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 나이트의 첫 번째 이야기, 천일야화
안녕하세요. 호곤 별다방입니다. 호곤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노래가사(어린이날 방정환, 황소그림 중섭)에 나오는, 두 위인을 <방정환 글 이중섭 그림 호곤 엮음>으로 연결합니다. 어린이날의 창시자 소파 방정환과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대향 이중섭의 공통점은 어린이를 많이 표현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아동문학가 소파(小波) 방정환 Bang Jeong-hwan(1899.11.09. ~ 1931.07.23. 향년 31세)
서양화가 대향(大鄕) 이중섭 Lee Jung-sub(1916.09.16. ~ 1956.09.06. 향년 39세)
오랜만에 방정환 선생님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더운 여름은 잘 보내셨나요. 해가 져도 아직 날씨가 따뜻합니다. 어제는 금요일이라 늦게까지 밖에 있었는데요. 오후 10시가 되어서야 조금 쌀쌀함을 느끼겠더라고요. 깊어가는 밤, 아이는 칭얼대고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사람이 곁에 있나요. 그렇다면 방정환 선생님이 전하는 천일야화의 시작이야기 들어보고 가겠습니다.
우리가 아는 아라비안 나이트를 한자로 말하면 '천일야화'가 되겠네요. 누구에게나 시작이 있는 법이지요. 그렇게 많은 이야기의 시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이제 여러분을 위하여 시작하려는 천일 야화는 참으로 세계에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재미있고 신기하기로도 제일 유명하고 복잡하고 길다랗기로도 유명하고, 그 밖에 여러 가지 점으로 제일 유명한 것이 ‘천일 야화’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활동 사진에서 구경하신 ‘바그다드의 도적’도 이 속에 나오는 이야기요, 유명한 ‘알리바바와 도둑’의 이야기도 이 속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신기 신기하여도 이것처럼 신기한 이야기가 없고 길다 길다 하여도 이것처럼 길다란 이야기가 없어서 이 천일 야화가 맨 처음 어찌해서 생긴 이야기만 하려도 이 《어린이》 책의 절반은 더 걸릴 것입니다. 밤마다 계속해 하 기를 일천 밤하고 또 하루를 두고 한 이야기이니 그 얼마나 길다란 것을 짐작할 것이고 또 일천 하루이면 거의 삼 년이나 되는 세월이니 삼 년을 계속해 들어도 염증 싫증이 나지 않고 도리어 마음이 이에 파묻혔으니 그 얼마나 재미있음을 짐작할 것입니다.
이렇게 무섭게 길다란 이야기를 한 달에 한 번씩 나는 《어린이》에 조금씩 내자면 여러분과 내가 머리가 하얗게 늙도록 계속하게 될 것이니 도저히 안 될 일이라 그중에 제일 재미있는 것, 또 여러분이 알기 쉬운 이야기만 골라 빼어서 내 정성으로 될 수 있는 데까지 쉽게 이야기해 드리기로 하고, 이번에는 그 시초된 이야기를 간단히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이 이야기가 시작되던 시초의 이야기라 해야 어느 때, 어느 해에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실상은 그것이 분명하지 못합니다.
아라비아 괴담! 천 하룻밤 이야기! 하면 이 세상 어느 나라에 번역되지 않은 곳이 없고, 어느 누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마는 맨 처음 누가 시작한 것 인지 누가 지었는지 꾸몄는지 도무지 근본을 아는 이가 지금껏 없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만큼 모두 자기 짐작대로 어림치고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기 때문에 어느 말이 정말인지 분간 못할 말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 제일 그럴듯하게 세상 사람이 믿음직하게 전해 오는 말을 들으면 그 시초가 대강 이러합니다.
옛날에 아라비아에 아주 마음이 인자하고 덕이 많은 임금 한 분이 있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의 아내 되는 왕비는 인물이 잘나기로 이 세상 제일이라고 이름난 그림같이 어여쁜 이였습니다.
