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폴록을 향한 그린버그의 평가
잭슨 폴록이 유명해지는 과정에서 클렌멘트 그린버그를 빼놓을 수 없다.
당대의 최고 미술 평론가는 누가 뭐라 해도 클레멘트 그린버그였다. 그린버그는 한때 문학 지망생이었으며 마르크시즘에 심취해 있던 당시 뉴욕의 전형적 지식층이었다. 그는 문예잡지에 많은 글을 기고했는데, 그곳에서 시각 예술이 단순히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시대와 역사 사상이 담긴 것으로 해석되게끔 유도했다. 그는 역사를 이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며 시각 예술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 역사를 바꿔 가는 가장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큐비즘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큐비즘은 원근법이라는 절대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은 기존의 사고를 해체하는 미술이었다. (자세한 것은 피카소의 글을 참고하세요. https://brunch.co.kr/@hogeunyum/17) 그렇지만, 그는 큐비즘은 완벽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린버그는 그림은 완벽한 평면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면인 캔버스에 평면으로 물감을 바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피카소의 작품에서 사람들의 모습은 한 평면에서 뒷모습, 옆모습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평면성을 가지고는 있다. 하지만, 사람이 배경과 구분이 되면서 공간이 생기게 되고 그림에서 완벽한 평면이 생기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이론을 시각화 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바로 잭슨 폴록이었다. 잭슨 폴록의 그림에서는 배경과 형태가 없다. 캔버스 전체를 하나의 그림으로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에서는 도저히 원근법이나 공간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린버그가 주장하는 그림 자체로써의 평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린버그는 이 내용들을 자신의 글에 실어 잭슨폴록을 '역사를 바꿔나가는 인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잭슨 폴록은 한 명의 예술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해롤드 로젠버그에 대한 이야기는 옆으로 잠시 놔두자.)
1949년 당시 미국 최대의 대중 화보지 <라이프>는 8월호 특집으로 '그는 미국에서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화가인가?'(Is he the greatest living painter in the United States?)라는 제목으로 잭슨폴록을 4쪽에 걸쳐 대서특필한다. 50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던 잡지에서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미국 화가로 잭슨폴록을 꼽았으니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모두가 당연히 잭슨폴록을 가장 위대한 미국 화가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잭슨 폴록의 그림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관람하려고 줄을 선다. 그의 그림이 왜 위대 한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그가 <라이프>가 선정한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미국 화가로 꼽혀서였다.
여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숨겨져 있다. 라이프지의 한 기자가 5월쯤 잭슨폴록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 한창 취재를 하던 중, 잭슨 폴록이 자신의 방에서 그림을 한 점 가지고 나오며 이것을 줄 테니 150달러만 좀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기자는 결혼을 앞두고 있어 돈을 모아야 했다고 말했다. 만약 그가 150달러에 그 그림을 맡았더라면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그가 <라이프>지에 소개되고 나고 2년 뒤, 독일계 사진사 한스 나무스 (Hans Namuth)는 잭슨폴록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그가 그림을 제작하는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는다. 사진에서 잭슨폴록은 담배를 입에 물고, 한 손에는 페인트 통을, 그리고 한 손으로는 굳어버린 붓을 들고 바닥에 눕혀진 캔버스 위에 페인트를 떨어뜨리며 그림을 제작한다. 모두가 의아해했던 그림 제작 과정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는데, 이 모습이 너무 역동적이고 의미가 있어 대중들은 '액션 페인팅 (Action Painting)'이라는 훌륭한 별명을 그에게 붙여 주었다. ( 그 이전 그의 별명은 Jack the dripper여다. 드립....)
잭슨폴록의 작업 영상: https://youtu.be/6cgBvpjwOGo
인쇄 미디어에 이어, 영상 미디어에 노출된 예술가에게 대중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잭슨폴록의 이름은 더욱 알려졌고 전시회가 끊임없이 열렸으며 그의 그림값은 더더욱 비싸졌다. 아이러닉하게도 잭슨폴록은 유명해지고 난 뒤 다시 도형과 공간이 가미된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대중들은 라이프지가 선정한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미국 화가 잭슨폴록에 열광했지만 그의 난해한 작품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 수집가와 상업화랑들은 잭슨 폴록에게 다시 추상화를 그리길 요구했다. 잭슨폴록은 더 이상 바닥 위에 있는 캔버스에 페인트를 뿌리지 않는다. 그는 다시 이젤에 캔버스를 세우고 붓을 댄다.
이 시기에 그는 극도로 예민해져 리 크래스너와 이혼하게 되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그는 결국 1956년 음주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나무를 들이받고 죽게 된다. 그는 제임스 딘과 앨비스가 그랬던 것처럼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뒤 운명하고 그들처럼 신화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세계의 패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시점. 이 시점에서 미국은 모든 부분에서 영웅이 필요했다. 특히나 콧대 높은 유럽의 예술에 도전할 수 있는 젊은 현대 예술가가 필요했다. 그들은 그 필요에 의하여 잭슨폴록이라는 신화적 존재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의 그림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잭슨폴록은 그린버그의 평가처럼 역사를 바꿔 나가는 예술가였다. 그는 기존 회화에서 있던 방식을 파격 한 인물이다. 그가 깨뜨린 이전의 방식과 관념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그는 이젤이 없는 그림을 그렸다. 이전의 화가들은 캔버스를 이젤에 세우고,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는 캔버스를 평평한 바닥에 놓고 그림을 "제작"했다. 두 번째로 그는 붓을 캔버스에 대지 않았다. 이전의 그림들은 모두 붓으로 물감 또는 유화 물감을 찍어 캔버스에 발라서 그려진 것들이다. 하지만 잭슨 폴록은 붓을 캔버스에 대지 않고도 그림을 완성시켰다. 세 번째로 그의 그림에는 배경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그림은 캔버스 하나가 작품이다. 이 때문에 그의 그림에는 공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그림에는 평면만이 존재한다.
잭슨 폴록이 그린버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정말 그림에 평면성을 부여하고 기존의 관념으로부터 자유를 주기 위하여 이러한 방식들로 그림을 그렸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는 술에 취해서 그저 캔버스를 바닥에 두고 무의식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유화 물감을 뿌려보고 흘려본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그는 발상의 전환을 가지고 왔고 스스로 흐름을 바꿨다는 점이다. 잭슨 폴록이 없었더라면 그의 이후에 주류가 되는 단색화라는 장르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며 영원히 프레임이라는 고정관념에 미술이 갇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잭슨폴록이 아니라도 누군가는 했겠지만...) 그는 자신의 그림에 변화를 주었고 그 변화는 세상을 변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