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미학의 성립
여러분은 예술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그림, 오페라, 조각 등등이 생각날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는 이런 것들은 굉장히 비싸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 즐기는 것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에는 미학을 공부하지 않아서 나와는 거리가 조금 먼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죠. 그 예술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예술가는 나와는 조금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일반인들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하죠.
두산백과에는 예술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미적(美的)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 (출처: 인터넷 두산백과)
예술의 사전적 정의는 아름답다고 느껴질 만한 어떠한 것(그것이 감정이든, 환호든, 쾌이든...)을 만들어내는 '창조'활동입니다. 그런데 미(美)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요? 인간이 그것이 가능한가요? 그렇다면 이 개념은 언제 생겨난 것일까요?
수많은 철학자들이 각자 다른 주장을 했으므로 이 질문에 대한 명확히 답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대 미학과 근대 미학을 통해 우리는 조금이나마 어떤 과정에 의해 이러한 정의가 내려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고대 그리스 시대 우리가 흔히 예술이라 부르는 회화, 조각, 시, 음악들은 원래 기술의 종류들로 여겨졌습니다. 당시의 시인이나, 조각가, 회화가, 기악가들은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나, 신화, 사물들을 모방해서 가장 사실에 가깝게 표현하는 게 목적이었죠. 당시에는 모방되는 것(원상)들이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했고, 작품들을 통해 사람들은 모방되는 대상을 명확히 이해하려 했습니다. 어린이들이 벽에 붙여놓고 보는 단어 연습장이 있습니다. 사과라는 글씨 옆에 빨갛고 탐스러운 사과 그림이 그려져 있어 어린이들이 '사과'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 알아야만 하는 것을 회화나 조각, 시, 음악으로 옮겨놓은 것이 바로 고대 예술이었죠. 정확한 유비 관계는 아니지만 고대의 예술은 그런 정도의 것이었습니다. 고대의 예술은 원상을 단순히 '모방'하는 단계에 그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예술가들은 얼마나 사실적으로 대상을 표현하는 기술이 있는지가 중요했죠. 즉 그들은 '기술자'로 여겨졌습니다. 그러한 개념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써의 예술로 성장하게 된 것은 근대 이후입니다. 근대의 예술관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는지를 소개해주는 책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소개해드리는 오타베 다네히사의 『예술의 역설』입니다.
이 책은 근대에 이르러 어떻게 예술이라는 것이 기술을 벗어나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 서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먼저 고대 그리스와, 그리스도교 안에서 신에게만 허락되었던 창조성이 근대에 이르러 예술가들에게 부여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라이프니치는 가능성 세계 이론을 통해, 수많은 가상 세계에서 최고의 세계를 만든 신의 창조와, 예술가의 그것이 유비 관계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 철학자의 의견이 그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가 싶지만, 이를 통해 예술가는 창조성을 부여받았습니다.
이 가운데 예술가들은 단순히 대상을 모방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통해 모방하는 형식의 독창성을 발휘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전에는 쾌를 주는 것들만을 모방했지만, 이제는 불쾌한 것들조차도 향유자로 하여금 기분 좋게 모방하는 방법들이 생겨납니다. 이전의 규범을 벗어난 독창성이 발휘된 예술 작품들은 이제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르지만, 범례성을 가진 독특한 존재로 자립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예술 작품은 '원상-모방'의 양자 관계를 탈피해, '예술가 - 예술 작품- 향유자'라는 3자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오타베 다네히사는 이 같은 과정들을 통해 예술이 어떠한 형식을 가지느냐가 중요해졌고, '무엇을' 모방하느냐보다는 '어떻게' 모방하느냐가 중요해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즉 모방되는 대상보다는 모방하는 주체자인 예술가가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이죠.
오타베 다네히사는 『예술의 역설』을 통해 수많은 철학자들의 예술관을 소개해줍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바움가르텐, 달랑베르, 라이프니치, 칸트, 포프, 버크 등등 근대 철학자들을 예술관들을 소개해줍니다. 저자는 창조, 독창성, 예술가, 예술, 형식이라는 논리적이고 직렬적인 흐름을 통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식으로 책을 구성했습니다. 덕분에 하나의 주제를 읽고 드는 의문점들에 대해 다음 주제에서 친절히 설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책입니다. 이러한 책의 구성은 근대 미학에 대한 연구가 누구에 의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갔는지를 알게 된다. 이 책을 읽는다고 철학자들의 철학 사상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예술이라는 한 물줄기가 어떻게 흐르게 되었는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의 논문들을 편집하고 재구성해서 만든 책입니다. 애초에 일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 아닙니다. 덕분에 미학적인 용어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이게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할 법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덕분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책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미학이라는 학문 안에서 용인되는 용어의 의미는 가끔 다른 것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다면, 고대 미학을 공부해본 뒤에 읽어 보시기를 추천하는 책입니다. 고대 미학을 알고 나면 재미있게 읽힐법한 책이다. 하지만 저 또한 여전히 조금은 어렵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