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Aug 27. 2021

늦깎이 대학원생, 어퍼컷 두방을 맞았다

지난 일주일 사이 겪은 이야기...

지도교수님과의 줌 미팅을 마치고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1주일 전에 내가 완성해서 보낸 논문의 일부분(논문의 제2장인 '선행 연구 조사' 및 제3장인 '연구방법론')을 검토한 교수님이 피드백을 주시는 시간이었다. 30분이 조금 넘는 줌 미팅 동안 교수님은 내가 써서 보낸 50여 페이지밖에 안 되는 분량에서 얄밉다 싶을 정도로 논리적 허점을 조목조목 찾아 지적했다. 


하도 난타를 당해서 30여분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제대로 된 반박도 못하고 '교수님 지적하신 내용은 생각 못해봤습니다'라는 말만 몇 번 반복했는지 모른다. 교수님의 지적사항들을 수첩에 받아 적다 보니 애초에 교수님과 약속한 시간이 다 흘렀다. 줌 미팅에서 로그아웃 하면서 교수님이 한마디 하셨다.


'전면적으로 수정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손보세요'


교수님의 말투는 친절했지만 메시지는 단호했다. 말이 '수정'이었지, 이건 사실상 다시 쓰라는 이야기에 다를 바 없었다. 노트북 화면을 끄고 나서도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버린 머릿속이 정리가 안된다. 작성 중인 논문 출력해놓은 게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교수님의 지적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내 논문을 난도질해버려서 논문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작성하려는 논문 주제와 관련하여 현재까지 어떠한 선행연구가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나는 어떠한 연구 방법론을 채택하여 이 논문을 쓰겠다.'라고 밝히는 내용들이 담겨 있는 부분이었다. 논문의 핵심인 본문 부분은 시작도 안 한, 말하자면 논문의 도입부, 집으로 치자면 터파기 공사와 주춧돌 놓는 공사인 셈이다. 


교수님 평가를 빌자면 기둥과 서까래는 고사하고 터파기 공사와 주춧돌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셈이다. 집의 기초가 이렇게 부실해서야 어떻게 집다운 집이 나올 수 있겠는가? 아니, 기둥 하나조차 제대로 올릴 수 없을 거 같은 부실한 기초라는 평가였다. 


대학원에 등록한 것은 인도로 오기 전이었다. '어이구, 회사 생활하면서 대학원도 다니시고... 대단하십니다.'라는 회사 동료들의 (별 의미 없는) 칭찬에 쓸데없이 우쭐해지곤 했었다. 잠과 여유시간을 쪼개가며 만학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던 나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에 몸은 힘들었지만 자존감은 꽤 높았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던 거 같다.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가면 너무 바빠서 논문 작업은 꿈도 못 꿀 것 같아서, 인도에 있는 동안 논문을 마무리할 요량이었는데, 이런 속도로 나가다가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아... 역시나 세상 일은 내 뜻과 내 속도대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보다. 브런치에 글 쓰면서 어설픈 '작가 놀음'하느라 세월을 낭비한 건 아닌지... 지난 몇 달 동안 부지런히 선행연구를 찾아 조사하고 정리했던 내 방법론이 잘못된 거는 아닌지... 어지러운 머릿속부터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며칠 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심란해져서 논문에도 손을 못 대고, 브런치에도 접속 안 하고 있었는데, 두 번째 어퍼컷을 맞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연구실 학생들 단톡방에 (나와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저널의 링크가 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뭔가 싶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년에 멋진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아 졸업한 졸업생이 그야말로 top journal이라고 부를만한 곳에 교수님과 공동저자로 논문을 게재한 것이었다. 단톡방에는 이미 '축하합니다', '부러워요' 메세지가 한가득이었다.  


아직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은 고사하고 학위도 받지 못한 나 같은 '미생'의 눈에는 부럽고 질투 난다는 말 이외에 어떠한 다른 말로도 표현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이 유치해지면 참 한도 끝도 없이 유치해지나 보다. 다른 사람들은 의례적으로 잘도 남기는 '축하한다'는 카톡 메시지 조차 남기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물론 그 사람과 내가 1:1로 겨루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연구실의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는 이 패배감과 열등감을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일주일이 넘게 내 책상 위에 방치되어 있던 내 논문 출력본에 우연히 눈길이 갔다. 오늘따라 내가 작업 중인 논문이 더없이 추레하고 보잘것 없어보여 멀찌감치 밀어 버렸다. 육체적인 나이는 오십이 되었지만, 내 속에 숨어있던 어리고 유치한 '어른이'가 한껏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


///

매거진의 이전글 "삐익~~", 브런치 보도지침을 위반하셨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