그래 착한 왕은 그 왕비를 끔찍이 믿고 사랑하고 위하였는데 하루는 우연 한 기회에 그 믿고 사랑하는 왕비가 자기의 눈을 속여 대궐 뒷마당에서 나쁜 심부름꾼 사내를 데리고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 자기가 착한 마음으로 진정으로 그 왕비를 믿어왔던 만큼 이 날까지 속아 온 것이 분하기도 하고 밉기도 하여 스스로 세상인심을 믿지 못할 것이라고 탄식하고, 또 자기의 덕이 부족함을 탄식하다가 마음을 결단하고 그 밤에 넌지시 아무도 모르게 대궐과 나라를 버리고 멀리멀리 정처 없는 길을 떠났습니다.
그래 어느 바닷가로 다니다가 거기서 어느 이상한 여자와 괴상한 마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어여쁜 여자도 그 무서운 마귀를 속이고 다른 나쁜 짓을 예사로 하는 것을 보고 두 번째 놀랐습니다.
그래, ‘이 세상 계집이란 계집은 모두 남자를 속이는 것이다. 계집처럼 악하고 계집처럼 죄 많은 것은 없다.’ 생각하고 그 길로 다시 대궐로 돌아왔습니다. 와서는 곧 그 왕비와 토인 남자를 죽이고 또 대궐 안에 있는 어여쁜 여자 들과 나쁜 토인들을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자기 밑에 있는 재상을 시켜 날마다 한 사람씩 어여쁜 처녀를 데려 오라는 새로운 법을 내리고 날마다 한 사람씩 새로운 처녀를 불러들여서는 반드시 그 이튿날 아침에 죽여 버리고 죽여 버리고 하였습니다.
날마다 한 사람씩 처녀가 대궐로 들어가고, 들어만 가면 이튿날 아침에 죽으므로 백성들이 큰일 났다고 소동하면서 처녀 있는 집에서는 모두 넌지시 다른 곳으로 도망을 하였습니다. 그래 나중에는 모두들 도망을 하고 없으므로 저녁마다 새로운 처녀를 불러들일 감이 없는데 왕은 자꾸 데려오라고만 하였으므로 중간에서 재상이 큰일 나게 되어 그만 머리를 싸고 누워 앓았습니다.
그런데, 그 재상에게는 어여쁜 두 딸 처녀가 있었습니다. 그 큰딸이 아버 지의 앓는 것을 보고 까닭을 물어 무섭고 놀라운 내용을 듣더니 아버지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안고 대궐로 들어갔습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그 이튿날 아침에 죽은 송장이 되어 나올 줄 알았더니 저녁때가 되어도 아무 소식이 없고 또 그 이튿날 또 그 이튿날 얼마를 지나도 죽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처녀가 들어간 날부터 날마다 처녀를 잡아들여가는 일도 딱 그쳤습니다.
재상의 딸은 배운 것이 많고 들은 것이 많아 지식도 많고 의견이 많은 처녀였습니다. 그래 들어가던 그날 밤부터 왕의 앞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작하였는데 그 이야기가 어떻게 재미있고 길던지 왕이 밤마다 턱을 고이 고 앉아서 듣기를 한 해, 두 해, 세 해 꼭 일천 밤하고도 또 하룻밤을 계속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왕의 노여운 마음이 풀리고 다시 마음이 착하여져서 그 처녀를 왕비로 삼고, 전처럼 인자한 임금이 되어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려 갔습니다. 그때, 그 처녀가 임금의 앞에서 일천 하룻밤 두고 계속한 이야기……. 얼마나 죽을지 모를 수 없는 처녀의 목숨을 살리고 그 무섭던 왕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놓은 유명한 이야기가 이 아라비아의 기담 천일 야화입니다.
〈《어린이》 4권 2호, 1926년 2월호, 소파〉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이번 이야기 '방정환의 천일야화'에 어울리는 이중섭의 그림은 무언가 이야기하는 사람의 그림으로 골라 보았습니다. 가운데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옆의 두 사람은 골똘히 듣고 있지요. 우리가 이야기를 들을 때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다면 방정환 선생님의 이야기와 관련된 그림을 잘 그려내고 싶습니다. 이상으로 아동문학가 방정환과 서양화가 이중섭을 연결하는 호곤이었습니다.
어문출처: 千一夜話 [천일야화], 방정환, 공유마당, 만료저작물
이미지출처: 엽서 4, 이중섭, 공유마당, 만료저작물, 창작 연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