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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살 인생 선배님의 의연함

언제나처럼 '쿨함'과 '의연함'을 뿜뿜하시는 당신이란 분은 도대체...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처가와 본가에 안부 전화를 드렸다. 언제나 그렇듯이 통화가 시작되자마자 장모님께서는 인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 가족 걱정부터 하셨다. 내 딴에는 조금이라도 장모님을 안심시켜 드리려고 '몇 주째 집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내딛지 않고 있어서 오히려 안전하다'라고 말씀드렸는데, 이제는 '집 밖으로도 못 나가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드냐'며 또 다른 걱정이 시작되셨다. 짚신 장수 걱정을 덜어드렸더니 나막신 장수 걱정을 시작하신 거다.


본가에도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께서 받으신다. 안부 인사를 드리고, 5월 말을 전후해서 전세기를 예약해놨다는 말씀을 드렸다. '운항허가부터 시작해서 복잡한 행정절차가 많이 남아 있어요. 정말로 한국에 갈 수 있을지는 비행기가 이륙해봐야 알아요'라고 덧붙였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혹시라도 우리가 한국에 가지 못하게 되면 많이 실망하실까 봐, 어머니의 기대치를 좀 낮춰놓기 위해서였다.




듣고 계시던 어머니가 '자가격리 해보니까 많이 힘들던데...'라는 말씀을 툭 꺼내놓으신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자가격리라뇨? 어머니가 왜 자가격리를 하셨어요?' 그제야 아차 싶으셨는지 어머니가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말씀을 시작하셨다.


지난 4월 초, 어머니가 수십 년째 한글을 가르쳐주는 자원봉사를 하고 계신 학교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단다. 결국, 어머니를 포함한 교사와 같은 반 학생들(대부분 연로하신 노인분들이시다)이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에 들어간 것이다. 보건소의 통보를 받으시고 어머니는 별일 아니아는 듯이 ‘쿨하게’ 별도의 자가격리 장소를 물색하셨고, 다행히 지인분이 소유한 미입주 아파트를 찾아서 생필품만 챙겨서 텅 빈 그 집으로 들어가셨단다.


가구 하나 변변한 게 없는 집에 혼자 이불 깔고 누워 2주를 버티신 어머니, 그리고 그 2주 동안 어머니 없이 혼자 견디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내 여동생 부부도 소식을 듣고는 먹을 것을 바리바리 포장해서 세 박스나 되는 소포를 자가 격리하는 집으로 보내드렸다고 한다. 걸핏하면 해외근무 한답시고 한국을 떠나 부모님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 못난 오빠를 대신해서 아들 노릇하고 있는 여동생 부부에게 새삼 미안해졌다.


어쩐지...


지난달에 전화를 드리면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뭐가 이상한지는 콕 집어 눈치채지 못했었다. 집으로 전화드리면 항상 어머니가 받으시곤 했었는데, 평소에는 귀찮아서 집 전화를 잘 받지도 않던 아버지가 어쩐 일인지 계속 전화를 받는 거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어머니를 좀 바꿔 달라고 말할 때마다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해라'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별도의 장소에서 자가격리 중이셨으니 집 전화를 바꿔주려야 바꿔 주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 부부가 소식을 알아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걱정만 하게 될 테니 아예 우리 부부에게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으셨던 거다. 부모님 상황을 알아채지 못한 둔하고 눈치 없는 나 자신을 탓해야지 다른 누구를 탓할까?




우리 가족들의 자가격리가 끝난 후에라도 본가에 가서 마스크를 벗고 같이 식사하고 하루나 이틀 정도 자고 오는 게 안전할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만에 하나라도 상호 감염이 되는 상황을 방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본가에 내려가더라도 같이 식사를 하거나 하룻밤 묵는 건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차라리, 만나는 시간은 좀 짧더라도 자주 찾아뵙는 쪽으로 할게요'


'그래라. 시골에 내려와서 자고 갈 필요도 없고,

밥 같이 먹을 일도 없다.

그냥 애들 얼굴이나 자주 보고 이야기나 좀 나누면 된다.'


우리 식구 중에서 성격 쿨하고 의연한 것으로 따지면 1등인 우리 어머니... 아들 내외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딸을 데리고 1년 반 만에 한국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쿨함'이 또다시 뿜어져 나온다. 빨리 내려와라, 손녀 보고 싶다, 왔으면 밥은 먹고 가야지, 하룻밤 자고 가라... 이런 말씀이 하나도 없다.


오랜 기간 못 본 손녀딸들을 얼마나 보고 싶어 하실지 말씀 안 하셔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자식과 손주가 한국에 짧게 머무는 동안 최대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먼저 배려를 해주시니 고맙고 죄송스러웠다. 나와 내 아내도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았고, 사회생활도 할 만큼 했다고 나름 생각해 왔었는데, 여든 살이 되신 인생 선배님의 '의연함'과 ‘너그러움’ 앞에서는 한참 모자란다는 생각이 든다.




두 딸들은 요사이 기말고사를 보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여름에 한국 가면 하고 싶은 일들을 손꼽느라 정신이 없다. '시원한 바다가 보고 싶다', '등산하고 싶다', '서점에 가보고 싶다', '공차(Gongcha) 마시고 싶다', '베트남 쌀국수 먹고 싶다', '메밀 소바 먹고 싶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자신들을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이 코로나 시기를 견디면서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알 길 없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위시 리스트'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뵈러 가기'가 아직 오르지 못했나 보다... ㅎㅎ 역시나 사랑은 ‘내리사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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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Nani Chavez on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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