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술호근미학 Feb 11. 2021

애인이 다른 이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느끼는 감정

서운함이 아닌 불안감과 열등감

요즘 들어 그녀가 함께 일하는 동료인 d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D가 맛있는 타르트를 사줬다느니, D가 어떤 작업을 했는데 그것이 너무 멋있지 않느냐는 둥. 분명 그녀가 D에 대한 어떠한 연애감정을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랬으면 나에게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모르게 심통이 났다. 내 앞에서 다른 남자의 칭찬을 하다니. 괜히 그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 감정이 정말 맞나 생각을 한다.


서운하다는 것은 1.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2. 누군가에게 바라는 것이 있고 3.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4. 그러니까 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것이 화낼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때 상대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그럼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바랐나?

나는 그녀에게 나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주기를 바랐던가? 아니면 그녀의 삶에 대해 침묵하기를 바라는가? 그것은 아니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듣는 것이 기분 좋다. 그러니 나는 바라던 것이 없었고, 내가 느낀 불쾌감은 서운함이 아니다. 서운함이 아니기에 내가 느낀 감정은 그녀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나는 무엇에 대해 불쾌감을 느낀 것인가?


첫 번째로 그녀는 D를 칭찬했다. D는 객관적으로 바라보아도 멋지다. 똑똑하고, 자신의 일을 색깔 있게 잘해나간다. 이미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어느 정도 두각도 내고 있다. 친절하고 유머도 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D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두 번째로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너무 아름답다. 그녀는 혼자 있으면 남자들이 번호를 물어볼 정도로 객관적으로 예쁘다. 그녀가 예전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이제 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자 그녀의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과연 남자들이 00을 가만히 놔둘까??


이 두 사람이 같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불안한 것이다. D는 멋있고 내 여자 친구는 아름다우니 왠지 나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그게 내가 느끼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정확한 불쾌감이었다. 그것을 알고 나니, 여자 친구에 대한 서운함이 사라졌다. 그리고 D에 대한 열등감도 사라졌다.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나도 D만큼 아니 어쩌면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훌륭한 사람 이다.


나는 내가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칭찬한 그 단면만으로 전체의 나를 다시 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게 나의 정확한 감정이 무엇에서 발생된 것인지를 알고 정의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가끔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불쾌한 감정을 가진다. 그 불쾌함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에 그것에 대한 마깡한 이름을 붙여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문제는 그것에 대한 정확한 정의 없이 이전에 알고 있던 단어나 개념에 그 감정을 종속하는 경우다. 드라마나 책에서 봤던 상황과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비슷했던 이름으로 그 감정을 정의한다.


그럴 경우 우리는 엉뚱한 사람에게 그 불쾌감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된다. 마치 내가 처음에 가졌던 감정을 정확한 정의 없이 서운함이라는 단어에 종속하고 여자친구에게 책임을 물었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내가 그 감정을 단순히 서운함이라고만 정의하고 만족했다면, 나는 여자 친구를 나의 불쾌감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잘못이라 비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불쾌감이 내 안에서 일어난 유기적인 과정의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자, 더 이상 여자 친구를 탓하지 않게 된다. 정확한 감정의 정의는 엄한 사람에게 불쾌감을 드러내어 상대방도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어떠한 불쾌감을 느낄 때 그 불쾌감이 이전에 알던 단어에 기대어 섣불리 정의하고 다른 이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내가 그 감정을 왜 느꼈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나에게 불쾌감으로 다가오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그로 인해 다른 이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고, 스스로를 돌아보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작가의 이전글 북한산아, 너 멀리서 보니 정말 아름다운 산이었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