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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Jun 10. 2021

렘브란트는 어떻게 위대한 화가가 되었을까?

독립적인 자유의 화가 렘브란트

이 글은 유튜브에서도 감상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tSzhVRJJwgg



위대한 화가 렘브란트


흔히 빛의 화가라고 불리는 화가가 있다. 그의 그림은 극적인 명암을 사용해서 강조하는 부분들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 화가가 바로 렘브란트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그의 사실적 묘사가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의 그림이 사실적 묘사에 있어서는 다른 그림들보다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17세기 네덜란드


렘브란트는 17세기 초반에 태어난 네덜란드의 화가다. 이시기의 네덜란드는 소위 ‘골든 에이지’로 불렸다. 동인도회사가 설립되고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등지에 식민지를 건설해서 전세계적인 해외무역과 상공업을 발전시켰고 막대한 자원과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개신교 기반의 문화라서 종교와 사상의 자유, 사회 평등의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여기에 재산이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현대적 자본주의가 발전한다.


이런 상황 가운데 예전에는 노예거나 농노였던 사람들이 상인이 되고, 그 상인들은 예전 귀족들보다도 더 큰 부를 갖게 된다. 표면상 사회 평등은 이뤄졌지만, 그 부를 갖게된 상인들은 여전히 귀족 출신들에게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귀족들보다 자신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부를 위시해서 세계의 희귀 보물과 예술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가장 비싸고 튀는 그림


이렇게 활발한 예술품 구매에 따라 17세기 네덜란드에는 거대한 미술 시장이 형성된다. 당시 네덜란드 미술은 대상을 거울에 비친 듯이 매끈하게 그려내고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런데 웬만한 화가들이 극사실적으로 너무 잘그리니까, 대부분의 그림이 비슷해 보이는 문제가 생겼다. 이에 상인들은 조금 더 독특하고 희귀한 작품을 찾기 시작했다. 이 때, 렘브란트가 등장한다.

렘브란트는 표면이 매끈한 같은 시기의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물감을 덕지덕지 발라 굉장히 거친 질감의 그림을 그렸다. 오죽했으면 어떤 초상화는 하두 두텁게 그려서 코를 잡아당길수도 있을거 같다는 조롱을 듣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그의 그림 속 명암은 지나치게 극적이었다. 이 때문에 인물의 얼굴이 반만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어둠에 묻히는 경우도 발생했다.

초상화의 의뢰자들은 자신의 얼굴이 잘 드러나길 바라는데, 그렇지 않으니 렘브란트에게 불평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대로 그렸다. 의뢰자가 돈을 주지 않으면 그 그림을 교묘하게 바꿔서 종교화로 완성시켜서 팔 정도로 그는 자신의 화풍을 끝까지 고집했다.

램브란트의 초상화

한 마디로 사실을 묘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렘브란트의 그림이 다른 그림에 비해 잘 그린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는 아주 알맞았다. 분명히 다른 그림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자들의 입장에서는 무턱대고 이 그림을 살 수 없었다. 당시 이름있는 화가들은 종교계나 왕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렘브란트의 그림은 당대의 화풍과 어울리지 않으니 종교계나 왕실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렘브란트는 철저하게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용한다. 그는 경매나 거리 전시에 자신의 작품을 내놓고 적극적으로 판매한다. 다들 극사실주의로 그린 그림들 사이에 눈에 띄는 렘브란트의 그림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렘브란트는 자신의 그림을 직접 높은 돈을 주고 사는 방식으로 값을 올려 버린다. 가격이 비싸면 안 팔리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돈이 넘쳐나던 네덜란드에서, 특히 귀족출신들에게 자신의 부를 자랑하고픈 상인 부자들에게는 더 비싼 그림을 가지고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했다. 그래서 렘브란트의 그림들이 높은 값에 거래되기 시작한다.


당대의 화풍에 비해 파격적인 독특한 화풍과 자본주의 시스템이 렘브란트를 유명한 화가로 만들어준 것이다. 그의 그림은 화폐와 유사하게 받아들여졌고, 렘브란트 개인의 가치는 명예로 이어졌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화가 렘브란트


이러한 렘브란트의 행위는 종교계나 왕실로부터 하사된 명예가 아니었어요. 그는 시대와 타협하지 않고, 독립적인 화풍을 지키면서 스스로 명예를 쟁취했다. 이 명예는 화가 개인의 자유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독일의 예술 역사가인 율리우스 헬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렘브란트 자신은 그 개인의 독립을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그의 예술작품들의 위대함은 이 사실에 기인한다. 그것은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인간으로서 그의 자유와 예술을 열정을 가지고 한꺼번에 통합하여 유지하려 했고, 명예로운 사슬에 묶이기를 거절했던 한 인간의 작업이다.”


렘브란트가 위대한 화가로 평가 받는 이유는 의뢰자와 구매자, 왕실과 종교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던 선발 주자이기 때문이다.  어떤가? 당신은 렘브란트처럼 개인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의뢰자와 종교계와 왕실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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