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분 문제를 풀다가 문득 깨닫게 된 나의 쓸모없음에 대하여...
저녁 늦은 시간에 밀린 회사일을 하고 있는데 둘째 호지가 컴퓨터를 들고는 쪼르륵 거실로 들어와서 내 옆에 앉는다.
"아빠. 미적분 문제 푸는데 좀 도와줘."
"어... 글쎄... 문제가 뭔데?"
호지가 컴퓨터를 열어 문제를 보여주는데 온갖 복잡한 수식에 합성함수까지 섞여 있는 문제가 떠억하니 화면에 나타난다.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호지는 한국 고등학교 기준으로 말하자면 '이과 수학'을 듣고 있다. 이곳 국제학교에서 부르는 이름으로는 "IB Math Analysis and Approaches - High Level"이다. 30년전에 간신히 문과 수학을 전공한 내가 손댈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ㅠㅠ
"어휴.. 이건 아빠가 못 푸는 문제들인데...멀쩡한 삼각함수는 왜 미분하고 난리냐? 그냥 놔둬도 복잡한 애들을..."
"어? 아빠 못 풀어?"
"응... 나 못 풀어."
"에이... 뭐야...아빠는 좀 풀줄 알았는데."
호지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때만 해도 아이가 물어보는 문제는 과목에 상관없이 제법 도와줄만 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범위를 제법 넘어서나 싶더니만 이제는 내가 아무리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문제들만 나타나고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호지에게 백과사전이었고, 척척박사였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기둥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세월이 참 야속하게 빠르게 흘렀다. 이제 나는 그다지 소용거리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마음이 쓸쓸해지기 시작했다. 아빠의 이런 섭섭한 마음을 알아 챘는지 나한테 뾰족한 대답을 듣지 못하고서도 컴퓨터를 챙겨서 쌩하니 일어나지 않고 내 옆에 앉아서 답안지도 이리저리 넘겨가며, 인터넷으로 풀이 방법을 찾아봐가며 수학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아빠가 무안할까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호지가 고마울 따름이다. 혼잣말로 "이렇게 대입하면 되나?... 여기에 이걸 치환하면 어떻게 되나?"... 이렇게 종알거리고 있다. 하얀 백지위를 굴러가는 샤프펜슬의 소리, 그리고 그걸 뚫어져라 쳐다보는 호지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고 있자니 한없이 사랑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살짝 서글퍼지기도 한다...
"아... 아빠 다 풀었어... 나 갈게..."
문제가 다 풀려서 기분이 좋아졌는지 컴퓨터와 종이를 챙겨들고는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버린다. 아이가 거실을 떠난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하얀 스크린에 커서만 깜빡이는 노트북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유 모를 허전함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이제는 정말 아이에게 도와줄 일이 하나도 없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나 보다."
혼잣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무심한 커서만 스크린에서 깜빡였고, 한참 동안 나는 다시 일을 손에 잡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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