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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Mar 19. 2016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음식은 미각이 아닌 시각과 청각과 촉감을 후각을 자극한다.

나는 감자탕을 싫어한다.

나는 감자탕을 싫어한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다. 감자탕만 먹으면 어린 시절 고생하신 어머니가 생각나서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의 회사는 부도를 맞았다. 아버지는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을 다녔고, 어머니는 하루아침에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중소기업의 사모님으로 반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은 없었다. 낮에는 혹여나 누가 알아볼까 봐 어머니는 저녁시간부터 해가 뜰 때까지 감자탕 집에서 일을 하셨다. 학교가 끝나고 빛이 안 드는 반지하 우리 집에 들어간다. 문을 열면 구수한 감자탕 냄새가 난다. 돼지 등뼈에 붙은 살점을 뜯어먹고 우거지를 건져 먹는다. 이 감자탕은 밤새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피고 일하신 어머니가, 집에 와서 음식 할 힘조차 없어 당신이 일하시는 식당에서 사 오신 음식이다. 그 생각을 하니 감자탕이 쉽사리 목구멍으로 지날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감자탕을 잘 먹지 않는다.


소울푸드


음식은 분명 미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먹고 나면 다른 감각을 활성화시킨다. 음식에는 과거를 소환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 이전에 먹었던 장소와 , 함께 했던 사람,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 듣던 노래들을 기억하게 한다. 특히 그것이 매일 먹는 밥과 달리 특별한 누군가가 해주었던 음식이라면 더더욱 그 음식을 먹을 때마다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게끔 한다. 아니면 예전에는 매일매일 별다른 노력 없이 먹던 것이지만 지금은 먹기 힘든 음식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그것을 '소울푸드'라고 부른다.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은 음식을 통하여 틀어진 관계를 회복해 나가는 이야기의 단편 모음집이다.

이 책은 일본 최고의 인기 여성작가 4명인 가쿠타 미츠요, 이노우에 아레노, 모리 에토, 에쿠니 가오리가 각각 한 편씩의 단편을 실었다.

그들은 스페인, 이태리, 프랑스,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한 가지 특정한 음식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순히 에쿠니 가오리 때문이었다.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작품을 몇 개 읽고 난 뒤 이 작가에 대해 더 읽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고, 검색하여 찾은 책이다.

책은 길지 않은 호흡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의 깊이는 길이만큼 얕지는 않다. 각각의 이야기들의 주인공에 몰입해서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숨이 턱 막히는 슬픔에 빠지기도 하고, 같은 아픔을 공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위로받기도 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4명의 작가를 비교하고 그들의 스타일을 분석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나의 소울푸드코트


얼마 전  회사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는 백화점에 들렸다.

백화점의 지하 2층은 식품코너이다. 마감시간이 되면 이른바 '마감세일'이라는 것을 한다.

5-6천 원 상당의 음식 3개를 만원에 판매하는 행사이다. 손보다 조금 더 큰 종이 박스와 플라스틱 덮개에 담긴 샐러드, 튀김, 김밥 등을 판매한다.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고 밥도 못 먹은 터라 만원을 내고 세 개를 구입했다.

혼자 먹기에는 조금 양이 많았다. 김밥을 하나 입안에 넣었다. 오물오물 음식을 씹는데 추억이 그려졌다. 대학생일 시절 짝사랑하던 그녀와 같이 야구장에 갔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에는 둘 다 돈이 녹록지 않아,  야구경기 관람과 비싼 음식을 사 먹는 작은 사치를 누리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야구장 옆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만 원에 세 가지 마감세일 음식을 샀다. 차갑지 않은 푸르른 여름 밤 알록달록 색이 칠해진 야구장 의자에 앉아 우리는 일식, 한식, 양식 등 우리만의 만찬을 즐기며 야구를 관람했다. "딱!" 느닷없이 우리가 응원하는 편 선수가 홈런을 쳤다. 우리는 환호를 지르고 얼싸안고 좋아했다. 잠깐이지만 내 손에 닿던 그녀의 손과 코 끝을 스치던 그녀의 향수 냄새에 내 마음이 설레었다. 김밥 하나를 꿀꺽 삼키니 행복했던 그때가 생각 나 피식 웃었다. 음식은 미각보다 시각과 청각, 후각, 촉감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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