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견뎌낼 수 있는 정도의 고통

Daily Calm_인내

by Ho C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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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릴 때부터 “참고 견뎌야 해”라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라왔어요. 그런데 ‘참고 견딜 수 있는 수준’은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똑같은 강도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억지로 버텨야만 하는, 이미 한계에 가까운 수준일 수 있죠. 그래서 남의 인내를 바라볼 때뿐 아니라, 나 자신을 바라볼 때도 “이건 내가 견딜 수 있는 정도인가?”를 계속 물어보는 게 중요합니다. 생각해 볼 시간이 있어야, 이 상황을 계속 견딜 것인지, 아니면 이제 그만둘 것인지를 내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고통도 선택의 문제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고, 감당하고 싶은 고통인지, 아니면 원하지 않는, 나를 소진시키는 고통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고통을 느꼈을 때, 그 고통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고통인지, 아니면 그럴 가치가 없는 고통인지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의 말이 누군가에게 하나의 의미로만 들린다면,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어요. “모두가 겪는 고통이야. 이 고통만 견디면 성장할 수 있어. 아픈 만큼 성숙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기록이 빠른 러너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라톤을 완주합니다. 전혀 뛰지 않는 사람들은 종종 묻습니다. “그렇게 힘든 걸 왜 해? 그것도 돈까지 내면서?” 그런데 저에게 러닝은 ‘고통스러운 일’이라기보다, 즐거운 고통, 견딜 수 있는 고통에 가깝습니다. 저는 기록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습니다. 좋은 기록을 위해 나를 몰아붙이기보다는, 달리는 것 자체를 즐기는 편이에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그리고 마인드풀 러닝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아주 조금만 더 나아가 보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결국 내가 견딜 수 있는 고통의 강도를 최소화하면서, 그 최소한을 꾸준히 이어가는 방식이 나에게 맞는 성장 방식이라는 걸 깨달아 왔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불편함과 고통을 선택하고, 그것을 지속하며 쌓아가는 방식이죠.


혹시 지금, 당신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한 번 이렇게 자문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 고통을 견뎌냈을 때, 나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까?” 만약 그 고통을 견뎠을 때조차 또 다른 종류의 고통만 계속 이어질 것 같고, 정작 내가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면, 그건 어쩌면 당신이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고통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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