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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무호두 Jun 16. 2019

그 여름, 영상통화의 기억

아빠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영상통화를 잘 쓰지 않는다. 사실은 그 기능을 작년 여름 전에는 한 번도 이용해본적이 없다.  그닥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영상통화를 처음으로 쓰게 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그것도 칠십 넘은 우리 아빠하고.


그것은 아빠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벌써 산지 십이년도 더 지난 내 맥북 화이트를 아빠한테 주었다. 밧데리가 부풀어올라 전원을 연결해야만 켜지는 고물 노트북이었다. 아빠는 그걸로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아빠가 글을 쓰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나와 남편이 가끔 친정에 갈 때 마다 아빠는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우리 아빠는 항상 뭔가를 말하고 싶어한다. 젊을 때부터 달변이라는 소리를 들어왔고, 말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데, 요새는  친구분들도 건강이 좋지 않아 만나기가 힘든 통에 남편만 가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입술을 옴찔 옴찔 거렸다.


어차피 나는 잘 들어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쩌다 나 혼자 친정에 가면, 아빠는 ‘김서방 왔나?’ 묻고 나 혼자 온 것을 확인하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방에 들어가 버리곤 했다. 그러다 남편만 오면 파자마 바람으로 뛰어나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편은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것이 침묵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남의 말을 말없이 듣는 척하는 것이었다.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도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보다는 앞에 놓인 갈비탕과 눈을 맞추며 무언의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좋다고 했다. 성격이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고, 침묵하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말하는 걸 좋아하는 아빠한테는 참으로 안성맞춤인 사위였다.


아빠가 항상 오프닝으로 하는 멘트가 있다. 

'니, 그게 뭔지 아나?'

 그렇게 운을 띄운 다음 상대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빠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우찌 그것도 모르고 이 세상을 살아왔노..’ 하면서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했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린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날은 ‘니 멧당나귀가 뭔지 아나?’로 시작했다.

‘멧당나귀요? 당나귀는 아는데...’ 남편이 물었다. ‘멧당나귀, 멧. 뫼 산짜 있재? 그 뫼할 때 뫼를 쓴다. 어쨋든 그 멧당나귀, 그기  산에 사는 당나귄데, 그게 고집이 엄청 세다. 그기 말이야, 근데 주인이랑 같이 짐을 메고 가는데.. 같이 가는 저 강아지는 짐도 안지고 폴짝폴짝 쫓아댕김서 놀리기만 하는기라.’

아빠의 동물 이야기는 그렇게 계속 되었다. 멧당나귀가 오만한 강아지를 혼내주고, 그 다음은 마당에 떨어진 콩을 주운 장끼와 까투리가 부부싸움을 했고, 그 다음, 또 다음... 집에 갈 때 마다 이야기는 바뀌었다.


얘기 자체는 재밌었지만, 남편은 아빠의 이야기를 듣느라 엄마가 실컷 준비한 음식과 무언의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고 아빠만 바라봐야했다. 게다가 남편은 아빠의 경상도 사투리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보다못한 내가 말했다. ‘아빠, 그거 말로 하는 거보다, 소설로 쓰는 게 어때? 소설로 써서 보여줘.’ 

단순히 남편을 아빠한테서 구해내기 위해서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빠의 소설 쓰기는 시작되었다. 사실 아빠가 책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유난히 사주에 물이 많은 아빠와 물과의 악연을 그린 용궁여행이라는 책을 썼다. 한창 아빠가 망하기 전이라 올림픽 파크텔에서 출판기념회도 했다. 세계문학협회에서 나왔다는 고운 한복을 입은 아줌마들이 추천사도 읊었다. 뭔가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때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장을 빼입고 가서 커다란 렌즈가 달린 비디오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어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십년이 훌쩍 지난 옛날 일이었다.


어쨌든 그 날 이후로 아빠는 내 고물 노트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자판을 치기도 어려워 한 자 한자 독수리 타법으로 쳤다. 나는 파일을 저장하는 방법, 저장된 파일을 다시 여는 방법등을 간단히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아빠는 까먹고 나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응. 내가 이 걸 파일을 열어야 되는데 말이야. 그 버튼이 어디있다 캤재?’ 


