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도 넘은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면...
1991년 가을 어느 날...
삐삐 화면에 찍힌 번호가 낯익었다. J의 하숙집 전화번호였다. 속 깊고 어른스러웠던 J는 나와 중학교 단짝이었지만 서로 다른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가끔 만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전화기 너머로 언제나처럼 밝고 활기찬 J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 혹시 이번 주에 공강 시간 좀 있냐?"
다짜고짜 내 공강 시간을 묻는 J. 자초지종은 이랬다.
자신이 다니는 성당에 난치병과 싸우고 있는 고3 여학생이 있는데 RH+ AB형의 피를 헌혈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AB형의 혈액형이 좀 드물기는 해도 RH-형도 아닌 RH+ AB형을 이렇게까지 찾아다니고 있다니.... 의아해서 이유를 물었다. 20여분이면 끝나는 일반적인 헌혈이 아니고 혈장헌혈인지 뭔지 여하튼 시간이 좀 소요되는 특수한 헌혈이라서 자기네 성당에서도 사람을 찾지 못해 난감해하고 있다는 거였다.
지옥 같은 입시를 마치고 갓 대학에 입학한 대학교 1학년에게 가장 남아도는 게 무엇이겠는가? 바로 시간 아니겠는가? 게다가 남을 도울 수 있다는데 큰 고민 하지 않고 헌혈하겠다고 약속했다. 내 편의를 위해서 헌혈하는 장소도 내가 다니는 대학교의 부속병원으로 정해졌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산책하는 셈 치고 20여분 걸어가면 되는 거리이니 부담도 없었다. '며칠 동안은 금주해야 한다, 기름진 음식도 먹으면 안 된다'는 J의 잔소리를 듣고는 전화를 끊었다
'아유, 나이 어린 학생이 좋은 일 하네요...'
헌혈 당일... 제법 긴장해서 앉아 있는 내가 마치 막내 동생처럼 귀여워 보였는지 간호사 한분이 내게 주사 바늘을 꽂기 전에 나를 안심시킬 겸 한 마디 한다. 나는 잠시 나의 시간을 낸 것뿐인데 과분한 칭찬을 받으니 살짝 부끄러워졌다. 두어 시간의 헌혈이 다 끝나고 옷가지와 책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헌혈실을 나서는데 복도에서 어느 중년 여성 부인과 눈이 마주쳤다.
모든 사람에게는 뭐랄까, 촉이란 게 있지 않나?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딱 알 수 있는 그 무엇 말이다. 그분이 고3 여학생의 어머니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아주머니 역시 망설임 없이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가만히 잡으셨다. J에게서 헌혈자가 누구인지 대충 설명을 들은 그분 역시 복도에서 나와 마주치자마자 나를 한 번에 알아보신 것이다. 자신의 딸이 이제 수혈을 받으려고 옆방에서 대기 중인데 나를 꼭 그 여학생에게 한번 보여주고 싶다는 말씀이셨다. 나의 헌혈이 다 끝날 때까지 복도에 앉지도 못하고 초조하게 서서 기다렸던 분의 청을 거절하기도 뭐해서 이끄는 대로 따라 들어갔다.
똘망똘망한 눈에, 앙다문 입술... 누가 봐도 참 잘 키웠다 싶은 참하게 생긴 여학생이 수혈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되풀이하는 두 사람에게 슬슬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오후 수업을 핑계로 진료실을 나서기 전, 주머니 속에서 내가 다니던 대학교 배지를 꺼내 그 여학생에게 건네주었다. 입학 기념으로 학교에서 신입생들에게 나눠준 것인데, (나를 포함한) 재학생들은 어느 누구도 그 배지를 차고 다니지 않았고, 결국 책상 서랍 속을 굴러다니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물건이었다.
대학교 배지를 손에 쥔 그 고3 여학생의 눈이 동그래졌다. 며칠 전, 나와의 통화를 마치기 전 '아참, 그나저나 그 여학생이 너네 학교 정말로 입학하고 싶어 해... 혹시라도 만나면 힘내라고 말이나 한마디 좀 해줘라.'라던 J의 말을 듣고 배지를 챙겨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았다. 나에게는 그저 별 의미 없이 서랍 속을 굴러다니는 물건에 불과했지만, 그 여학생은 무슨 보물단지라도 되는 듯 두 손으로 고이 받아 들고는 뚫어지게 배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군에 입대했고, J 역시 대학교 4년을 내리 마치고서는 카톨릭 사제의 길로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그 여학생은 물론 J의 소식도 잘 듣지 못하게 되었다. 제대 후 복학하여 다시 학교를 다니면서 문득문득 그 고3 여학생이 떠오르곤 했었다. 하지만, 몇 년 전 스치듯이 지나친 얼굴은 당연히 기억할 수 없었고, 기억한다 한들 재학생이 2만 명이 넘는 학교 한복판에서 찾아낼 수도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믿기로 했다. 그 여학생은 씩씩하게 난치병을 극복했고, 아주 열심히 공부를 했으며, 자신이 그렇게도 희망하던 우리 대학교에 멋지게 합격했으리라. 봄의 꽃잎이 날리고 가을의 낙엽이 떨어지는 예쁜 캠퍼스에서 멋진 연애도 하고, 자신이 원하던 좋은 직장에도 취업했을 것이다. 그리고, 듬직하고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어느 날은 알콩달콩, 어느 날은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평범하기 때문에 더욱더 멋진 그런 인생을 잘 살고 있을 것이다.
30년도 넘은 내 과거 행동을 이제 와서 어설프게 자랑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잠시 나눈 여유 시간이 누군가에는 생명과 같은 시간이 된다는 것, 내가 잠시 나눈 작은 관심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살아가는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또한, 젊어서는 큰 고민하지 않고 누군가를 돕곤 했던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번거롭다는 이유로 점점 타인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지 않은지 오래되었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하기 위함이다.
이 글의 제목이 부끄러운 헌혈의 기억인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 블루애틱 작가님의 가족이 헌혈해주실 분을 찾고 있습니다. 나의 시간을 잠시 나눠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귀한 기회입니다. 따뜻한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lueattic/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