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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Jun 01. 2021

피카소의 작품은 왜이제야한국에 들어왔을까?

<한국에서의 학살> 공산당 프로파간다?

이 글은 유튜브에서도 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zIa_bQqyBn4



지난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전시를 다녀왔다. 이번 피카소의 전시에서 눈길을 끌만한 작품은 바로 <한국에서의 학살>이다. 이 작품은 피카소 사후 48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전시되는 것이다. 전쟁의 장소인 한국에서 작품이 제작된 지 70년 만에 처음 반입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전에 그렇게 많은 피카소 전시가 있었는데 왜 이제야 이 작품이 전시되는 것일까?



게르니카

1937년 4월 26일 스페인 내전 반란군의 요청에 의해 나치 독일군이 24대의 비행기로 스페인 게르니카 지역 일대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한다. 이에 도시 3분의 1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학살당한다. 사실 게르니카는 마을 전체에 자동소총이 1정 밖에 없을 정도로 군사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가 아니었고, 반란을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도시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치 독일군은 무기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이 곳에 도를 지나친 폭격을 가한 것이다. 피카소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한다. 피카소는 이 참상을 세계에 알리고자 <게르니카>라고 하는 작품을 그리고, 대량학살에 대한 참혹함이 드러난 이 그림에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낸다.


한국전쟁

그리고 13년 뒤 1950년 6월 25일, 한국에서 내전이 발발한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625 한국전쟁이다. 이 전쟁은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과 중화인민공화국, 소련이 관여해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의 국제전이된다. 한국 전쟁은 단순한 내전이면서 공산과 반공산이라는 이념의 냉전으로 변모한다.


이 소식을 들은 프랑스 공산당은 마침 공산당 소속이던 피카소에게 한국전쟁에 대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의뢰한다. 이전 게르니카에서 나치의 만행을 세계에 고발한 것처럼 미군의 만행을 그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피카소는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을 그린다.




공산당 프로파간다?


그런데 1951년 파리 살롱 드 메에서 이 작품이 공개되자 프랑스 공산당이 당황하게 된다. 작품 안에서 학살하는 주체가 선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살하는 주체들이 미군이다'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하는데 피카소의 그림 속 학살하는 주체는 그렇지 않았다. 미군을 상징하는 색을 칠한다든지, 국기를 그려 넣는다든지 해야 하는데, 그림 속 주체들은 흑백의 벌거벗은 모습일 뿐이다. 


이 때문에 이들이 공산당인지, 반공산당인지 구별할 없는 모습이다. 그래서 프랑스 공산당 입장에서는 이것을 미국의 만행을 그림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 된 것이다.


미국 측에서는 당연히 공산당 소속이던 피카소가 그린 그림에서 학살하는 주체들은 미군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피카소의 작품은 미국을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으로 몰고자 하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이에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이 그림은 공산당 사상을 교육시키려는 프로파간다일 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반입 금지 품목으로 분류되어 전시하려는 시도조차 없었다.


피카소의 변명


그렇다면 정말 이 그림은 공산당 프로파간다였을까? 이 그림에 대해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피카소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피카소가 1988년 도어 애쉬튼의 책 'Piccaso on Art'에서 이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다.



“전쟁이란 무엇일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하고 회상할 때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괴물이라는 것밖에 없었다. 더구나 미군이나 어떤 다른 나라 군대의 헬멧이나 유니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미국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나는 인류의 편에, 모든 인류의 편에 서 있다.”


피카소는 학살의 주체가 미군도 아니고, 소련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이 그림을 통해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어떠한 한 주체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전쟁의 참혹성이라는 인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고 말한다.


피카소가 위대한 예술가로 평가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예술을 단순한 현실의 재현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점이다. 피카소 이전의 시대에는 얼마나 현실의 물건을 비슷하게 그리느냐가 예술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카메라가 발명되고 이러한 것들이 의미를 잃고, 예술은 이제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가가 중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피카소는 그 메시지라는 것이 단순한 메시지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는다. 나는 생각하는 대로 그린다."
"위대한 예술은 고귀한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피카소는 단순히 어떤 이념이 더 우위에 있다는 작은 문제를 그의 그림에 담으려 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고귀한 정신,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것을 그리려 했다.


만약 피카소가 한국에서의 학살에서 공격하는 주체들을 명확히 미국 군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해보자. 그 그림은 단순한 현실의 재현이며, 사회주의 사상을 드러내고 교육하는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 그림을 통해 모든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전쟁의 참혹성’이라는 보편적 문제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폭력의 주체를 모호하게 그린 것이다.


이것은 폭력을 행하는 주체가 확실했던 <게르니카>에서도 마찬가지다. <게르니카>에서는 나치군의 표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 그림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고통과 죽음, 헤어짐, 분열 등의 감정뿐이다. 있었던 일을 고발하는 데 그칠 수 있었지만, 피카소는 작품에 ‘전쟁’이라 하는 인류 보편적 문제를 다룬 것이다.


누군가는 피카소가 자신의 그림을 미국에도 팔기 위해서 부리는 수작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공산당 소속이던 피카소가 미군을 비판한 것 아니겠는가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사실 피카소는 이념에는 그렇게까지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어요. 피카소는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던 시기에 가장 활발히 저항한 단체라는 이유로 공산당에 가입했다.



어찌 되었든 피카소는 <한국에서의 학살>에 대해서 앞서 소개한 것처럼 미군을 그린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 덕분인지 요즘은 피카소의 그림이 단순한 사회주의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비로소 한국에도 이 작품이 전시될 수 있게 됐다.


어떤가요? 여러분들은 피카소의 그림에서 폭력의 주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피카소의 말처럼 전쟁의 참혹성이라는 보편적인 문제를 다룬 그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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