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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Nov 21. 2022

환승 연애 2에서 옛 연인 사진을 버리지 못했던 이유는

앙리 베르그송과 비비안 마이어의 답


환승 연애라는 프로그램 아는가? 헤어진 연인들을 소환하고 3주간 합숙하면서, 새로운 사랑을 찾거나 재회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12화에는 'x룸'이라고 해서 헤어진 연인들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영상, 편지 등이 전시된 공간이 나온다. 


헤어진 지 6개월에서 많게는 1년이 넘은 커플들이 있는데도 여전히 사진이나 영상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예전에 사귀던 여자 친구가 나를 만나기 전 사귀었던 연인들과의 사진이나 영상들을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있다고 해서 기분이 언짢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나도 이별을 했을 때, 사진을 지우는 건 참 어려웠다. 



우리는 대체 왜 헤어진 연인과의 사진을 지우지 못할까?



그건 사진에 담긴 옛 연인과의 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그중에서도 가장 '선별된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름답다', '이건 꼭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사진을 찍는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영원히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진 찍을 때 단 한 장만 찍지 않는다. 여러 장을 찍은 다음에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사진을 고른다.



그러니 연애 후에 남는 사진은 자신에 의해 '선별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헤어졌음에도 옛 연인의 사진을 쉽게 지울 수 없다.





문제는 이렇게 자신에 의해 선별된 사진들을 계속해서 보고 있으면 우리는 현실을 제대로 마주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때의 사랑이 너무 아름다웠고 진심이었기에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와 다른 현재의 모습을 부정하고 싶다.



환승 연애에서도 어떤 인물들은 사진 속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시간은 흘렀고 헤어진 연인들은 변화했다. 그 때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앙리 베르그송의 시간과 기억에 대한 철학이 생각났다. 베르그송은 우주는 수많은 진동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시간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 사물, 사건, 인물을 기억하는 것은 그 사물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이미지'만을 기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진 속 옛 연인의 모습은 과거의 그 순간 그 장소에 있던 연인의 일부 이미지이지. 현재 연인의 전체는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의 연인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때와 달라졌다고 실망한다면 그것은 현실의 연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내가 믿고 싶은 대로의 연인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진짜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이미지가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워지는 이미지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들은 때로는 받아들이기 불편하고 어려운 것들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내가 기억하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기억들만 선별해서 간직하고 있으면 결국 현재 내 앞에 있는 사물 사건, 인물,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억을 아예 안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하고, 기억을 기반으로 해서 성장을 이뤄나가는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나 자신에 의해 선별된 편협한 아름다움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잘 받아들이며 새로운 아름다운 순간을 '잘' 기억해나가야 한다.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진작가가 있다.



 



그녀는 아마도 베르그송의 시간과 기억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녀가 보여준 행보는 자신에 의해 선별된 편협한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적극적으로 현재를 긍정하고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살아생전 15만 장에 가까운 사진을 찍었지만, 그 사진들의 아주 일부분만 인화했다. 사진을 인화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선별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진을 인화하지도 않으면서 그녀는 15만 번의 사진을 찍은 것이다. 





그녀에게 사진을 찍는 것은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는 가장 적극적인 활동이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생각이 불변하지 않는 사진처럼 고정되길 바라지 않았던 듯하다.



비비안 마이어는 그녀의 삶 속에서 새로운 가족, 친구들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현실은 사진 속에서처럼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현실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더라도, 그것에 고정되고 싶지 않아 인화를 포기한 것이다. 그녀는 어떤 영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글쎄요, 나는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야 해요. 
인생은 바퀴와 같습니다.
한번 올라서면 끝까지 가야 해요.
그리고 끝에 다다랐을 땐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줘야 하죠.


Well, I suppose nothing is meant to last forever. We have to make room for other people. If is a wheel. You get on, you have to go to the end. And then somebody else takes your place.




환승 연애로 한 번 돌아가 보자. 환승 연애의 인물들은 헤어진 옛 연인을 실제로 다시 마주하고 눈앞에 있는 현재의 옛 연인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사진 속 인물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눈앞에 있는 옛 연인들이 더 이상 각자가 생각하던 가장 아름다운 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 변해 있었고, 새로운 사랑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과거에 있는 사진과 영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시 시작하게 된, 그리고 앞으로 사랑할 것에 대해 말한다. 



옛 연인과 다시 만난 커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전처럼 다시 사랑하자, 돌아가자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전에 있었던 자신의 잘못들을 돌아보고, 그것을 고쳐서 새로운 사랑을 하자고 다짐한다.




과거에 선별된 아름다움이 아닌, 현실을 긍정하며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은 상대방에 대한, 그리고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도 모두 깨뜨린다. 



당신은 어떤가? 



이전과 같지 않은 마음 때문에 헤어질 마음을 품거나, 이미 헤어졌는데도 이전의 자신에 의해 선별된 아름다운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이 연인에 대한 것이든, 자신에 대한 것이든 그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현실을 직시하고 그때와 변화된 것들을 한 번 받아들여보길 바란다.



당신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그 연인에게, 또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그 기억들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들이 새롭게 보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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