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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호도 Aug 23. 2022

고양이 집사는 캔따개, 대형견 집사는 똥치우개

제주살이 6일차 2022년 8월 6일

제주도의 여름 햇빛은 살이 익어버릴 만큼 세다. 햇살이 쨍쨍한 낮시간, 옥상에 빨래를 말려두면 두 시간 내에 빨래가 북어포로 바뀌어 있다. 멀리서 빨랫감이 너풀거리는 빨랫줄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평온해지기도 한다.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면 마음이 조금 심란해진다. 사장님들이 기르는 대형견 두 마리의 흔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개똥이다.


갓 싼 똥은 촉촉해서 파리가 왱왱 꼬여있고 며칠 지난 건 말라서 똥냄새가 나지 않는다.(이때가 가장 치우기 좋은 상태이다.) n일 지난 똥은 하얗게 말라비틀어져서 고대 댕댕이 박물관에 전시해놔도 될 법한 비주얼이다. 지난번에 빨래를 널다가 실수로 빨래를 바닥에 떨어뜨린 적이 있는데 ‘화석 똥’ 위에 떨어져서 다행히 빨래에 아무 피해가 없던 적이 있다.


매일 똥 위치가 바뀌는 걸로 보아 사장님들이 밤낮으로 똥을 열심히 치우고 계신 걸 알았다. 하지만 건강한 댕댕이 두 마리는 많이 먹고, 많이 싸는 미덕을 실천 중이었다. '아따 고놈들 잘 싸서 보기 좋네'라고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잠시, 멍 때리고 걷다가 똥을 밟을 뻔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똥을 치워야 했다. 더욱이 내가 빨래를 너는 곳의 옥상은 나만 쓰고 있어서 사장님들이 똥의 존재를 모르고 있으신 듯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엔 일찍 일어난 기념으로(?) 귀요미들의 아침이었던 것들을 열심히 주워 봉지에 담았다. 금세 큰 비닐봉지 하나가 가득 찼다. 찝찝함과 상쾌함이 공존했다. 마당이 넓은 집에서 대형견을 키우고픈 로망이 있었는데... 충분히 생각해보고 결정해야겠다. 같이 있어 좋은 것과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니까 말이다. 여하튼 이제 빨래 널 때 트위스터 게임을 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돌담에 코 박고 고양이 찾는 중인 첫째 한모. 호는 두부이다. 두부 한모... 귀여워...
고양이 보단 사람 구경이 더 좋은 견생 8개월 차 담이. 말라뮤트의 거대함을 담이 덕분에 알게 되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격하게 반겨 주는 담이. 귀여워... 내 손에 침 다 흘려도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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