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인(?)이 바라본 인도의 화장 문화
"베란다에 재가 쌓인 거 같애."
일요일 아침, 베란다 물청소를 마친 아내가 무심한 듯 이야기했다. 밤새 이리저리 부는 바람에 흩날리다가 베란다의 한쪽 구석에 곱게 쌓인 회색의 가루들... 하루가 멀다 하고 삼사백 명의 코로나 환자가 사망하는 인도 뉴델리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지난주에 뉴델리 거주 한국인들이 만든 '밴드'에 '베란다에 재가 떨어져 있는 거 같다'는 글이 처음 올라왔을 때에도 나는 무심히 지나쳤었다. 인도라는 나라 자체가 화장을 치르는 힌두교의 나라라는 것, 그리고 뉴델리 인근의 인구가 이천만 명이 넘는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 큰 도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얼마나 많은 화장이 치러지며, 얼마나 많은 잿가루가 날리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덕분에 이 모든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소위 '문명세계'(아니면 서구화된 사회라고 불러야 할까?)에 살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죽음이 마치 삶과 단절된 것인냥 잊고 살아간다. 산 자의 공간과 죽은 자의 공간도 철저하게 나뉘어 있으며, 산 자들은 죽은 자가 마지막 숨을 내뱉자마자 염을 하고 입관을 한 후 장례를 치르고 매장을 한다. 죽은 자를 재빠르고 효율적으로 산 자의 공간에서 배제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장례식장은 죽은 자가 배제된 산 자들을 위한 자리이다. 문상하기 위해 찾아온 직장상사, 거래처 구매 담당자, 오랜만에 만난 나보다 잘 나가는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인사를 빼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온전히 죽은 자를 추모할 시간이 없다. 어찌 보면 장례식장에서는 죽은 자 즉, 병풍 뒤에 홀로 누워있는 장례식의 주인공이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인도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죽은 자를 입관하지 않는다. 이슬람교도인 경우 율법에 따라 사망한 지 24시간 이내에 매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인도 인구의 80%가 넘는 힌두교도의 경우 예외 없이 화장을 선택한다. 서구식 장례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입관하지도 않은,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신을 사방이 훤히 뚫려있는 노상에 장작개비를 쌓아 올린 후 몇 시간 동안 불태우는 모습이 야만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먼저 사망한 남편이 화장되는 불구덩이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망인을 밀어 넣어 불타 죽게 하는 끔찍한 악습이 공공연히 행해졌고, 화장이 끝난 후에도 두개골이 다 타지 않으면 영혼이 해방되지 못한다 하여 유족들이 망자의 두개골을 두드려 깨는 풍습까지 남아 있으니 두말해서 무엇하리... 하지만, 이들 인도인들의 입장에서는 화장이야 말로 죽어서 쓸모 없어진 망자의 육신은 완벽하게 소멸하고, 육신 속에 갇혀 있던 영혼이 마침내 자유를 얻어 해방되는, 어찌 보면 한 인간의 인생을 완성하는 신성한 의식인 것이다.
화장이 끝난 후 유족들은 정성스럽게 유골을 수습하여 인근 강가에 뿌린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에서는 장례가 끝나고 브라만 승려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죽은 자가 산 자들의 공간을 천천히 그리고 존엄있게 떠나가는 것이다.
뉴델리 같은 대도시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기식 화장장이 보급되어 있어 대부분 이곳에서 화장을 치루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하루에만도 수백 명씩 사망자가 발생하자, 뉴델리 시민들도 결국 주차장이나 공터에서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24시간 끊이지 않는 화장 때문에 뉴델리 전체를 뒤덮은 매캐하고 텁텁한 잿가루가 우리 집 베란다에도 내려앉아, 죽음을 잊고 있던 우리에게 서늘하게 말을 건넨 것이다.
"Memento Mori”
너도 언젠가는 죽을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이다.
///
* photo by Parker Hilton on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