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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무호두 Nov 26. 2020

백 퍼센트 호밀빵에 대하여(2)

호밀빵 먹고 행복의 나라로 

그동안 호밀빵을 꽤 많이 만들었어요. 



호밀종과 물, 그리고 약간의 이스트, 호밀가루, 소금으로만 이루어진 이 빵 덩이의 맛은 구수하고 살짝 시큼해요.

하루를 꼬박 숙성한 천연발효종의 시큼한 맛과 호밀의 구수한 맛이 잘 어우러집니다. 

하지만 대중적인 맛은 결코 아니에요.

달거나 부드럽지도 않아요. 살짝 떡 같은 식감도 있지요. 

하지만 잼이나 땅콩버터를 발라서 먹으면 맛있답니다. 



조금 크랙이 생긴 것도 같지요?

저는 반느통이 없어서 냉면 그릇에 반죽을 넣고 2차 발효를 시켰습니다. 

그러다가 독일빵계의 슈퍼스타인 룻쯔 가이슬러의 책을 빌리게 되었어요. 


그 책의 이름은 이름하야 브로트! 

독일어로 빵이래요.

그의 레시피로 만든 새로운 빵... 

레시피를 살짝 적어보자면.. 

21그램의 호밀종에 물 210그램, 호밀가루 210그램을 섞어서 12-20시간을 실온에 놓아둡니다. 

저는 빵 굽는 시간을 놓쳐서 24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에 빵을 구우려고 호밀종이 담긴 통을 열어봤더니, 

 살짝 공기방울이 꺼져 가고 있었어요. 

파란 크레용으로 표시한 저 눈금은 처음에 호밀종과 호밀가루를 섞었을 때의 높이를 표시한 것입니다. 

두 배 좀 넘게 부풀었어요. 두 배 정도 부풀면 괜찮습니다. 

호밀종이 힘이 좋을 때는 빵빵하게 부푸는데, 이 녀석은 살짝 꺼졌네요. 

호밀종이 꺼질까 봐 졸린 눈을 비비며 밤에 호밀빵을 구웠답니다.


그리고 뜨거운 물 105그램과 호밀가루 105그램, 그리고 소금 14그램을 섞은 반죽도 호밀종을 만들 때 같이 만들어놔요. 

그리고 실온에서 20시간 정도 지나면, 뜨거운 물 165그램과 열탕 반죽, 그리고 호밀 사워도우, 425그램의 호밀가루를 섞어서 반죽합니다. 

룻쯔 가이슬러님은 거기에 몰트액도 넣으라고 했는데, 저는 몰트액이 없어서 그냥 마스코바도 설탕 두 스푼으로 대체했습니다. 

몰트액이 뭔지 찾아봤더니 엿기름, 맥아라고 하더라고요. 

엄마들이 식혜 만들 때 쓰는 그것? 그게 제가 있을 리가 없죠. 

어쨌든 선택 사항이라고 하니 그냥 넣지 않았습니다. 

혹시 몰트액이 있으면 멋진 크랙이 나올 수 있을지도!?

이러다가 몰트액까지 사게 될까 두렵습니다. 


다 섞으면 반죽은 아주 찐득찐득해요. 

반죽을 치대면 마치 찰흙놀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손에 물을 좀 묻혀서 마구 치댑니다. 

그리고 수건을 덮어서 삼십 분 정도 쉬게 놔둡니다. 

발효를 시키는 거죠. 

그리고 삼십 분이 지난 후에 드라이 이스트 2그램 정도를 섞어서 다시 치댑니다.

룻쯔 가이슬러 님은 생이스트 7그램을 섞으라고 했는데.

저희 집에는 생이스트가 없어요. 

생이스트 3그램은 드라이 이스트 1그램과 같다고 하니, 2그램 정도를 섞습니다. 

그리고 또 삼십 분을 기다립니다. 

그러고 나면 2차 발효를 위해 동그랗게 성형을 해서 발효 바구니에 반죽을 넣습니다. 

보통 반느통이라고 등나무로 만든 발효 바구니를 많이 쓰시던데, 

저희 집에는 그것도 없어요...

그래서 저는 냉면 그릇에 광목천을 얹어 반죽을 넣었습니다. 

없는 게 참 많지요..

하지만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반느통을 드디어 주문해서 아마 다음 주에는 그걸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계속 물건만 늘어갑니다. 

웬만하면 안 사려고 했는데, 반느통은 정말 사고 싶더라고요. 

이 모든 진행 과정의 사진은 못 찍었어요...

저의 귀찮음도 있고.. 손이 찰흙 덩어리가 되어서..

