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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곤 Jul 02. 2024

중2의 여름방학과 임재범

#9 임재범의 ‘이 밤이 지나면’ 여름방학은 끝이 난다


1991년 7월 20일 土요일
장마철이라 그런지 하늘이 울었다 웃었다. 변덕이 심하다.

아! 이 얼마 만에 써보는 일기인가!
한두 달은 됐나 보지?
자~.
본론으로 들어가서.
7/16 여름방학이 start 되었다.
개학날은 8/30. 43일간의 방학(아자뵹!)
엄마가 학원을 보내주지 않으신다.
덕분에 잘 쉬고 있다. 이 몸이.
방학과제가 12가지 있다.
도, 국, , 사, 수, 과, 음, 한, 영, 가,
교육방송 청취기록장, 일기 쓰기,
지금은 , 사, 수, 과, 한, 음은 이미
END 상태이다.
이젠 6가지만 하면 된다(다시 한번 아자붕!)
요즘에 아빠의 성화로 짜논 생활계획표를 실천하느라고 힘 꽤나 쓴다. 내가.
하지만 내가 짜는 거기 때문에 괜찮다.
총 통틀어 공부:5시간 놀기(TV시청포함): 8시간 30분


33년 전 나의 중2,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배웠다고 한자(史 역사 사/ 흙 토)도 섞어 쓰고 영어도 쓰느라 3개 국어가 일기장에서 보인다. 우리 엄마는 내가 중3 겨울방학 때는 그렇게 학원에 가라고 하시더니 중2 때는 놀아도 된다고 생각하셨는지 학원에 보내주지 않으셨나 보다.


나이 마흔이 넘어 나의 중2 일기를 엿보는 내 모습이 웃기다. 그 상황이 생각 나는 일도 있지만 전혀 생각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이 더욱더 신기하다. 아마도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일상은 그렇게 기억나지 않지만, 나를 불편하게 했던 상황들은 생생하게 기억하나 보다. 왜 그럴까.


아직 사춘기에 이르지 않았지만, 우리 아이들도 내가 해 준 수많은 편안한 기억은 잊히고, 어쩔 수 없이 못 해줬던 미안한 기억만 간직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일은 줄여나가도록 노력해야겠다. 우리 서로 사랑하는 마음만은 간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오늘의 K-pop은 임재범의 '이 밤이 지나면'이다. 알고 보니 임재범의 가족사가 복잡하다. 본인이 원한 일도 아니고 아빠 때문에 족보가 꼬였다나. 멀리서 보니 잘 생겨서 고민이 없을 줄 알았던 가수의 인생도 가까이서 살펴보니 다사다난하다. 우리 모두 저마다의 고민은 적어도 하나씩 있다. 잘 풀어내고 살아보자.


https://youtu.be/oHdMUlkj8Cw?si=nSDwGaZflvf3FAkB


https://youtu.be/FS1qGVFaRIA?si=NaAaUYPJ42HyX99i



솔직히 임재범이라는 가수를 중 2 때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내가 알고 있었다. 제목을 찾아보니 '이 밤이 지나면'이라는 임재범의 노래였다. 1991년 임재범 1집에 수록된 곡이라고 한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니 알게 되는 노래이다.


임재범 ‘이 밤이 지나면’ 1991년 곡


임재범 任宰範 Yim Jae-beum

출생 1962년[1] 10월 14일 (61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본관 풍천 임 씨 (豊川 任氏)[2]

신체 182cm[3]|76kg|O형

가족 아버지 임택근[4], 적모 여양 오 씨(1941년생)

이복동생 손지창, 고종사촌 성 김[5]

배우자 송남영(2001년 결혼 ~ 2017년 사별)[6]

딸 임지수[7]

학력 중앙대학교사범대학부속국민학교 (졸업)

중앙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졸업)
서울고등학교 (졸업)

데뷔 1986년 시나위 1집 앨범

'크게 라디오를 켜고'

종교 개신교[8]

소속사 블루씨드컴퍼니

별명 괴물, 마이클 볼튼, 흰둥호랑이


다음은 나무위키에서 찾은 임재범의 '이 밤이 지나면' 에피소드이니, 믿거나 말거나 참고.

임재범은 "1990년대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토토즐)에 나가서 '이 밤이 지나면'을 딱 한 번 불렀는데 지금의 '나는 가수다'(나가수) 같은 반응이 왔다. 하루 새에 갑자기 음악 차트 3, 4위 상위권에 랭크가 되더라"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실제로 임재범 1집은 60만 장 이상 팔리는 놀라운 판매고를 보였다. 하지만 록커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임재범에게 이들은 '솔로로 잘 나가서 좋냐'라고 비아냥 거렸고 록커의 자존심을 버렸단 생각에 임재범 또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가끔 포장마차 이런 데서 막걸리 한잔 할 때면 신대철한테 무조건 사과부터 했다"라고 덧붙였다. 당시 그는 록커로서가 아니라 한국의 마이클 볼튼으로 불렸다. 결국 그는 리듬 앤 블루스나 소울, 발라드는 진정하고 싶은 음악이 아니라며 오대산 등에서 1년간 잠적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앨범을 내고 잠적하고 다시 돌아와 앨범을 내고 잠적하는, 아니 증발하는 일이 반복됐다. 하지만 김준원은 임재범이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인한 잠적을 했다고 했고, 실제로 소속사에게 제대로 된 정산을 받지 못하였다. 이를 보면 잠적은 임재범 개인의 문제라고만 볼 수 없다. 그리고 임재범은 가수를 꼭두각시처럼 다루는 연예계 상황, 홀대받는 한국 록 음악,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가수를 존중해주지 않고 비판하는 대중들에게 스트레스를 느꼈고, 이런 점 또한 잠적에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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