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2014년 6월)
[호]
1,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
2014년 6월 15일,
뉴욕타임즈 앞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날 집회 소식을 전한 뉴시스 기사를 먼저 소개합니다.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세월이 지나도 잊혀질 수 없습니다.”
15일 뉴욕 맨해튼의 뉴욕 타임스 빌딩 앞에서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 및 박근혜정부 퇴진 시위가 열렸다. 뉴욕타임스 빌딩이 있는 41가 8 애버뉴는 펜스테이션이 인근에 있어 평소 수많은 뉴요커들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이날 시위에 나온 뉴욕 뉴저지 일원의 한인들은 준비한 영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며 세월호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천만인 서명 운동에 동참했다.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이기도 한 이날 가족 동반 시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약 150명의 미국인과 관광객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았다.
그간 뉴욕에서 세월호 관련 시위는 한인타운이 있는 32가 브로드웨이에서 열렸으며 이곳에서 시위가 벌어진 것은 처음이다. 이날 시위는 지난 5월 뉴욕타임스 광고와 미 50개주 동시 릴레이 시위를 벌여 주목을 받은 미국여성들의 생활정보 사이트 ‘미시 유에스에이’ 뉴욕 회원들이 주최한 것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천만인 서명운동이 같이 벌어졌다.
뉴욕과 뉴저지 코네티컷에서 삼삼오오 뉴욕타임스 빌딩 앞에 모인 이들은 세월호 참극으로 우리 곁을 떠난 아빠와 엄마, 선생님, 일반인,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나지막히 불렀다. 흐느낌과 분노, 그리고 슬픔이 가득한 가운데 세월호를 잊지말자는 당부의 발언, 추모 노래와 침묵 시위들로 이어졌다. 뉴욕의 엄마들과 동포들은 세월호 참사 60일이 지났지만 결코 잊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날 서명자들은 동그란 메모지에 유가족을 위한 위로의 메시지를 써서 붙여주었고 참여한 외국인들도 “정말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며 슬픔과 분노를 같이 했다. 서명엔 약 150여명이 참여했다.
시위에 동참한 이 데레사 씨는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 이제 지난 일인데’ 하는 마음을 악한들이 이용할 것 같은 불안한 맘에서 나왔다. 아직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일을 결코 잊혀지게 하지 않도록 계속 행동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선 무엇이든 하겠다”고 다짐했다.
제주에서 왔다는 노명희 씨는 직접 만든 추모의 노래를 불러 눈길을 끌었고, 매주 말 맨해튼의 유니온스퀘어에서 ‘작은 실천’이라는 타이틀로 서명운동을 하는 김대종 씨도 함께 했다.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이기도 한 이날 미국에서는 뉴욕을 비롯해 필라델피아, 애틀란타 등 대도시 중심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운동과 규탄시위가 같이 열렸다.
비록 몸은 머나먼 뉴욕땅에 와있지만, 때마침 이곳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라도 참석해서 뜻과 마음을 모으고 싶었습니다.
집회 참석자들과 함께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2시간 동안 시위와 서명을 받는 등 집회를 한 뒤,
함께 손 팻말과 플래카드를 들고 두 블럭을 걸어가 브라이언트 공원에서 집회 뒷풀이를 가졌습니다.
아래는 이날 집회에서
제가 작사하고, 아내가 작곡한 세월호 추모곡 <140416>을 아내가 부르는 장면입니다.
감사하게도 한 교포분이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놓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곡명 140416
꽃보다 더 아름답던 너 꿈 많았던 열일곱
나의 아이들아 너 어디에 있느냐
그 얼마나 두려웠느냐 차디찬 바다 속에서
그 얼마나 기다렸느냐 네 손 잡아줄 한 사람을
미안하다 내 아들아 널 지켜주지 못했구나
부끄럽다 내 딸아 어찌 너를 보내리오
검붉은 바다 파도 앞에 두 무릎을 꿇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너를 만질 수 있다면
보고싶다 내 아들아 언제 너를 다시 볼까
사랑한다 내 딸아 어찌 너를 잊으리오
못다핀 너의 작은 꿈 하늘에선 꼭 이루렴
널 위해 기도한다 부디 잘 가거라
나의 아이들아 꼭 다시 만나자
2) 월드컵 러시아전 응원
다음날인 17일에는 맨하튼의 한인타운이 있는 32가로 나갔다.
식당과 술집 등 이곳저곳에서 월드컵 러시아전을 중계한다고 광고하고 있다.
그중 한곳을 골라 들어가니 벌써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이곳은 주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인가보다.
열띤 응원을 한다.
드디어 한골을 우리가 먼저 넣었다.
기쁨의 도가니가 된 틈을 타서 얼른 키스를 하는 젊은이도 있다만,
내가 이걸 찍으려고 해서 찍은 것은 결코 아니고, 환호하는 장면을 플래쉬를 터뜨려 찍다보니
저절로 획득한 장면이다. ㅎㅎ
내일 또 알제리와의 2차전이 벌어지는데,
어딜 가서 응원을 할지 고민해봐야겠다.
응원을 하면서도,
세월호 참사는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깊은 바다 속에는
열두명의 우리 아이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2014/6월, 뉴욕 한달살기 중에 가족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시절만의 옛스러운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그대로 공유합니다. 가끔 글 중간에 2025년 현재의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에도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호]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1년이 훌쩍 흘렀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나는 그대로인데…
되돌릴 수 없는 날들이 점점 멀어져 갑니다.
숨진 250명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님들은
흐르는 시간 앞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그때를, 자식을 잊지 못하고, 지금도
참척의 슬픔을 견뎌내고 있겠지요.
기쁨은 쉽게 잊혀지지만
슬픔은 가슴에 응어리진 채 남아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꼼짝하지 말라"고 하고선
자신은 배위로 기어오르던 선장의 모습과,
구치소에서 풀려나오며 미소를 머금고 손을 흔들던
한사람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현재의 모습이 참으로
기이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히]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에 참석하여 플래카드만 들고 서 있기가 미안해,
제가 만든 추모곡 '140416'을 시끄러운 거리에서 목이 쉬어라 불렀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온 세상이, 제가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어느새 무서울 정도로 잊고 살았습니다.
어느 뉴욕집회 참가자 얘기처럼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일, 결코 잊혀지게 하지 않도록
2025년 오늘,
다시 기억합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기적이 되는 날'을 기다립니다.