비와 호지에게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바로 승마 수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승마학교는 보통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정도 수업이 이루어졌는데 정규 학교와 같은 시기인 9월에 개강해서 이듬해 7월까지 약 40여 회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처음 파리에 도착해서 아이들에게 한국에서 해보기 어려운 즐거운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우연히 승마학교를 발견한 것은 정말로 행운이었다. 동물이라면 길바닥의 달팽이부터 동물원의 호랑이까지 가리지 않고 모두 좋아하는 호비와 호지는 단박에 오케이였다. 그렇게 아이들의 승마 수업은 시작되었다.


저렴한 수업료와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도 인상적이었다. 40여 차례 진행되는 수업 비용이 우리나라 돈으로 약 100만 원. 한 번에 한 시간 동안 말을 타는 비용이 2만 5천 원 꼴인 셈이다. 피자 한 판 시켜먹을 돈을 아끼면 말을 한 시간이나 탈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버지가 웬만한 재력가가 아니면 꿈꾸기도 어려운 여가활동인데 말이다.


승마 수업은 상당히 체계화되어 있어서 매주, 그리고 매달 진행하는 진도가 나름 잘 짜여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년 동안 꾸준히 승마를 배운 아이들이 일종의 승마 자격증을 따는 국가공인 시험제도도 운영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국기원에서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태권도 승단심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승마학교 수업이 시작된 첫날.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선생님이 호비와 호지의 담당 강사였는데, 어찌나 활력이 넘치는지 보고 있는 나까지 신이 날 지경이었다. 먼저 안장을 포함한 각종 장비를 말에게 어떻게 착용하는지, 재갈을 이용해서 말을 어떻게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지 등을 차근차근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말의 등에 안장 하나 설치하는 데에도 몇 분씩 걸리던 아이들이 한 주 한 주 지나며 장비 착용에 익숙해지면서 승마 수업도 점점 난이도가 높아져 갔다. 금세 말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말을 어떻게 하면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때로는 말을 천천히, 때로는 말을 빠르게 움직이도록 오로지 손으로 움켜쥔 고삐와 입에서 나오는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완벽하게 조정할 수 있을 때까지 훈련은 반복적으로 계속되었다. 채찍이나 박차의 사용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물론 말들도 제각각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어서 어떤 날은 호비와 호지는 물론 담당 강사의 말도 잘 듣지 않는 골치 아픈 말이 배정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러한 말에 배정된 아이들은 울상이었지만, 담당 강사는 단호했다. “온순하고 명령에 잘 따르는 말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말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게 승마 훈련의 목적이다”라고 반복해서 소리치곤 했다.




흔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아이들이 말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이 미숙해서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말이 아이들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아서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부모들은 2층에 설치된 관중석에 앉아 아이들이 승마 수업을 받는 것을 지켜보며 간단하게 차나 커피를 마시곤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짧게 탄식이 나올 뿐 아빠나 엄마가 호들갑스럽게 “아이고, 우리 애기 어디 안 다쳤어?”라며 뛰어 내려가는 일은 없었다. 말에서 떨어진 아이도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말에 올라탔고, 승마 강사 역시 “말에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타는 것 역시 수업의 중요한 일부분이다”라며 아이들에게 겁을 먹지 말라는 말을 되풀이해서 강조하곤 했다.


“네가 겁먹었다는 걸 말이 눈치채는 순간 더 이상 네가 말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말이 너를 지배하게 되는 거야. 겁먹지 마!”


처음 몇 달 동안 천천히 말을 타고 걷는 훈련이 지속되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속보(gallop) 훈련이 시작되었다.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꽤 빠른 속도로 말이 달려 나가는데 호비와 호지를 비롯한 아이들이 때로는 조금 위태롭게, 때로는 제법 능숙하게 말을 다루기 시작했다. 첫 속보 수업을 마친 직후 호비와 호지의 외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빠, 너무 무서웠는데 또 너무 재미있었어!”


벌겋게 상기된 아이들의 얼굴빛만으로도 아이들이 얼마나 수업을 즐겼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승마가 엄청난 운동량을 자랑하는 고강도 체력 운동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설마 그럴 리가…’라고 의심한 적이 있었는데, 수업을 마친 아이들을 보면서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로지 양쪽 허벅지의 힘만으로 자신의 몸을 말에 밀착시킨 후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말의 움직임에 맞춰 자신도 움직여야 하니 운동량이 가히 살인적이었다. 여름이면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아이들은 문자 그대로 땀범벅이었고, 한겨울에도 승마 모자와 재킷을 뚫고 아이들 몸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열기를 보면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아이들은 그날의 승마 수업을 복기하면서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오늘은 명령을 잘 따르는 말을 배정받아 한 시간 내내 즐거웠다”, “오늘 속보 훈련에서는 말이 평소보다 빨리 달려서 신났었다”, “앞에 달리는 말과 속도 조절을 못해서 부딪칠 뻔했다” 등등…


2년이 조금 넘게 진행된 아이들의 승마 수업은 장애물 뛰어넘기 수업이 한창 진행되던 도중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족이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귀국한 이후에도 호비와 호지는 종종 프랑스에서의 승마 수업을 기억하며 즐거운 시간에 빠져들곤 했었다.




인간과 가장 친밀하게 교감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마 개나 고양이를 떠올릴 것이다. 충직하게 주인을 따르는 개, 귀여움에 있어서는 두말하면 잔소리인 고양이는 인간과 가장 친밀한 동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프랑스에서 아이들에게 승마 교육을 시키면서 ‘동물과 교감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인간과 말의 관계는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거나, 반대로 한쪽이 다른 쪽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쏟아붓는 그런 관계는 아니다. 비록 사람이 말 위에 올라타서 말에게 명령을 내리지만, 그 명령이 정확하거나 단호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말에게 무시당하거나 심지어는 말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자칫하면 크게 다치게 된다.


아이들 또한 말에게 무시당하거나 심지어 낙마하는 다양한 좌절의 경험을 통해 일방적이고 맹목적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책임 있고 단호하게 동물을 대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명령은 단호해야 하지만 절대로 동물을 때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또한 안장과 고삐를 포함한 장비를 정확하게 설치하거나 사용하지 않으면 사람은 물론 말에게도 부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 훈련이 모두 끝나서는 말에게 잊지 않고 고마움의 표시를 해야 한다는 점도 배워가며 작지만 중요한 교훈들을 얻곤 했었다.


지금도 아이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시간은 승마 수업이다. 학교에서 일주일 내내 받았던 엄청난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려 보낼 수 있는 귀한 기회이자, 동물과 깊이 교감하고 동물과 한 몸처럼 움직이는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경험을 할 수 있는 흔하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말을 타고 싶어 한다. 물론 그 소원이 한국에서는 이뤄지기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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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Gabriella Clare Marino on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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