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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Mar 14. 2019

누군가에게는 잊히지 않는 기억『파도가 너의 일이라면』

김연수, 잊히지 않는 그리움과 상처

소설의 프리패스 김연수


김연수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교회에 같이 다니던 동생을 통해서였다. 당시에 나는 세계 고전이나 일본 문학에 비해, 근거 없이 한국 문학을 낮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학에 담겨 있는 메타포와 시대상,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원리들을 발견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러한 것들은 나에게도 꼭 일어날 것만 같은 상황일 때, 공포와 연민을 느끼고 카타르시스를 더욱 많이 갖게 된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한국 문학을 읽기 시작했다. 김연수 작가를 만나게 된 것은 한국 문학을 읽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교회 동생이 김연수 작가의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책을 선물했다. 김연수 작가의 책은 담담하게 잘 읽혔다. 그 이후로 『세계의 끝 여자 친구』, 『꾿빠이 이상』,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원더보이』등의 작품을 아무 의심 없이 읽어제꼈다. (그럼에도 독후감을 쓰지 않아 읽었던 내용은 이미 증발했다.)

김연수 작가

한국의 어느 식당에 가도 라면이나 김치찌개는 웬만해서는 맛있다. 내 입맛의 프리패스 같은 것인데, 내 독서 입맛에도 김치찌개나 라면 같은 프리패스가 존재한다. '웬만해서는 이 작가의 소설은 재미있다'라는 작가들이 몇몇 있는데, 김연수 작가도 그중에 하나이다.    


과거의 일을 굳이 들춰내야 하는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의 주인공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입양아인 카밀라 포트만과 그의 어머니 정지은,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이다. 전반부에는 카밀라 포트만의 시선으로, 주인공이 성인이 되고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 한국에 오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카밀라는 어쩌다 보니 작가가 되었고, 출판사에서 본인의 탄생에 대해 취재해 보지 않겠냐는 말에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찾아 나서게 된다. 


주인공은 한국에 도착하여 그녀의 출생을 조사하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던 중,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의 어머니인 지은은 고등학생일 적에 카밀라를 낳았고, 아이를 보육원에 맡긴 뒤 자살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지은의 오빠가 지은을 임신시켰다고 알고 있었지만, 조사를 진행해본 결과 현재 교육감 선거 후보이자 당시 지은의 선생님이었던 최성식이라는 자가 주인공의 아버지일 가능성도 있었다. 카밀라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가 과연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출생과 지은의 자살 사건에 얽매여 있던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의 배경 진남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다. 그 과거가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과거는 존재한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 나오는 인물들도 모두 과거를 갖고 있다. 몇몇의 사람들은 한 사람을 사회에서 매장시키고, 죽음으로 몰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사연을 갖고 있었고, 그 사연들로 자신들이 저질렀던 행위를 축소시키고, 나아가 정당화했다. 그로 인하여 그들은 마땅히 해야 했던 일들을 저지른 것으로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던져볼 만한 문제는 '굳이 그렇게 끝난 일을 꺼내어서 따져봐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 잘못이 꼭 다음 세대에게도 이어져야 하는가?'이다. '죽은 사람은 이미 죽었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말이 있다.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왜 이야기를 해야 할까? 나는 왜 과거에 있는 사람에게 분노하는가? 엄마의 죽음을 밝혀내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누군가에게는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기억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의 중간에는 이러한 부분이 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2005년을 기점으로 너는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졌지. 그럼에도 네가 영원히 내 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안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네가 나왔다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경험인지 네게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있는 입술이 내게는 없네. 네 눈을 빤히 쳐다보고 싶지만, 너를 바라볼 눈동자가 내게는 없네. 너를 안고 싶으나, 두 팔이 없네. 두 팔이 없으니 포옹도 없고, 입술이 없으니 키스도 없고, 눈동자가 없으니 빛도 없네. 포옹도, 키스도, 빛도 없으니, 슬퍼라, 여긴 사랑이 없는 곳이네.- 201p 


파도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된다. 그것은 누군가가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누군가에게는 곧 잊힐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바다에 이는 파도와 같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악몽 같은 기억이 될 것이다. 물론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잘못된 행위를 단순히 덮어버린다면 그것은 또다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반복될 것이다. 그 행위에 대한 비판과 사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목적은 그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끔 하는 것이다. 잘못에 대한 진정한 사과, 그리고 처벌이 피해자에게 완벽한  위로와 평안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행위에 대한 처벌은 이루어져야 하고, 그전에 앞서 가해자는 자신의 행위가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한다. 

우연히도 얼마 전 전두환 전(前) 대통령이 32년 전 광주 민주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던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하여 재판을 받았다. 전전대통령이 탄 차가 광주로 들어오자 광주 시민들은 '전두환은 물러가라'며 그를 저주했다. 차에서 내린 그에게 기자들은 "헬기 사격을 지시한 것을 인정하느냐?",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할 것이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거 왜 이래!"라고 짜증을 부렸다. 이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다 지난 일로 왜 저렇게까지 할까?'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민주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셨고, 그 가해자가 아직 살아있다면 다 지난 일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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