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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Jun 10. 2018

예상치 못한 일, 당황

자존심 때문에 예산보다 더 많은 돈을 썼을 때


한 달 만이다. 그 녀석이 또 찾아왔다. 그 녀석은 군대 한 달 선임이다. 나는 29살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했다. 내가 한참 형인 탓에 그 녀석이 놀러 오면 항상 밥을 샀다.


이 녀석은 강남 사는 빌딩주의 아들이다. 씀씀이 자체가 나와 다르다. 밥 한 끼 먹는데 5,6만 원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이번 달에 카드값이 나오고 학자금을 갚으려면 너무 많은 돈을 쓰면 안 되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가까운 아주 유명한 곱창집을 갔다. 그 곱창집은 저렴하면서도 맛이 아주 좋고 양도 많아 적은 돈으로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대기 팀이 있었다. 기다리기네는 배가 고팠다. 그냥 생선구이 집을 가자고 했다. 생선구이집은 곱창집보다는 조금 더 저렴하다. 그러면 돈을 아낄 수 있다.


그런데 그 녀석은 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오늘은 고기가 너무 먹고 싶다고 했다. 그 순간 고기는 너무 비싸니 다른 걸 먹자고 할 용기가 없었다. 괜히 없어 보일까 봐. 자존심이 상할까 봐 그래서 비싸도 고깃집에 갔다. 고기를 2인분 시켰다. 된장찌개와 계란찜도 나온다. 그래 이 정도면 곱창집과 비슷하거나 조금 저렴하네.

그런데 이 녀석 고기를 더 시키기 시작한다. 내 예상보다 26살의 청년은 훨씬 잘 먹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했던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시켰다. 이번 달에 나가야 하는 학자금 이자와 카드값, 핸드폰 비를 생각하니 아찔하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밥 먹을래?’ 물어보니 난 오직 고기로 배를 채울 거란다. 가슴이 쿵쾅대며 머리로는 ‘얼마 치를 먹었지? 그러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줄여야 하지? 내일 가려던 미술관은 못 가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당황했던 것이다. 내 예상과는 다른 일이 벌어졌을 때, 나는 호흡이 조금 빨라지고 횡격막에 울림이 생긴다. 미소를 잃는다. 그리고 아까 그냥 곱창집에서 조금 기다릴걸 하는 후회를 한다. 이 감정은 당황이다.


아... 내가 당황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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