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 위해 책 앞에 앉았다. 이 책을 언제 처음으로 알게 되었을까. 신영복이라는 이름을 종종 듣곤 했으나 관심을 갖고 책을 읽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 책을 이곳에서 읽게 될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읽는 내내 이곳에서 생활하며 막연하게 생각하거나 느껴왔던 것이 문장으로 펼쳐져 있단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곳 보다 더 길고 막연하고 처절한 감옥으로부터 쓰여 나에게로 온 편지와 같았다. 나는 이곳에서 각 계절의 한 번내지 두 번만을 겪으면 다시 밖으로 나가지만, 신영복 선생님은 같은 계절을 스무 번을 겪었다. 그 점이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것 같다.
헌법 관련 도서를 읽은 후 쓰여진 독후감처럼 논리를 만들고 글의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이 책에 쓰여진 문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직은 고작인 것 같다. 신영복 선생님의 깊은 생각과 나의 짧은 생각이 대비되어 느껴졌던 순간이 많았다. 그래서 간략한 서두와 읽으며 오랫동안 생각해본 구절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P23
궁핍은 필요를 낳고 필요는 또 요구를 낳으며 그 요구가 관철되기 위하여는 크고 작은 투쟁의 관문을 거쳐야 하는 판이다.
그런데 그 요구의 질과 양이 실로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일광욕 투쟁, 용변투쟁, 치료, 식수... 바깥 세상에서는 관심 밖의 것들이 거의 전부다.
그리하여 다듬어진 용기와 인내와 지구력... 이것이 곧 수인의 재산인 것이다.
P54
취침 나팔이 밤하늘을 울리면 수감자들은 습관처럼 고향을, 부모를, 바깥을 상상해본다. 꿈에나마 그리운 곳, 그리운 사람을 만나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된다.
p65
나는 인간을 어떤 기성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개인이 이룩해놓은 객관적 '달성'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p69
기계적이고 습관화된 대화는 인관관계의 정체를 가져오며 인간관계의 정체는 관계 그 자체의 퇴화를 가져오며 필경은 양 당사자에게 오히려 부담과 질곡만을 안겨주게 되는 것입니다.
p85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 함은 사침이하여야 사무사 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p114-115
'1년은 짧고 하루는 긴 생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온 나날도 돌이켜보면 몇 년 전이 바로 엊그제같이 허전할 뿐, 무엇 하나 담긴 것이 없는 생활, 손아귀에 쥐면 한 줌도 안되는 솜사탕 부푼 구름같이, 생각하면 약소하기 짝이 없는 생활입니다.
그러나 비록 한 줌이 안된다 해도 그 속에 귀한 경험의 정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끝내 '약소'할 수만은 없는 생활이기도 합니다. 그 속엔 우선 '타인에 대한 이해'가 담겨있습니다.
저희들은 이 실패자들의 군서지에서 수많은 타인을 만나고, 그들의 수많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가능성 속에 몸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p136
절실한 일이 없으면 응달의 풀싹처럼 자라지 못하며, 경험이 편벽되면 한쪽으로만 굴린 눈덩이처럼 기형화할 위험이 따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 살면서 성격의 굴절을 막고 구김살 없이 되기란 무척 어려운 것 같습니다.
p144
글씨는 갈수록 어려워 고인들이 도자에 담은 뜻이 그런 것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길'이란 그 '향'하는 바가 먼저 있고 나서 다시 무수한 발걸음이 다지고 다져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p147
자획의 모양보다는 자구에 담긴 뜻이 좋아야 함은 물론 특히 그 '사람'이 훌륭해야 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작품과 인간이 강하게 연대되고 있는 서도가, 단지 작품만으로 평가되는 인간 부재의 다른 분야보다 마음에 듭니다. 좋은 글씨를 남기기 위하여 결국 좋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평덤한 상식이 마음 흐뭇합니다.
p155
각자가 저마다의 삶의 터전에 깊숙히 발목 박고 서서 그 '곳'에 고유한 주관을 더욱 강화해가는 노력이야말로 객관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p162
사람들은 누구나 거미줄같이 수많은 관계 속에 서지 않을 수 없고 보면 '관계는 존재'라는 명제의 적실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혼자'라는 느낌은 관념적으로만 가능한 정신의 일시적 함정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p217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깨닫도록 은밀히 도와주고 끈기 있게 기다려주는 유연함과 후덕함을 갖추는 일입니다. 이런 경우는 주장과 주장의 대립이 논쟁의 형식으로 행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잘 아는 친구가 서로 만나서 친구 따라 함께 강남 가듯, 춘풍대아한 감화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p227
떠남과 기다림이 결국은 당자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 '마음'을 탓하기에 앞서 그런 마음이 되기까지의 사연을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그 처지가 먼저이고 그 마음이 나중이고 보면 마음은 크게는 그 처지에 따라 좌우되게 마련입니다.
p231
더욱이 이처럼 엄청난 비극이 미적인 것으로 승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그 '정직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저한테 가해지는 중압을 아무에게도 전가하지 않고 고스란히 짐질 수밖에 없는,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사람의 '정직함'에 있습니다.