아빠는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는 누군가한테 뭘 묻는 걸 죽기 보다 싫어했다. 아빠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이었는데, 도통 이 컴퓨터 앞에서는 맥을 못추었다. 나는 다시 가르쳐주었지만 아빠는 도통 그게 어디있는지 찾지 못했다. 보다 못한 내가 말했다.

 ‘아빠 내가 영상통화 켤테니까, 화면 비춰봐.’


영상통화를 켜자 아빠의 커다란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아빠는 젊었을 때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잘생긴 편이었지만, 머리가 컸다. 게다가 선글라스만 쓰면 예전 닥터슬럼프라는 만화에 나오는 파리맨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바퀴벌레 맨이었던가? 어쨌든 검은 안경을 쓰고 똥을 주워 들고 다니는 머리 큰 아저씨랑 닮았다. 결혼하기 전에 남편이 우리 집에 인사를 왔을 때, 남편은 아빠를 보고 설국열차의 에드 해리스인줄 알았다고 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쨋든 아빠가 노트북 화면을 비추면 내가 어느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설명했다. 아빠는 설명을 들어도 또 물었고, 나는 그 똑같은 설명을 또 반복했다. 가끔은 엄마도 같이 출연해서 깔깔대고 웃었다.

‘니 내 보이나? 내는 니 보이는데?’ 호기심이 많고 화통한 성격인 엄마는 신기한 것을 보면 아주 크게 웃었다. 영상 통화 화면 속에서 엄마가 아이처럼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쨌든 아빠는 6개월간의 씨름 끝에 소설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백만원의 돈을 들여 자비 출판에도 성공했다. 그 이백만원은 아빠가 개인 택시를 해서 번 돈이었다. 나는 아빠의 책을 20여개의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아빠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책을 나눠주었다. 소설집의 이름은 동물 씨어터 1.


하지만 들인 공력에 비해 책은 잘 팔리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풀이 죽은 아빠는 한참을 앓았다. 한참 동안 그러던 어느날, 밝은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출판사에서 책을 국가 공모전에 내려는데, 저자 소개와 추천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추천사는 누가 써야 해?' 내가 물으니 아빠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 

‘몰라 나도. 니가 알아서 써라.’


그래서 나는 아빠 소설집의 추천사를 썼다. 유머와 해학이 담겨 있으며 동물과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돋보이는 이야기로, 경상도 서쪽 지방의 옛사투리를 정확하게 재현하여 학술적으로도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추천사를 쓴 사람의 직위와 경력이 있어야 한다고 씌어있었는데. 나는 뭐라고 써야 할지 난감했다. 이렇다할 직위와 명예가 없는 것이 참으로 오랜만에 한스러웠다. 나는 그냥 저자의 딸이라고 기입했다. 그리고 아빠의 책은 당연히 떨어졌다. 나중에 뽑힌 책들을 보니 베스트셀러 저자에다가 엄청난 사람들이 많았다. 어차피 안 될 게임이었다.


아빠는 호기롭게 동물씨어터 1편이라고 제목을 짓고, 2편을 내려던 계획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개인 택시도 그만두었다. 개인 택시를 팔기 직전에 아빠는 계속 시름 시름 아팠다. 

가끔 집에 가면 ‘내가 요새 오늘내일 오늘내일 한다.’ 라고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병든 강아지같은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어떻게 해야 좋겠냐는 듯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아빠가 일을 하기 싫어서 아픈 척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간파했다.

 나는 ‘아빠 목소리 들으니 아주 짱짱한 것이 모레까지는 살겠다.’고 농담을 했지만 엄마는 진짜로 걱정했다. 엄마는 놀랍게도 아빠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빠는 칠십오세 생일이 지난 날, 성공적으로 엄마 허락을 받고 개인 택시를 팔았다. 카카오 카풀에 반대하던 택시 기사가 분신한 그 다음 다음날이었다. 그리고 아빠는 병이 싹 나았다.


아빠는 지금은 소설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나와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러 나오지도 않는다. 집에 가면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기원에서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 오는 스님이랑 바둑을 두는데, 바둑 실력은 자기보다 한 수 아래지만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고 했다. 게다가 스님은 내기 바둑을 둬서 자기가 이기면 돈을 받지 않고, 지면 돈을 준다고 했다. 아빠는 그 걸 바둑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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