다음에는 한번 찍어보겠습니다. 


2차 발효가 끝난 반죽은 요로코롬 동그랗고 매끈하게 됩니다.

구멍도 뽕뽕 났네요. 

구멍이 나는 게 좋은 것 같진 않지만, 잠시 쉬게 놔두었다가 

250도로 예열한 오븐에 250도로 10분, 그 후에 200도로 오븐 온도를 낮추고 50분 동안 굽습니다. 

그랬더니 요런 빵 덩이가 나왔어요.

감자녹말을 뿌리고, 뜨거운 물을 칠해주었더니 마치 거대한 운석 같네요.

남편이 아침부터 무슨 운석 같은 걸 만지고 있느냐고 한 마디 합니다. 

우주에서 떨어진 녀석 같은 비주얼이죠. 

크랙은 아직 아쉽습니다. 

어떻게 하면 소용돌이 같은 크랙이 나올까요...

그래서 이렇게 칼집도 넣어봤습니다. 

이번에는 악어 등가죽 같다고 남편이 한 마디 던지고 갑니다. 

자꾸 깐족거리면 저에게 명치를 맞으니 최대한 방어자세를 취한 후 한 마디 던지고 도망가네요.

칼집을 넣은 것도 균일하지 않네요.

많이 연습하면 좀 나아지겠죠. 

다 구워진 빵은 광목천이나 보자기로 감싸줍니다. 

호밀빵은 구운 후 바로 냉동실로 가지 않아요. 

하루 이틀 정도는 천에 감싸서 숙성시키면 더 맛있습니다. 

향도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호밀빵은 굽고 난 후에도 자가발전을 하고 있는 듯해요. 

자른 빵의 단면은 요런 모양이네요. 

밀가루 빵과 달리 기공이 크지 않고 조밀합니다. 

그리고 빵은 아주 무겁습니다. 무기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친정 엄마가 김장 김치를 주신다며 방문하셨다가, 

악어 등가죽 같은 저의 빵을 탐내셨어요. 

그래서 반 덩어리 잘라드렸습니다. 

한 덩어리 다 드리고 싶었지만, 다음날 제가 먹을 게 없어서.... ㅎㅎ

호밀빵은 한 번 만드는데 이틀 정도 걸리거든요. 

다음에는 한 덩어리 만들어서 다 드려야겠어요.


악어 등가죽 호밀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었습니다. 

병아리콩으로 만든 샐러드와 사과, 그리고 상추를 듬뿍 얹었습니다. 

빵에는 땅콩버터를 바르고요. 

그때 그때 집에 있는 재료를 듬뿍 넣어서 먹습니다. 

동물성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비건 호밀 샌드위치입니다. 

샌드위치를 반으로 잘라보니 요런 모양이네요. 

이렇게 두 개를 먹으면 충분히 배가 불러요. 

아랫배가 아주 묵직해지죠. 

그리고 다음날 행복의 나라로 갈 수 있습니다. 

저 옆에는 2차 발효가 끝나고 오븐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호밀이가 보이네요. 


달달한 빵을 좋아하는 남편은 한동안 제 호밀빵에는 손도 대지 않더니, 

저랑 비건 빵집에 같이 갔다가 제 것의 반도 안 되는 호밀빵을 

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파는 것을 알고부터는  가끔 먹어요. 

출근할 때 땅콩버터와 사과를 얇게 썰어서 간단한 샌드위치를 싸주면 잘 들고 가더라구요.


백 퍼센트 호밀빵은 저의 주식이나 다름없게 되었답니다. 

호밀빵은 놀라운 포만감을 갖고 있어요. 

샌드위치로 하나만 먹어도 정말 배가 불러요. 

거기다가 정말 중요한 이유는, 행복의 나라로 가게 되는 것이 너무 쉬워졌다는 것입니다. 

변비에 좋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호밀빵을 먹으면 좀 무서울 정도입니다...


원래  채식을 해서 화장실에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호밀빵은 그 효과를 극대화시켜줍니다. 

식이섬유가 많아서 그런 것일까요. 

한 달 반 먹어본 결과 변비에 정말 효과가 좋습니다. 

사실 빵 사진 앞에 두고 이런 얘기 하기 뭐하지만, 화장실이 막힐 지경이었다는 tmi를 대방출....


저의 호밀빵은 아직 현재 진행형입니다. 다음 주에 반느통이 오면 멋진 크랙이 생길지...

한경희 광파오븐과 냉면그릇으로 만든 호밀빵. 

호밀빵 매니아의 호밀빵 만들기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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