비극은 우리들이 무심히 흘려버리고 있는 일상생활이 얼마나 치열한 갈등과 복잡한 얼개를 그 내부에 감추고 있는가를 깨닫게 할 뿐 아니라 때로는 우리를 객석으로부터 무대의 뒤편 분장실로 인도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인식평면을 열어줍니다.
p236
같은 단어를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그런대로 작은 차이이고, 여러 단어의 조합에 의한 판단형식의 차이는 그것의 내용을 이루는 생각의 차이를 확대한다는 점에서 매우 큰 것이라 하겠습니다.
p239
감정과 이성은 수레의 두 바 퀴입니다. 크기가 같아야 하는 두 개의 바퀴입니다. 낮은 이성에는 낮은 감정이, 높은 이성에는 높은 감정이 관계되는 것입니다. 일견 이성에 의하여 감정이 극복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경우도 실은 이성으로써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높이에 상응하는 높은 단계의 감정에 의하여 낮은 단계의 감정이 극복되고 있을 따름입니다.
p260
측은지심은 대개 죽음과 관련되는 것에서 민감하게 촉발되는 것이지만, 사실은 살아가는 문제, 특히 선량하게 살아가는 문제와 더욱 깊숙히 관련되는 것이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그것의 ㄱ마상적 차원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277
그런데 징역살이에서 느끼는 불행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한 발 걸음이라는 외로운 보행입니다. 실천과 인식이라는 두 개의 다리 중에서 '실천의 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실천 > 인식 > 재실천 > 재인식'의 과정이 반복되어 실천의 발전과 더불어 인식도 감성적 인식에서 이성적 인식으로 발전해갑니다. 그러므로 이 실천이 없다는 사실은 거의 결정적인 의미를 띱니다. 그것은 곧 인식의 좌절, 사고의 정지를 의미합니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고, 발전하지 못하는 생각이 녹슬 수밖에 없는 이치입니다.
p280
실천이란 반드시 극적 구조를 갖춘 큰 규모의 일만이 아니라 사람이 있고 일거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흔전으로 널려 있다는 제법 익은 듯한 생각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p286-287
소혹성에서 온 어린 왕자는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합니다. 관계를 맺음이 없이 길들이는 것이나 불평등한 관계 밑에서 길들여진 모든 것은, 본질에 있어서 억압입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 개의 나무의자든, 높은 정신적 가치든, 무엇을 공유한다는 것은 같은 창문 앞에 서는 공감을 의미하며,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운명의 연대를 뜻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
그리하여 제 자신과 제 자신이 놓여 있는 존재 조건을 정직하게 인식하는 귀중한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 또박또박 분할된 그 수많은 공간마다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서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얻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아픔'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봅니다.
p297
그가 부딪쳐야 했고 또 부딪쳐야 할 혹독한 처지를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까닭은 '도둑질해서라도 먹고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까지도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일단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데에 있습니다.
p316
세모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ㄱ나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나는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봅니다.
p319
같은 시대 같은 세상을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처럼 판이한 사고와 윤리관을 갖게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며, 그것은 또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 하는 몸서리입니다. 그리고 그들에 비하면 저의 윤리의식은 얼마나 공허하며 사치스러운 것인가 하는 참괴의 염입니다.
p334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소위 가운데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마련인 '작은 실패'를 간과하지 않는 자가 자기비판의 자세입니다. 실패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패의 발견이 필요한 것이며, 실패가 값진 것이 아니라 실패의 교훈이 값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p339
여러 사람들의 걱정과 수고에 의하여 나의 징역살이가 지탱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징역을 나 혼자 짐지고 있거니 하는 생각은 자만입니다.
p355-356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불만이나 적의에 연유한다기보다 '옷의 허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복이 그 사람의 결함을 덮어주는 것임에 반하여 수의는 그 결함을 드러낼뿐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결정하고 범죄화해버리는 기능을 합니다. ...
사람을 알아버린 후의 옷이란 결국 이런 부수적인 역할밖에 못하는가 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 들추어지는 결함은 수의가 인상짓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것임을 느낍니다. 결함은 분명 결함이되 인간 전부를 거부하지 않는 것으로서의 결함이며, 극복대상으로서의 결함이어서 흡사 스승의 질책처럼 훈훈한 여운을 동반하는 것이라 느껴집니다.
p365-367
마늘 한 통 여섯 쪽의 겨울을 넘긴 모습이 가지가지입니다. 썩어 문드러져 냄새나는 놈, ...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흐뭇하게 하는 것은 그 속에 싹을 키우고 있는 놈입니다. ...
무엇보다 징역살이란 최소한 의식주가 해결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곳이기 때문에 바깥 사회와 같은 치열한 생존경쟁이 없다는 기본적 특징이 있습니다. ...
치열한 생존경쟁이 없어지고 나면 폭력과 비리와 패륜도 흡사 바람 빠진 풍선처럼 무력해지고 이빨 빠진 맹수처럼 무해한 것이 되어가는가 봅니다. ...
교도소가 아무리 의식주가 보장되고 치열한 경쟁의식이 배제된 곳이라 하더라도 여기가 살만한 곳이 못됨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 우리의 생활 전반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출소하기만 하면 만사 해결될 것 같은 환상이 각자의 성장의 가능성과 의지를 잠재워버리는, 일종의 종교적 문화가 만연해 있는가 하면, 우리를 한없이 움츠리게 하는 수많은 규칙이 있으며, 노동의 자세를 왜곡하고 노동의 의의를 흐리게 하는 징역이 있는가 하면, 긍지는커녕 작은 기쁨도 허락치 않는 부단한 경멸과 험오와 반성의 강요가 있습니다. ...
이처럼 낮고 어두운 밑바닥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기에 걸맞는 '철학'을 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습니다. ...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가장 낮은 밑바닥에 세우는 냉정한 시선과 용기가 요구됩니다.
p392-393
싸움은 큰 싸움이 되기 전에 잘게 나누어서 미리미리 작은 싸움을 싸우는 것이 파국을 면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 작은 싸움은 잘만 관리하면 대화라는 틀 속에서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소화해낼 수 있습니다.
싸움은 첫째 싸우지 않는 것이 상지상책입니다. 그 다음이 잘 지는 것, 그 다음이 작은 싸움, 그리고 이기든 지든 큰싸움은 하책에 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