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
시끄럽게 연속해서 울리는 클락션.
여자는 아무 표정도 없이 아무 말도 없이 빠지는 차선에 갑자기 끼어든 차에 클락션을 울리며 운전을 하고 있다.
도착한 곳은 작업실인지 스튜디오 인지 구별이 안 되는 한 건물. 여자는 불도 켜지 않은 채 겉옷을 옷걸이에 천천히 걸으며 출근길에 사 온 커피를 빨간 탁자에 내려놓는다. 이제야 불을 켜며 기지개를 켜고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말을 한다.
“아 맞다 담배 놓고 왔네 “
다시 겉옷을 꺼내 입고는 편의점으로 가서 담배를 사 온 후 건물 앞 한대를 물고는 전화를 한다.
“어디야? 응 그래서 늦는다고? 알겠어 “
딸각.
“잘됐네 나도 지각인데 “
여자는 웃으며 기지개를 켜며 말했고 다시 건물 안에 들어가 다시 천천히 겉옷을 벗고는 가방 속 카메라를 꺼내 들어 카메라 세팅을 시작했다.
2.
한편 옆 건물에서는 늘어지게 자고 있는 남자. 방 안에는 늘어져있는 옷들과 양말 속옷 정말이지 난장판이다.
-애앵 애앵
재난문자 마냥 울려대는 전화 소리에 부스스 받는 남자.
“네 여보세요..”
그러자 남자는 번뜩 일어나 눈이 동그래진다. 놀란 것인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한참을 말을 못 있다가,
“네 감사합니다. 몇 시쯤.. 가면 될까요? 네 알겠습니다 3층에서 접수부터 하면 되는 거죠? 네네 감사합니다. “
남자는 재빨리 일어나 겉옷을 챙겨 입고 집 근처 목욕탕으로 가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바나나 우유를 먹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서울의 한 암병동으로 향했다.
“2시 예약된 하루운이고요, 890101입니다. “
“네 잠시 앞에 대기해 주세요. 좀 있으면 부르실 거예요”
하루운은 차례를 기다리며 초조한 마음에 땀나는 손을 바지에 벅벅 닦았다. 흑청바지 허벅지가 다 젖을 만큼.
”하루운 들어오세요 “
간호사의 말에 벌떡 일어나 나가는 하루운.
3.
“선배 도와준다면서 이렇게 늦게 오는 게 어딨어? 아 나 커피 있는데 왜 하지도 않는 짓을 하냐”
여자는 커피와 함께 들어온 젊은 여자를 향해 짓궂은 인사를 건넸다.
“하정언니~ 미안해서 사 왔지~ 그리고 자꾸 선배라고 부르지 좀 마요. 나이차이가 몇인데 자꾸”
“나이차이가 뭐 중요한가 연차가 중요하지”
하정은 조명을 켜며 젊은 여자에게 웃으며 말했다.
젊은 여자는 화장품 박스를 꺼내며 바삐 세팅에 들어갔고 동시에 다른 젊은 여자가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저 2시에 예약했는데요”
“아, 하미나 씨 맞으시죠? 이쪽에서 잠시 대기해 주세요, 작가님 하미나 씨 오셨습니다 “
젊은 여자는 하정에게 갑자기 직원모드로 말을 했다.
(시간 경과)
“좋아요 지금처럼만”
찰칵찰칵 사진을 찍으면서 모니터를 수시로 체크하는 하정.
“아 머리가 아쉬운데 혹시 s컬은 별로 세요? 더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
4.
“하루운씨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오늘에야 완치 판정 나네요. 완치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하루운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하루운은 정말 감사드린다며 문을 나서며 아무 일도 아닌 듯 병원 밖을 나섰고 한참 걷고 난 뒤 주위를 둘러보고 소리를 질렀다.
“드디어!!! 내가 완치라니!!! 누구한테 먼저 말하지? 철영이? 지수? 아 진짜 미치겠다 나 오늘 뭐 하지?”
하루운은 오두방정을 떨며 뛰어가다가 새똥을 맞았고 그다음 다시 목욕탕에 가서 신나게 씻고는 바나나우유를 쭈욱 들이키며 나왔다.
“나 하동운 진짜 인간답게 살아보자. 미친 듯이 잘 살 거거든. 엄마 분명히 봐 나 진짜 유명해져서 엄마가 나 알아보고 연락하는 거 기다린다 정말”
몇 년간 다짐한 말인지 삐쩍 마른 몸이 말하기엔 맥락이 안 맞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곧 유명해질 것 같았다.
5.
“휴 언니 오늘은 오버타임 삼십 분이나 했어요.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아 배고파 저녁이나 먹으러 가요.”
젊은 여자선배는 하정에게 너무 배고픈 듯이 과한 액션을 하며 어필했다.
“선배 오늘은 안돼. 선약이 있어서”
“이 언니는 맨날 약속이래, 됐어 됐어 안 먹어 나 간다요”
“응 고생했어”
하정은 청소와 스튜디오 정리를 하고 겉옷을 천천히 꺼내 입으며 편의점으로 향해 삼각김밥 하나를 집어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있다.
그때 들리는 출입문 소리 딩동.
“어서 오세요”
“네에~!!”
하정은 유난히 신난 남자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돌아가는 전자레인지만 쳐다보고 있다.
“어? 우리 구면인가요? 어디서 뵌 거 같은데.. 아..!!! 새울고등학교 물리 선생님 맞으시죠?”
유난히 신났던 남자, 하루운은 하정에게 말을 붙였고 하정은 절레절레하며 다 데워진 삼각김밥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아.. 맞는 것 같은데.. 아 뭐 먹지 로제당면볶이? 마라 볶음밥? 아 몇 년 만에 자극적인 거 먹는 거냐~ 아 졸라 행복하잖아! “
6.
하정은 스튜디오에 들어와 컴퓨터로 사진 보정을 하며 올드 재즈를 들으며 삼각김밥과 사이다를 마신다.
한참을 작업하다가 건물 밖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아까 본 하루운이 옆을 지나가는 것을 본다.
“진짜 구면 같네”
담배를 발로 지져끄고는 담배꼬다리를 집어 다시 스튜디오로 향하고 하루운은 하정을 보지 못하고 편의점 봉지를 들고는 옆 주택으로 들어간다.
그게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