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리들이 필요한 불면의 밤에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미국에서 한 번도 최신식 창문이 설치된 곳에서 살아보지 못했다. 건물 전체가 완전히 리노베이션 되었어도 창문만은 30년은 된듯한 나무 창문이었던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뉴욕. 90년도 더 된 벽돌 아파트의 창문도 단열이나 소음 차단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었다.
위 에어컨이 거뭇거뭇해 보이는 것은 늘 매연 먼지가 솔솔솔 잘 통과되어 들어오기 때문이며, 비가 올 때엔 빗물 소리가 그리고 앰뷸런스가 지나다닐 때엔 사이렌 소리가 귀 옆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소리들이 시끄럽고 짜증 난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다. 굳이 포장하고 끼워 맞춰 보자면 저 홑겹 창문이 그나마 갑갑한 아파트와 밖 사이에 낀 적당한 완충제라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품질보증 마크가 여기저기 붙어있는 믿음직한 2중 창문이다. 창문을 닫으며 소음은 거의 완벽하게 차단되고 단열성능도 훌륭하다. 유리도 투명하며 밖은 늘 잘 보인다. 잠금장치를 적당한 힘으로 돌리면 묵직한 느낌과 함께 닫힘이 완성된다.
하지만, 하지만 이 좋은 창문은 이상하게 갑갑하단 느낌을 준다. 새벽,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방은 안정을 보장받지만 때로는 그것이 다른 종류의 두려움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철옹성 같은 창문을 조금 열어 놓자면, 맹렬한 기세로 바깥의 강렬한 에너지들이 무턱대고 내 공간으로 넘어온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뉴욕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창문이 청량하고 맑은 개방감 같은 것을 주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그 허술한 완충제인 창문이 숨쉴틈이라는 감각을 나눠주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던 것 같다.
2019년 11월 11일.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